절구통 / 박소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심장으로 바로 꽂힌다. 엄마다. 부모님께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전화기를 열자마자 엄마는 급하게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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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절구통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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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통이라니요. 그런 거 없는데요.” 엄마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아까운 걸 왜 버렸느냐며 타박하신다. 그제야 잠이 확 깼다. 엄마가 맡기다시피 건네준 절구통이 떠올랐다. 쓸 일이 없어 비닐에 싸 찬장 깊숙이 넣어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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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찬장 안을 뒤진다. 우리 집에서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이지 않았던 절구통을 꺼낸다. 비닐에 싸여 있어 겉에서는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필요 없다는 걸 강매하는 외판원처럼 엄마는 내게 이 절구통을 안기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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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두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절구통을 무슨 가보라도 되는 양 비닐에 꽁꽁 싸서 건네셨다. 절구통은 한 손에 들기도 버겁다. 비닐을 열자 보통 냄비보다 큰 통과 묵직한 나무 방망이가 함께 들어 있다. 마치 원래부터 내 물건이었던 것처럼 찬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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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맡겨놓은 담보물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새벽부터 이 커다란 절구통을 집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신다. 로비에 맡겨두면 경비 아저씨가 안 계시니 집으로 직접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이 새벽부터 절구통을 찾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는 다시 카톡이 이어졌다. 당신은 며칠만 쓸 거니 쓰고 나서 다시 우리 집에 두라는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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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4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엄마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늘 부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오전은 아침 식사 준비하는 모습이다. 오전 7시 정각에 식사하시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엄마의 새벽은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시작된다. ‘칙칙’ 돌아가는 압력솥 소리는 어린 내게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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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는 늘 순서가 있었다. 어른들이 먼저였고, 엄마는 늘 마지막이었다. 식구들에게 밥을 뜨고 엄마는 다시 솥에 물을 붓고 누룽지를 끓였다. 할아버지의 식사가 끝날 때 맞춰서 누룽지를 끓이려면 엄마의 식사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누룽지를 다 드시고 난 뒤였다. 언젠가 밥이 모자라는 날에 엄마는 누룽지에 물을 말아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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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사정을 알 리 없는 우리는 밥상 위에서 투정을 부렸다. 밥 위에 드문드문 떠 있는 보리알을 젓가락으로 골라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특히 입이 짧아서 못 먹는 음식이 많았다.“또 보리야?”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엄마는 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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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통에 갈다 만 깨를 한 숟가락 떠 내 밥그릇에 얹었다. 간장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참기름을 둘렀다. 숟가락으로 밥을 천천히 비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한 상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상 할머니까지 둘러앉아 있었다. 엄마는 어른들 그릇을 오가며 반찬을 더 얹고 국을 떠 드렸다. 그 사이에 내 밥그릇도 슬며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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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절구통에 깨를 조금 남겨 두었다. 절구통 속에는 늘 바닥에 얇게 깔린 깨가 있었다. 나는 밥상에서 숟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엄마는 말없이 절구통으로 갔다. 손바닥만 한 종지에 깨를 덜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렸다. 간장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참기름을 둘렀다. 숟가락으로 밥을 비벼 내 앞으로 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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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밥 위에 갓 간 깨를 얹어 드시는 걸 좋아했다. 엄마는 절구통을 옆으로 끌어당겨 방망이로 깨를 한 번 더 눌렀다. 먼저 할아버지 밥 위에 한 숟가락 얹고, 남은 깨를 우리 밥그릇에도 나누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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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그 절구통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마늘분쇄기가 부엌에 들어온 뒤에도 엄마는 절구통을 버리지 않았다. 마늘을 넣고 방망이로 몇 번씩 내려쳤다. 깨도 그 안에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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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하던 날, 엄마는 절구통을 비닐에 둘둘 말았다. 그리고 우리 집 찬장 어딘가에 넣어 두라며 내 손에 들려 주었다. “버리지 말고 둬.” 나는 필요 없다고 몇 번 말했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그렇게 절구통은 우리 집 찬장 속으로 들어갔고, 내 기억에서도 함께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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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단둘이 만난 기억이 거의 없어 싸울 일도 없었다. 엄마가 다리 수술을 한 뒤부터였다. 엄마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예전에는 엄마 집에 들러도 한 시간쯤이면 돌아왔다. 수술 뒤에는 하루가 길어졌다. 식탁에 마주 앉아 있어도 우리는 한동안 말을 찾지 못하고 휴대전화기만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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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뒤 엄마의 몸은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시장에 가면 소리가 뒤엉킨다며 귀를 만졌고, 집에서는 우리가 너무 크게 말한다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보청기 때문이다. 나는 장을 보면 엄마 집 주소를 먼저 적는다. 남편은 고장 난 것을 고치러 들른다. 우리 부부는 어느새 엄마 집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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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작은 돌돌이 손수레를 끌고 시장에 간다. 손수레가 먼저 굴러가고 성치 않은 다리가 그 뒤를 따라온다. 지난 주에는 전화를 받지 않아서 엄마의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문을 열고 가보니 잘 앉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물김치를 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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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드려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말이 먼저 거칠어졌다.

“인제 그만 좀 해요.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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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쯤 엄마 집에 들르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가 말했다.

“집에 절구통 있지?” 엄마는 왜 필요한지 말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찬장에서 절구통을 꺼낸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이다. 비닐을 묶어 들자 묵직한 무게가 손에 걸린다. 절구통을 들고 엄마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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