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인분의 슬픔 / 청랑
어느 시인이 “혼자 먹는 밥이지만 세상은 그릇 속에 다 와 있었다.”라고 했다. 비록 혼밥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 아닐까. 밥 한 그릇에는 흙과 물, 공기와 햇빛, 바람, 미생물, 농부의 정성, 밥을 짓는 사람 등 이미 수많은 노고가 들어있으니까.
코끝에 와 닿는 바람이 알싸하다. 터미널 역 안에는 식당이 즐비하다. 죽 늘어선 긴 의자에 여러 사람이 등 돌리고 밥숟갈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김밥이나 라면, 가락국수를 먹느라 구부린 뒷모습에 뽀얀 햇살이 스며들었다. 음식이 아무리 초라해도 밥을 먹는 행위는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나도 갓 지은 밥과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싶었다. 콧잔등에 땀방울을 송골송골 맺으면서. 따뜻한 국물이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러운 기억을 달래주는 음식이 아니던가. 그런데 애써 찾아간 그곳은 정기휴일이었다.
아쉬운 발길을 돌려 가끔 들렀던 분식집을 찾았다. 젊은 직원은 우선 몇 명이냐고 물었다. 요즘 식당에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 대신에 ‘몇 분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럼 난 ‘혼자라서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표정으로 검지를 추어올린다. 이곳도 어둡고 칙칙한 불경기를 견디는지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이 휑했다. 치아교정 치료를 받고 난 후라 통증이 온 신경을 갉아댔다. 간단하게 먹을 잔치국수를 키오스크로 주문했다. 단무지 몇 조각과 조미료 냄새가 확 풍기는 미적지근한 잔치국수가 내 앞에 놓였다.
맛도 모른 채 음식을 삼키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었다. 누워있다 나오신 듯 부스스한 백발에 반쯤 접힌 허리를 장우산에 의지한 채 발밤발밤 들어섰다. 할머니는 햇살이 먼저 자리 잡은 사인용 식탁에 앉았다. 노곤했던 몸과 마음을 햇볕에 빼앗긴 걸까 셀프로 가져온 물만 들이켰다. 주문을 도와드릴까 할 때쯤 직원이 식탁 위에 음식을 탁탁 올려놓았다. 흰밥에 단무지와 건더기 없는 시뻘건 김칫국물이 다였다. 할머니는 천 원짜리 지폐를 청년에게 건넸다. 곧 김칫국물을 밥 위로 쏟아붓고 단무지를 손가락으로 집어 우물거렸다.
할머니는 왜 이런 식사를 하는 걸까. 눈치나 체면보다 밥 한 끼가 더 절박했을까. 아니면 그날이 그날인 듯 똑같은 일상을 방구석에서 보내느니 바깥바람을 쐬러 나오는 걸까. 그도 아니면 비록 함께 앉지 않아도 사람들의 온기가 있는 식당이 나아서였을까. 나도 외롭고 쓸쓸할 때면 찻집을 찾아 사람들 틈에 끼어 앉으니까. 혼밥을 드시는 할머니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일들은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요즘 혼자서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바쁘기도 하고 또 사람 관계가 점점 메마르고 소원해졌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해졌다면 함께했을 때 아팠던 기억이 있어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혼자서 먹는 밥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할머니를 보며 <사람과 고기> 영화가 생각났다. ‘고기 무전취식’을 하는 세 노인 이야기다. 독거노인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나날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늙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그들은 어느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의기투합한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외면하고 살았던 외로움과 정서적 허기까지 채운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다.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결핍은 품위나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니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삶일지라도 곁에 누군가 함께 할 때 우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의 고귀함과 밥의 경건함을 보여준 영화였다.
어느 날 모임에서 ‘혼밥 레벨’을 어디까지 해봤냐는 게 화두가 되었다. 나는 가장 레벨이 높은 삼겹살을 혼자 먹어봤느냐고 물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고기는 일 인분은 주문받지 않아 적어도 이 인분 이상 시켜야 한다. 음식이야 먹다 남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홀로 고기를 익히고 쌈을 싸서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만 채우는 행위 같다. 또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고. 어쨌든 가장 맛있는 고기는 좋은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얘기 나누면서 입이 미어지라 먹는 데서 느끼는 게 아닐까.
나는 혼자서 웬만한 종류의 식당은 두루 다닌 듯하다. 그중 가장 멋쩍은 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였다. 맞은편 의자에 옷을 걸쳐 놓아 둘인 양 시치미 떼었지만, 산해진미 가득한 음식이 지천인데도 영 맛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들 사이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나는 마치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처럼 앉은 자리가 불편해 서둘러 나왔다.
혹시 우리는 자신이 먹을 음식 할당량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닐까. 그럼 난 지금껏 얼마만큼이나 그 할당량을 채운 걸까.
어쨌든 우리는 모두 일 인분의 음식을 또 일 인분의 삶을 각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 순간 그 분은 낯선 할머니가 아니다. 쓸쓸하게 김칫국물에 찬밥 말아 드시던 내 엄마였다.
“저런 배고팠구나. 내 딸!”
“많이 먹거라, 체할라 천천히 먹거라.”
마치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홀로 목구멍으로 밥을 밀어 넣으면서 이런 따뜻한 말과 지지해 주는 온화한 눈빛이 그리웠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