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마루 한 칸 / 김 숙
오래 붙잡고 있다가 끝내 떠나보낸 우물마루 한 칸이 있다.
퇴직 무렵이었다. 집 밖에 나만의 방을 꾸미리라, 마음먹었다. 주위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했다. 평생 집 밖으로 돌며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무슨 방을 또 꾸리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 안의 방이나 잘 가꾸며 쉬라는 말도 뒤따랐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같은 곳이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빙글거리는 지인도 있었다.
시큰둥하기보다 빙글거리는 반응에 조금 더 솔깃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라니, 턱없는 이야기였다. 그이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을 위한 방이 필요’하다고 주창했는데 그 무렵 나는 소설은 말고 글쓰기 자체를 사전에 넣지 않은 때였다. 그저 밥벌이의 터전을 떠나 일손을 놓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될까. 문득문득 밀려오는 정체 모를 불안감 때문에 방 하나를 꿈꾸었던 것 같다.
현재는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시대도 아니고 나는 그녀처럼 분명한 사고의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을 연출하는 일에는 호감이 갔다. 경제적인 효과도 창출하고 자신의 꿈을 키운다는 점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딱히 정하지는 않았어도 퇴직이 임박해서는 어떤 공간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어쩌면 인생의 미로를 배회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집과 일터를 직선거리로 오가던 수십 년 세월의 공백을 메우고 싶었을 수도 있고, 서글프지만 살기 위한 원초적 본능의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다.
주로 수공예 공방에 눈길이 갔다. 펜화를 그리는 화가를 만나 생활 속에 녹여낼 그림을 그렸다. 실내장식 소재로 쓸 물품을 틈틈이 수집했다. 프랑스나 북유럽 자수에 필요한 도구, 수실 등을 모았고 도자기류나 목가구, 패브릭 제품들도 구했다.
소반이나 옹기류도 몇 점 추가했다. 손때 묻은 반닫이, 모서리가 살짝 나간 조그만 화각장도 있었다. 시각을 달리하면 모두 아름다운 쓰레기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바라보면 각각의 옛이야기를 담고 있음이 정겨웠다. 또 쓸모없다고 내쳐진 것들에서 쓸모를 찾아 재탄생시키겠다는 바람도 한몫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속품 가게와 공방을 꾸리던 선생님이 우물마루 한 칸을 권했다. 어느 고택 툇마루를 뜯어낸 것 같았는데 슈퍼 싱글 침대 크기만 했다. 전체를 짜맞춤으로 만들었음에도 오랜 세월의 무게를 받아내느라 네 귀퉁이 연결 부위가 헐거워졌다.
발을 디디면 뒤뚱대며 삐그덕거렸다. 누군가가 그곳에 대못질을 가했음에도 낡고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우물마루 자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로진 마루 틀마다 길게 홈이 파였고 아홉 개의 마루청판(抹樓廳板)이 두 줄로 주욱 끼워졌다. 잘 손질하면 작업 탁자나 찻상 등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가나 관청의 마루에 주로 쓰였던 이 마룻장은 처음부터 대책 없는 지름신의 유혹으로밖에 해석되지 않기도 하다. 변명처럼 우물마루의 기억을 잇대본다면 내 유년의 외할머니 집 대청마루 정도다. 외삼촌이 혼인하면 살 집이라고 신혼집을 미리 마련했다. 당시 어른들 말로는 5칸 겹집이라 했는데 가운뎃방이 대청이었고 우물마루가 깔렸다.
신혼부부를 기다리는 빈집이었지만 먼 친척쯤의 일꾼들이 아침저녁으로 쓸고 닦았다. 반질반질 윤이 난 마루는 한동안 나의 놀이방이 되기도 했다. 대청 바닥은 늘 고슬고슬해서 맨살에 닿아도 쾌적한 촉감이 전해왔다. 그 감촉 뒤에는 평생 나를 지탱해 준 외할머니의 사랑이 남아 있다. 심신이 헐벗은 채로 다가가도 언제나 내 새끼로 품어 주던.
공방 선생님이 보여준 우물마루를 덜컥 받아들였다. 그런데 당장 어떤 공간을 만들 것도 아니라서 보관이 문제였다. 덩치가 커서 창고에 넣을 수도, 추억이 담겼다고 거실 가운데에 버젓이 깔아놓을 수도 없었다. 결국 앞 베란다로 내보냈다. 기호가 전혀 다른 남편은 은근히 불평하거나 거추장스러워했다.
할 수 없이 깔아놓았던 마루를 안방 창 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길게 세웠다. 뒤틀릴지 몰라서 마루판은 따로 빼 한쪽에 쌓았다. 그러기를 여러 해가 흘렀다. 인내심의 한계를 넘었던지 남편은 급기야 시누이의 시골 형님네로 보내자고 운을 띄웠다. 어차피 군불용 땔감으로나 사용할 테니 마루 틀을 톱으로 잘라서 옮기자고 했다.
한때 내 꿈이 담긴 물건을 톱질하겠다고 하니 괜스레 허리께가 시큰하고 욱신거렸다.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었다. 반대할 수 없는 데는 내 계획이 실현과는 너무 멀어진 점도 있었다. 하지만 추억과 꿈의 우물마루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점은 가슴 아팠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시누이 남편이 의견을 냈다. 군불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중고 시장에 내놓아 보겠다고 했다.
정말이지, 필요한 누군가가 나타났고 우물마루를 데리러 그들이 왔다. 스포티한 차림의 50대 중반 정도 부부였다. 팔월 말의 정오를 넘긴 시각, 태양열은 불지옥처럼 이글대는데 현관을 들어서는 두 사람에게서 신선한 새벽바람이나 맑은 숲 향기가 나는 듯했다. 이들은 우리 집 테라스 한쪽에 머문 허름한 우물마루를 보고 반색했다.
초면인데도 서글서글한 인상 덕분에 무슨 일을 하는지, 부부 중에 누가 쓸 건지. 어떻게 사용할 건지 등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건축설계사 사무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걸 보자마자 남편이 이거 사달라고 해서 동의했다며 아내가 말했다.
마루틀은 틀대로 마룻장은 마룻장대로 사용할 거라고 그 여자의 남편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마음이 환해졌다. 이름 모를 아궁이에서 재가 될뻔한 내 꿈 한 조각이 새 생명으로 날아오르는 희망이 보였다.
마룻장을 들어내며 우물마루 탁자가 놓인 나만의 방은 물 건너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공감과 지지로 남겼다. 물리적인 공간에 방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다행일지 글을 쓰는 마음의 방은 가꾸고 있다. 날이 갈수록 조금씩 더 윤나는 마루 한 칸쯤의 방을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