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이기를 포기하다
유숙자
외출할 때 세련미를 더 해주는 마지막 완성은 신발이 아닌가 싶다.
화장에서부터 옷매무새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갖추었다 하더라도, 어떤 신발을 신느냐에 따라 총체적 미적 감각이 달라진다. 하이힐과 플랫슈즈에 따라 몸가짐이 조금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레를 공부하던 어린 시절, 첫 강의가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발레리나는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밀고 배는 들여보내며, 허리를 꼿꼿이, 시선은 정면에서 약간 위로 두고 당당하게 걸으라 했다. 그때는 워낙 체격이 가냘프고 과격한 연습 탓으로 살이 오를 틈이 없었지만, 곧고 바른 정신은 자세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세가 생활의 기본이라는 어릴 적 습관이 장성하여도 한결같았다.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 발레리나처럼 걸었고, 플렛 슈즈를 신어도 자세는 여전했으나, 발이 편안하고, 볼이 넓어 예쁘지 않은 내 발을 감싸주어 좋았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 대로 자세만큼은 지금까지 바르게 유지하는 편이다.
얼마전, <천하의 펠로시 마침내 10cm 하이힐을 벗다. 아! 세월이여.>라는 타이틀의 글을 읽었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지난달 룩셈부르크 방문 도중 대리석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수술 후 처음 의회가 개원한 1월 3일 하원의장 선출을 위해 복귀했는데, 평소와 달리 하이힐이 아닌 굽이 없는 플랫 슈즈를 신고 부축받으며 플로어에 입장했다. 나이 80이 넘은 최근까지 공식 석상에 4인치의 하이힐 즐겨 신었기에 이날 굽이 없는 하늘색 플랫 슈즈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동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그가 지난달 계단에서 넘어졌을 당시에도 하이힐을 신고 있을 정도로 애착이 강했고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그 발로 일어나 버티었으니, 그녀가 얼마나 하이힐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녀에게 하이힐은 필수품이며 품위를 상징하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우리 협회에 H라는 수필가가 있었다. 유머 감각과 세련미가 뛰어난 그는 문학과 미술 분야를 넘나드는 재원으로, 연회지 재미수필 표지에도 일조했다. 지금은 이웃 나라에서 서양 화가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그도 하이힐 예찬가이며 캐주얼 복장에도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다.
어느 해 가을 문학 행사 때, 순서를 맡았기에 정장을 갖추고 구두를 신으려니 갑자기 발목이 시큰거려 하이힐 신기가 힘들었다. 이리저리 발을 움직여 가며 애써 봐도 별 진전이 없어 뒷굽이 낮은 신으로 갈아 신고나니 그제야 통증이 덜하여 무난히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내 신발은 아주 특별한 날 아니면 굽이 낮고 편안한 신으로 바뀌었다. 차츰 세련미에서 멀어져 가는 나에게 H 수필가는 “선생님, 하이힐은 여자의 자존감인데 그렇게 편한 신만 신으면 여자이기를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 마셔요.” 해서 한바탕 웃었다.
여자? 여자이기를 포기? 벌써 20년 전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분명 꽃 같은 시절이었겠다.
행사가 많았던 젊은 시절에는 종일 하이힐을 신고 서 있어도 참을 만했다. 마음에 드는 구두를 고르려 가게에 가거나 잡지를 뒤적이던 시절이 그립다. 외출할 때마다 이것저것 신어 보며 만족감을 높이려 했던 그때가 생동감 있어 좋았다. 그 시절이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두 무릎을 수술하고 긴 회복 기간을 거치는 동안, 가장 친숙하고 안정감 있는 신발이 운동화이다. 그렇다고 운동화만 신는 것은 아니다. 예의를 지켜야 할 모임이라든지 어떤 기분 좋은 날에는, 자주 신지 않아 아끼는 것처럼 깊숙이 넣어둔 구두를 꺼내 신지만, 이제는 꽃 시절이 지난 지도 오래되었고, 건강만을 생각할 나이에 이르니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신발의 변천뿐이겠는가. 우리의 삶도 한창 젊었을 때는 하루하루가 낯설고 자신에 대한 예감과 기대로 가득 차 있지 않던가. 순간이 새롭고 충만하여 내면생활이 기쁨으로 출렁였는데, 흐르는 세월 속에 퇴색해 짐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끝없는 모색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숱한 경험을 쌓은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현명해져서 어느 정도 과장 없이 삶을 바라보게 되는 여유, 그 때에 이르면 노년-.
삶을 통하여 체험했던 순간들, 그 시절이 다시 주어지지 않지만, 체험 사실 자체는 마음에 남아 추억할 수 있기에 영혼이 비옥해 진다.
가슴을 펴고 허리를 세우며 정면을 향하던 시선이,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허리가 조금 낮아지고 어깨도 겸손해지는 마음가짐. 이제는 전능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기에 비록 여자이기를 포기했다손 치더라도 당당해진다. 아마도 그 힘은 나 자신을 믿고 봐주는 자존감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 나이 듦의 넉넉함이여!
리스트의 위안(Consolation)이 오후의 고요 속에 잠긴다.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