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스팟 / 박순태

신비로운 영역이다. 우리네 몸속 은밀한 어디에 민감한 부위 하나가 있다. 정확한 위치를 설명할 수 없으면서 막상 건드려지면 존재 자체가 온통 요동쳐버리는 곳. 의학은 그것을 성적 쾌감의 진원지라 칭하고, 세속은 그 극한점을 찾아내려 발싸심이다. 하지만 인간은 평생 자신만의 고유한 G-스팟, 그것을 찾아 헤매는 존재인지 모를 일이다.

질주 본능, 젊은 날에는 그것이 성공의 비결인 줄 알았다. 남보다 우뚝한 자리, 통장 속 높은 숫자, 회식 자리에서의 상석. 마치 그것을 이루면 생의 허기가 끝날 것 같았다. 상 받는 날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래 보았던 그 시간,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만 그 기쁨은 퇴근길 편의점 불빛 앞에서 벌써 식어가고 있었다. 금세 사라지는 혀끝에 닿은 꿀물에 불과했었다.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부터 또 다른 결핍을 낳는 요물이었다.

오르고 또 오르려는 야욕의 계단. 자꾸만 더 깊은 곳을 더듬고픈 생리현상이며 기력 보강을 위한 식탐. 부를 이루고 나면 명예를 원하고, 사랑을 얻은 뒤에는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맨 끝점이 정작 가장 가까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눈이 바로 위의 눈썹을 볼 수 없듯, 삶의 본질을 감지하지 못한 게다.

어느 해 늦봄이었다. 직원의 안전사고로 병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숨죽이며 밤을 지새웠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링거병 속 액체가 나릿나릿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생이라는 것도 저렇게 천천히 자기 시간을 소모하며 버티는구나 싶었다. 새벽 두 시를 넘긴 병동은 기괴하리만큼 정적이 흘렀다. 보호자 의자에 웅크린 채 잠든 아낙네의 굽은 어깨, 자판기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 쥔 중년 사내의 멍한 눈빛, 통증을 참아내느라 입술이 하얗게 질린 환자의 숨소리. 그곳에서는 직함도, 명성도, 재산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벗겨진 병실 슬리퍼처럼 인간은 모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인간은 쾌락보다 더 깊은 무언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남편의 깁스한 다리의 발등을 오래 문질러 주었고, 누군가는 침상에서 낙상한 치매 걸린 어머니 귀에 입을 들이대고 제 이름을 수십 번 되풀이하여 밀어 넣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져도 아들 이름을 사랑으로 품어달라는 듯이. 그 장면 앞에서 청춘의 뜨거운 입맞춤은 한줄기 피어오르는 수증기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구나 싶었다.

생의 근원을 파고든다.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흥분이 아니라 곁을 지켜내는 자애로운 체온의 전달이다. 세상이 떠들어대는 자극의 격분 점이 아니라, 원초적 본능을 뛰어넘은 인仁에 의해 영혼이 조용히 떨리는 그 자리 말이다. 어쩌면 삶의 G-스팟도 측은지심, 그런 영역이 아닐런가 싶다.

남몰래 울컥해지는 때가 있다. 비 내리는 저녁, 냄새 하나에 문득 가슴 뭉클해지는 감흥. 무심코 들은 노랫말 한 가락에 오래 묻어둔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흥취.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띄우고픈 정취. 인간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가장 깊이 두드리는 그 무엇인가로부터 삶의 의의를 받아들이나 보다. 세상이 흥분이라고 일컫는 그 부위보다 영혼이 떨리는 자리, 거기에 노크 받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외면보다는 내면으로 반응하는 실체인지도 모른다. 돌은 툭 건드려도 침묵하지만, 사람은 마음의 어느 정점에 타인의 감정이 살짝 닿기만 해도 생 전체가 요동친다. 누군가는 무심한 농담 한마디에 평생의 자존심이 부서지고, 또 누군가는 단 한 번 받은 선심 때문에 평생을 버티어낸다. 존재란 결국 상처와 회복에 따르는 감각의 총합이 아닐런가.

마음을 셈한다. 사람마다 건드려서는 안 될 자리, 건드려주어야 할 자리, 평생 기다려온 위로의 자리가 따로 있다. 어떤 이는 인정에 굶주려 있고, 어떤 이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손길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또 어떤 이는 어린 시절 내내 듣지 못한 칭찬 한마디의 결핍을 가슴속에 평생 품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심에는 저마다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희열과 상처의 핵이 숨어 있다.

봄날, 햇볕 아래 피어나는 꽃에 마음을 모은다. 만개한 꽃송이는 꽃봉오리를 더듬는 바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햇볕의 농도로 꽃잎을 열어젖힌다. 사람 역시 겉을 흔들어대는 자극보다 마음속 깊이 스며든 순정에 감화되어 삶의 봉오리를 활짝 펼친다. 인간사는 그렇게 순애보로 엮이어지나 보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남을 무너뜨리는 말끝이 아닌, 영혼을 살아나게 하는 손끝을 맞아들이는 영역이 아닐런가. 세상에는 강렬한 자극이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부드러움, 바로 그것이다. 가벼운 눈웃음에 꽁꽁 얼었던 가슴이 녹아들고, 다정한 목소리에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곤 한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몇 번의 순간이 있었다. 완전히 부서졌다고 믿었던 날, 누군가 무심히 건넨 한마디 덕분에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힘내세요”도 아니었고, “괜찮아질 겁니다”도 아니었다.

“많이 버텼네요.”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리만큼 바로 그곳에 닿았다. 마치 오래 잠겨 있던 녹슨 문이 안쪽에서 확 열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사람은 이해받고 싶어서 살아간다. 육체의 비밀보다 더 깊은 자리, 한마디 위로에 문득 떨리는 곳. 어쩌면 우리가 평생 찾는 G 스팟은 몸이 아니라 영혼 속에 있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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