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타일 / 황혜란
엄마가 아빠의 집에 가사 도우미로 채용되었다. 그들이 이혼한 지 이십 년도 더 지난 바로 지금에서야 일어난 일이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간다지만 이 두 사람은 죽은 첫 아들을 포함하여 아이 다섯을 낳을 때까지 전혀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물과 불처럼 서로 달랐고 몸은 섞으며 살았는 지 몰라도 대화는 언제나 평행선을 달렸다. 나는 머리가 좀 크면서부터 장녀로서 그들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깔끔하게 이혼을 하라고.
엄마나 아빠나 족보에 올릴 근사한 관직 하나 얻은 조상님 한 분이 안 계셔서일까. 우리는 체통과 법도 같은 것하고는 멀고 먼 집안이었다. 이혼하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기도 했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아주 쿨하게 이혼한 엄마 와 아빠를 함께 모시고.
운명은 엇갈려 백 년해로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생일은 딱 일주일 차이가 났다. 서울에서, 고향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남매는 가정의 달 오월이 되면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곧 두 사람의 생일까지 연달아 돌아왔다. 축하를 하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도대체 몇 번이나 모여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효율적이고 가성비 있게 다채로운 집안 대소사를 한 번 만나는 것으로 ‘퉁’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매년 되풀이 되다보니 이제는 으레 이혼한 부모의 탄신일을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고 있다. 뭐 말하자면 ‘아메리칸 스타일’로.
왜 아메리칸 스타일이냐고? 헤어진 애인과 현재의 애인이 같이 만나 밥도 먹고, 이혼한 부부가 함께 여행도 가는, 한국 정서로 볼 때 아직까지는 낯선 모든 것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또 ‘퉁’치기로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요, 좋고 나쁨의 경계를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만의 정의일 뿐.
다 같이 만나기 시작하고는 어쩌면 두 사람이 재결합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재결합 축하 여행이라는 것을 떠나고 결국 대판 싸워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바람에게 잡힐 구름이 아니고 햇빛이 쏟아진다고 비가 절대 안 오리라는 법은 없듯이 두 사람은 자신만의 인생길을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남매는 흔쾌히 그들의 뜻을 다시 한 번 존중했다.
엄마가 얼마 전에 요양 보호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무당이란 직업이 진저리나게 싫고 힘들다며 제 2의 직업을 찾겠다는 의지 하나로 필기, 실기를 단번에 통과했다. 나이 칠순을 훌쩍 넘기고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엄마에게는 꽤나 험난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연하곤란’이니, ‘수근관 증후근’이니 공식화된 용어들로 엄마의 뇌가 얼마나 과부하 상태였을지 짐작이 간다. 과연 무당 아니랄까봐 엄마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새로운 직업은 아빠를 돌보기에 아주 적합한 일이 되었다.
아빠가 경도인지장애를 보인지 삼 년이 지났다. 진료를 꾸준히 봐서 그런지 당장 치매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점 점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을 뿐더러 청소와 설거지도 버거운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회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아빠의 뇌는 분명 퇴화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나가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다니라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동생들과 가사 도우미를 보내면 어떨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무렴 남보다는 엄마가 낫겠지, 라며 엄마에게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 사남매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인 것처럼 엄마는 흔쾌히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주 쿨하게, 역시 ‘아메리칸 스타일’로.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 엄마는 아빠 집의 화장실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왔다. 반짝반짝 윤이 난다. 세제며 도구를 얼마치 샀고, 최선을 다해서 닦았노라 자랑스레 말한다. 나는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이달치 급여를 송금한다. 다음 날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반찬 다섯 가지에 국까지 끓여 아빠에게 가져다주었다고 또 전화가 왔다. 기대했던 바대로 우리 방 여사의 매력은 이러한 점이다. 무능력하고 쇠심줄처럼 질긴 아빠의 고집과 소통 불능에 대해 침을 튀기며 흉을 보다가도 자신이 해야 할 일 앞에서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뛰어드는 사람. 1차 청소가 끝났을 뿐 다시 2차 청소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결의에 찬 그녀를 어쩌면 좋을까!
나는 비로소 불타는 사랑과 열정으로 아이 다섯을 낳고(분명 그들이 당시엔 그랬으리라 믿는다) 치고받고 싸울 만큼 치열한 중년을 지나 남성도 여성도 아닌 오로지 하나의 인간이 된 그들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딸인 나로서도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제 그들이 쩨쩨하고 치사한 세월을 제쳐두고 동지 의식을 갖거나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래가 그려진다.
살다가 종종 힘들 때면 어디서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진짜 부모가 나타나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 부모가 갖고 있는 것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하고는 늘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내게 물려준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나는 어떠한 유산을 더 물려받게 될까. 오늘에야 깨닫는다. 그들이 보여 준, 이러한 ‘아메리칸 스타일’로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내게 물들고 있다는 것을.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에서 물러나지 않고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그들에게서 내게 전해질 작고 사소한 유산에 대해 눈을 뜬다. 뒷배가 참 든든해지는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