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아, 꽃아 태항산 꽃아 / 노정숙
태항산 기슭 상우촌에 항일투쟁을 하다 간 청춘들을 찾아갔다. ‘의용군 열사지묘’라고 새긴 묘비 앞에서 부른 초혼가가 단숨에 스며든다. 작은북 장단은 금 간 돌무덤의 애통을 누르고 새로운 기운을 돋운다. 장하다 장하다 무명 열사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그들의 순정한 뜻을 받든다.
꽃아 꽃아 하늘꽃아 다시 피어라
총칼 아래 무명열사 쓰러졌어도
꽃아 꽃아 하늘꽃아 다시 피어나라
묘소 입구에 대추나무 몇 그루가 있다. 자잘한 대추꽃 옆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흰 국화꽃이 한참 어른거린다. 꺾인 꽃에 숨을 불어넣는 방법은 오래 바라보고 기억해 주는 것이다. 대추꽃이 지고 대추가 익을 때까지 흰 국화가 배경이 되는 풍경을 그려본다.
묘소를 향해 산길로 올라가며 무심했던 출렁다리가 내려올 때는 울렁울렁 어질머리를 남긴다. 다 피지 못하고 꺾인 꽃들의 넋이 태항산 기슭을 휘돌고 있는 듯하다. 거대한 초록 태를 두른 산허리와 기기묘묘하게 솟은 바위를 더듬는다. 대협곡을 거느린 이름만 남은 도화곡桃花谷에 복숭아꽃은 없고 줄지어 있는 복숭아빛 조화造花가 이물스럽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도 의병이 나온다. 사랑과 안위를 버리고 빼앗긴 나라의 해방을 위해 투신한 의병들, 만주로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들이다. 그 의병들이 조선의용군과 맥을 같이한다. 우리가 잊으면 안 될 이름을 오래 잊고 살았다.
조선의용군이 처음 자리를 잡은 홍복사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황량한 흔적만 남았다. 동네 초입에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와 중국 지방정부가 세운 ‘조선의용군 순국선열 전적비’를 기이한 모양의 돌거북이 받치고 있다.
거센 바람이 쓸고 간 주둔지와 곧 주저앉을 듯한 김무정 사령관의 거처를 보니 왜 이리 송구스러운가. 동네 주민들이 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은 전설 같다. 커다란 개가 목줄 없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잠시 현실감 잃은 정신을 되돌렸다. 격정시대는 흘러가고 익숙한 한촌 풍경이다.
화북지역의 조선의용군는 군사학교에서 꾸준히 군사 훈련을 하면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온 조선인 병사를 대상으로 선전전을 펼쳤다. 당시 조선의용군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엘리트가 많았고 용맹스러우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산시성 윈터우디촌 곳곳에 표어를 새겼는데 망대 건물 한 곳에만 우리말 표어가 남아있다. 낡고 흐려진 글씨의 중요성을 알고 이 동네 주민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덧칠을 해서 한글 표어를 볼 수 있다.
‘왜놈의 上官놈들을 쏴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아오시오’
‘强制兵 끌려나온 동포들 팔로군이 있는 끝마당 조선의용군이 있으니 총을 하늘로 행하여 쏘시오’
‘조선말을 자유대로 쓰도록 요구하자’
몸을 한껏 낮추고 혹은 사다리에 올라가서 한 자 한 자 썼을 절절한 마음을 떠올려 본다. 담 아래 빨간 접시꽃 무리가 오래된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다.
경기민예총 식구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1942년 5월 반소탕전에서 전사한 석정 윤세주와 진광화의 옛 묘소에서 한바탕 해원 공연을 했다. 기타를 치며 수난자를 부르고, 격렬하고 애절하게 춤을 추며 예인들은 예를 다해 의인 열사를 기렸다. 망자를 위한 위무는 산 자의 가슴을 먼저 흔들어 놓는다. 휘날리는 흰 명주는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윤세주 진광화 두 항일 열사는 중국인들도 추모하여 한단시에 있는 국립묘소인 진지루위 열사릉원으로 이장되었다. 우리는 그곳을 찾아가 헌화하고 축문을 읽었다. 유세차~ 로 시작해서 최근의 나라 상황과 기원까지 고한다. 배경으로 연주한 오카리나 선율 ‘아리랑’은 낮은 호곡보다 카랑카랑 난만하다. 초혼의 답신인 듯 뜨거운 한낮 볕 아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뒤에서 손을 모은 나는 빚진 듯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깊이 절한다.
셔현 스먼촌에 있는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은 조촐하지만 태항산의 항일 지사들의 사진과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1938년 10월 중국 무한에서 창설된 조선의용대는 조선의용군의 전신이며, 중국 관내에서 수립된 첫 번째 항일 무장부대였다. 태항산으로 들어오면서 외국인 신분으로 군사학교에 다니기 위해 조선의용군이 되었다. 두 장의 창립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중국에서의 한국독립운동사와 사망 연대별로 손일봉, 좌권, 문명철, 한락산 … 도표에 적힌 이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국 시기 미상의 최지남, 이용인, 김영신, 오균, 한진, 임평, 김명화 … 아득한 이름들을 눈으로 불러본다.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은 김학철의 《격정시대》 책표지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는 격렬했던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잡혀갔지만 치료를 거부하며 끝까지 일본군에 저항하다 투옥당했다. 이 최후의 분대장은 해방이 되어 풀려났다. 김학철은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와 낙천성을 잃지 않은 전우들의 생생한 모습을 전기문학으로 남겼다.
예스러운 휘장 옆에 구대 편제표가 있다. 김원봉 대장 아래 13명의 본부대원, 구대장 박효상 구대원 43명, 구대장 이익성 구대원 41명 … . 죽은 후에도 숫자로 기록되는 모든 구대원이 무명씨다. 그들은 무명 열사가 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다 간 시인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나는 이름 모를 수, 한, 식 이런 뜨거운 조선 청년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을 남기지 못해 더 애틋한, 모두가 기리는 꽃이 되었다. 내 안에서 둥둥 후렴으로 울린다.
꽃아 꽃아 태항산 꽃아 다시 피어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