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글이 가면(假面)이 될 때

댓글 2026-10-01 (목) 12:00:00 성민희 수필비평ㆍ소설가
 
그 말을 수긍하면서도 완전히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났다고 해서 그 글을 쓴 사람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글과 삶이 무관하다면 우리가 굳이 진심을 다해 글을 쓸 이유가 무엇인가. 거짓된 삶도 그럴듯한 문장으로 얼마든지 포장될 수 있다면 글쓰기는 결국 정교한 언어 기술이나 자기 포장에 지나지 않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글이 곧 삶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놓아버리고 싶지 않다.


그 믿음 때문일까, 글을 쓴다는 일이 새삼 두려워진다. 내 글이 내가 살아내는 삶보다 앞서갈까 봐, 수려한 문장으로 내 삶을 포장해 버릴까 봐. 글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아닌 사람을 감추는 가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과 글을 완벽히 일치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둘 사이의 거리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쓴 대로 다 살지 못함을 잊지 않고 그 간격을 조금씩 좁혀가는 것, 그것이 작가로서 붙들 수 있는 최소한의 성실함이라 믿는다.

오래된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책장에서 찾아낸다. 속이 썩어버린 나무를 알아버린 지금도, 책 표지의 ‘작은 나무’ 눈망울은 여전히 맑다.

<성민희 수필비평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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