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파도와 연필꽃/ 김경희

곡괭이를 쥔 아버지의 팔이 번쩍 올라갔다. 묵직하게 떨어졌다. 쿵, 흙덩이가 튀어 올랐다. 논밭 농사로는 여섯 남매를 가르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집 뒤꼍 산에 밤나무를 심기로 했다. 밤나무가 잘 자라려면 토심이 깊고 부석질이 많아야 한다는데, 뒷산이 딱 맞았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집 뒷산 소나무와 굴참나무를 베어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곡괭이를 메고 날마다 산에 올랐다. 새끼줄을 띄워 5미터 간격, 1미터 깊이로 흙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놀다가 고개를 들면,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부렸다 펴지는 등. 곡괭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어깨가 치켜 올라갔다. 너무 일정한 동작과 속도여서 지루할 정도였다.

열두 살이었던 나는 몰랐다. 아버지가 비스듬한 산에 올라 날마다 흙구덩이를 파는 일이 어깨와 허리를 얼마나 짓누르는 노동인지를. 컬컬한 목을 축이도록 물 주전자를 가져다드릴 줄 몰랐다.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왔다. 아침 밥상에서 수저를 놓기 무섭게 아버지는 곡괭이를 메고 산에 올랐다. 땅이 꽁꽁 얼어붙거나 눈이 쌓인 날 빼고는 “쿵” 소리가 겨우내 들렸다.

이듬해, 텃밭에 청보리가 삐죽삐죽 올라올 무렵이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이웃집에 참깨 한 봉지를 가져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뒷산을 올려다보았다. 걸음을 멈췄다. 거무스레했던 산이 시뻘겋게 굽이치고 있었다. 석양빛을 받은 붉은 흙이 구불구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하나 파인 흙구덩이들은 저마다의 음을 내야 하는 단원들 같았고, 산 전체는 아버지가 3개월을 혼자 곡괭이로 일궈낸 장엄한 합창 같았다. 밤나무 묘목을 심겠다고 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혀를 차고 손사래를 쳤다. 남들이 가당찮다고 말렸지만 팔백여 개의 흙구덩이가 산비탈을 타고 일렁였다. 아버지의 곡괭이가 만든 흙파도는 흙의 물결이자, 집념의 물결이었다. 한 번의 들림, 한 번의 낙하가 쌓여 만든 그 파도 앞에서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젓가락처럼 가냘픈 묘목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봄날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10개씩 묶인 묘목 다발을 아버지는 부러질세라 조심조심 안아 산으로 옮겼다. 제수를 올릴 때처럼 구덩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묘목을 단정하게 구덩이 안에 세우고, 물통을 기울여 물을 자작하게 부은 뒤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흙을 골라 덮었다. 뿌리 주변 흙을 삽으로 끌어다가 덮고 장화 발로 꼭꼭 다져주었다. 비가 몇 차례 내리자 꼬챙이 같은 나무가 싹을 내밀었다. 여린 가지가 생기더니 누런빛이 도는 길쭉한 꽃을 조롱조롱 내려뜨렸다. 신기했다. 꽃이 진 후, 여린 나무에 연둣빛 밤송이가 듬성듬성 달렸다. 만져보니 가시가 보드라워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연두색 밤송이 가시가 억세지고 색깔이 누르스름해지면 송이가 벌어져 알밤이 떨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밤을 실컷 먹을 생각에 좋아서 말끔하게 다듬어진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 기쁨이 금세 멈춘 것은 아버지가 연둣빛 밤송이를 모조리 따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밤송이를 왜 다 따내는데요?”

“3년 정도는 따내야 나무가 쑥쑥 크고, 밤이 잘 열린단다.”

쪼그리고 앉아 밤송이를 따내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이듬해에도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연둣빛 밤송이를 따냈다. 익혀보기도 전에 열매를 모조리 잃은 밤나무는 그 아쉬움을 가지로 풀어내듯 쑥쑥 자랐다. 한두 그루만 남겨도 가을 소풍 때 밤을 삶아 도시락에 넣어갈 수 있을 텐데, 아버지는 세 해째 풋밤 송이를 따냈다. 가느다란 묘목을 심었을 때만 해도 민둥산 같던 뒷산이 어느새 초록 천막을 드리워 나무 아래서는 하늘도 조각으로 보일 만큼 우거졌다.

네 해째 가을, 드디어 가지가 휘어질 만큼 밤송이가 매달렸다. 수확의 계절이 왔다. 논밭 농사에 밤나무 과수원까지 부지깽이가 거든다 해도 일손이 부족했다. 어린 자식들까지 밤 줍기에 총동원되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게를 들고 밤을 주우러 다녔다. 집 마당에까지 밤송이가 나뒹굴어, 한눈팔면 발바닥이나 손에 가시가 박혀 눈물을 쏟았다. 장대로 밤송이를 털다가 정수리에 떨어져 아프다고 팔짝팔짝 뛰는 일이 흔했다. 날마다 작은 소동을 겪으면서도 당시 시골에서 밤나무 과수원 1호가 된 우리 집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종일 수확한 밤을 대청마루에 부려놓고 한밤중까지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천으로 닦았다. 밤알이 윤기를 머금을 때마다 부모님의 손도 함께 반들거렸다. 날이 밝으면 밤자루를 지게에 메고, 머리에 이어 신작로까지 걸어 나가 첫차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그렇게 우리 여섯 남매는 밤집 자식이 되었고, 밤 한 알 한 알이 학비가 되어 상급학교에 가 배움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렀다. 울퉁불퉁한 밤 자루를 들어 올리지도 못할 만큼 아버지와 엄마의 기력이 쇠해졌을 때, 밤나무도 늙어 밤이 열리는 게 시원찮았다. 자식들은 객지로 나가 짝을 찾아 결혼했다. 둘째 딸인 나는 종갓집으로 시집가 아들딸을 두었다. 돌아서면 돌아오는 제사를 정성껏 챙기고, 홀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았다. 항암 치료를 하려면 병원비가 필요하고, 생활비도 있어야 했다. 그때까지 전업주부였던 나는 무얼로 밥벌이해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 시작한 것이 학원 강사였다. 내 두 아이에게는 사교육 한 번 시켜주지 못하면서 나는 사교육 강사로 또래의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가르쳤다.

가장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아버지가 한겨울에도 등에서 김이 날 지경으로 곡괭이를 들어 올리며 감당했던 그 무게를. 들림과 낙하, 그 짧은 정적 속에 담겼던 책임의 무게를. 나는 땅을 믿고 시간을 믿고 나무를 믿었던 아버지의 딸이었다. 공간을 구할 형편이 안 되어 집에 컴퓨터와 프린터를 장만해 출판업을 시작했다. 개나 소나 다 하는 출판업을 왜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나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였다. 출판업은 어려웠다. 애써 만든 책은 팔리지 않았다. 책 한 권 작업이 끝나도 다음 작업이 이어지지 않아 한 달 수입이 0원인 달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흙구덩이를 파던 모습을 떠올렸다. 뒷산 전체가 몸을 비틀며 바다로 밀고 갈 기세로 굽이치던 흙파도를 기억했다.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아버지의 뒷등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3년 동안 아버지가 어린 밤을 잘라내셨듯이, 나에게도 여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견뎠다. 출판 일이 들어오면 정성껏 책을 만들어냈고, 일이 없으면 치열하게 공부했다. 3년은 풋밤을 따내야 나무가 제대로 자라고, 구멍가게도 3년은 버텨야 자리를 잡는다는 아버지 말씀을 믿으며 살았다. 그렇게 3년을 견디니 뒷산 밤나무에 밤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듯 출판일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일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원고 교정은 언제나 연필로 한다. 책상 연필꽂이에는 크기가 다른 연필 스무 개가 꽂혀 있다. 나는 이것들을 ‘연필꽃’이라 부른다. 물건도 마음도 뾰족한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연필만큼은 다르다. 제각가 다른 색깔의 연필들이 뾰족한 심을 내보이며 꽂혀 있으면 세상에 휘둘리던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연필심이 뭉툭해지면 그만큼 일을 했다는 증표다. 나는 연필을 한꺼번에 깎는다. 연필들을 뽑아 책상에 눕히고 아들이 초등학교 때 쓰던 연필깎이를 꺼낸다. 연필 한 자루, 한 자루에 “애썼다, 애썼다” 말하며 마음을 다해 돌려 깎는다. 깎을수록 짧아지는 연필. 기다란 연필 한 자루 한 자루가 제 살점을 내주며 몽당연필이 되어가는 모습에서 삶을 읽어낸다.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몸피가 줄고 물기가 말라가던 부모님의 모습이 겹친다. 가늘게 깎인 연필심에서, 고향 집 뒷산에 물결치던 흙파도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곡괭이가 하루하루 파헤쳐 일궈낸 흙의 물결을.

책은 말을 담는 그릇이라 여긴다. 나는 밥 짓는 마음으로 책을 만든다. 쌀을 씻듯 원고를 다듬고, 불을 지피듯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뜸을 들이듯 1교, 2교, 3교… 교정을 본다. 아버지가 집념으로 곡괭이질을 수백 번 반복해 밤나무 팔백여 그루를 심었듯이,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책을 만든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흙파도를 일으킨 아버지의 곡괭이처럼, 뾰족한 연필심은 나의 곡괭이다. 아버지의 흙파도는 연필꽃으로 이어졌다. 맡을수록 삶에 기운을 불어넣는 향 좋은 연필꽃. 아버지가 땅을 믿고 시간을 믿고 나무를 믿었듯이, 나는 말을 믿고 시간을 믿고 내가 만들어낸 책을 믿는다. 닳고 깎이며 피어나는 연필꽃처럼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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