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그 삶을 묻다 / 허정진

몽골 동토의 순록은 자연 속의 삶을 떠나 사람 곁에 산다. 실한 나뭇가지처럼 거대한 뿔 왕관을 쓴 채로 말처럼 사람을 태우고, 소처럼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솔방울만 한 큰 눈을 가진 쌍봉낙타, 140킬로그램의 무거운 등짐을 지고서도 하루 40킬로미터의 뜨거운 사막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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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제왕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본능을 잃어버린 순록이나, 사막의 영혼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인간의 말 잘 듣는 노예가 된 낙타나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인간이 던져놓은 미끼 때문이다. 낚시하기 위해 떡밥으로 물고기를 유인하듯 한 자밤 소금이나 한 사발 물을 미끼로 그들의 목숨줄을 흥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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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뱉는 숨소리는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듯 하나같이 절박하다. 장쾌한 행진곡이 아닌 장엄한 운명 교향곡 같다.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으로 허공을 향해 짧고 굵은 된소리를 끊임없이 토해낸다. 죽을 만큼 참았던 숨을 뱉어내는 해녀의 숨비소리처럼 살아나기 위한 막바지 절규와도 같다. 그래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생명이기에 단내나는 영혼을 울컥울컥 삼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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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더 서글프다. ‘왜’라는 질문은 사치다. 살아내야 한다는 것, ‘어떻게’도 아닌 ‘반드시’란 절체절명의 명제가 눈앞에 있을 뿐이다. 먹고산다는 그 날것의 고통과 준엄함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장수선무(長袖善舞)는커녕 주어진 것보다 견뎌내야 하는 일에 더 급박한 생은 선택의 폭도 그만큼 좁아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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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설움이나 밥벌이의 수모를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디딜 곳 없는 허공에 발을 내딛는 두려움, 몸에 맞지 않는 옷인 줄 알면서도 입어야만 하는 불편함에도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이래도 예, 저래도 예 하는 목랑청이 되거나 옳사옵나이다, 그렇사옵나이다 하는 풍타낭타로 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생존의 목숨줄 앞에서는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먹고사는 일, 먹여 살려야 하는 일 앞에서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있다, 없다의 냉엄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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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임금이나 근로조건, 승진 기회처럼 유불리를 두고 이해당사자 간에 생사를 쥐락펴락한다. 큰돈을 벌거나, 상(賞)을 받거나, 한 자리 차지한다는 일에도 꼭 미끼가 따라다닌다. 손님이라는 상전 의식, 상사라는 계급 논리, 집단 패거리주의도 불이익을 미끼로 한 갑을관계를 형성한다. 의리나 우정을 미끼로 억지로 해야 하는 일도 있고, 결혼을 미끼로 사랑을 강요하거나, 약자나 소수를 미끼로 차별이나 무시하는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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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적인 요인이 아니어도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빠져드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남의 흉과 흠을 들추는 재미에 빠져들어 패를 나누거나, 단지 호기심이나 적대감 때문에 주변의 꿍꿍이에 현혹되어 음모에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 돈을 벌게 해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끼는 은밀하고 허황된 유혹을 동반하고 그 결과는 결국 후회와 상처로 남는 일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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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가 꼭 나쁘게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선의의 거짓말처럼 누군가에게 앞날에 희망을 주고 동기부여가 되는 유혹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어릴 때 자식들을 다룰 때 걸핏하면 맛있는 것, 좋아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을 미끼로 말을 잘 듣게 만든 기억도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좋아한다는 연인의 말에 절차탁마 노력하여 수재가 된 친구도 있다. 병마를 이겨낸다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자는 부부의 약속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가져와 현실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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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에는 반드시 조건이 따른다. “눈감아준다면”과 같은 어둠의 회유도 있고, “합격한다면”과 같은 희망의 조건도 있다. 공짜는 없다. 어느 미끼든 이유와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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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절이 있었다. 평탄했던 삶의 궤도를 이탈하여 일순간에 바닥도 없는 낭떠러지로 뚝 떨어졌었다. 인생의 고통이나 좌절이 한겨울 감기처럼 주사 한 방으로, 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말짱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기득권과 가치관의 틀 안에서 벗어나 생면부지의 노동일과 평소 어울려보지 못했던 낯선 사람들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기에 적성이나 미래를 따질 여유가 없었다. 정체성의 혼란, 존재의 공허함, 낯선 미래의 공포감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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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게 된 상실과 좌절의 경험은 자존감의 하락과 함께 삶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지난날에 대한 자책과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마다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거나 자각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삶이 피폐하고 조급해질수록 잘못된 일에 빠질 수 있는 유혹의 미끼들이 비문증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살면 살아지게 되어있다.”며 선배의 간곡한 조언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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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말에,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에 몸을 맡겨 헤쳐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은 자기 방법대로 다 살아내게 되어 있다. 처음엔 막막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어떻게든 길은 있고 숨구멍은 열려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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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주변에 항상 미끼의 유혹과 함께하는 것 같다. 남이 하는 기준이 아닌 분명한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결코 미끼에 물리지 않으리라. 미끼에 현혹되지도 말아야겠지만 내가 갑의 처지가 되어 누군가를 미끼로 유혹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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