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물성론 / 김선자

소원 하나 얹을까, 돌 하나 주워 들고 돌탑 위에 놓는다. 아차! 어긋나는 순간 누군가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만다. 간절함이 담긴 돌탑인데, 내 손놀림이 허술한 탓이다. 둥글납작한 돌멩이 하나가 발아래서 멀뚱하게 나를 쳐다본다.

숨 고를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위쪽에 나지막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새소리 바람 소리 뒤섞여 산중의 고요를 깨트린다. 그런데 여기에 사는 게 또 있다. 바위 언저리에 앙증스러운 돌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서로 업고 업혀 하나의 돌탑을 이루었다. 기대고 끌어안은 모습이 마치 형제자매 같다.

아버지는 맏이를 정성스럽게 빚어 대들보에 얹었다. 당신과 똑 닮은 맏아들이 아닌 딸을 만들어 내고 서운했을까. 당신 바람대로 우람한 장남을 끼워놓았다. 무리를 이루기 위해 둘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몽돌처럼 둥글둥글한 나를 가운데 괴어놓았다. 오누이와 단출하게 자라서인지, 내 아래로 남동생 둘이나 깔아놓았다. 그제야 마음이 넉넉했는지 당신의 등을 디딤돌로 내주었다.

돌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아버지였다. 비바람 앞에서도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자식에게 보고 듣고 느끼도록 배려했다. 논에서 퍼온 흙에 볏짚을 섞어 벽을 세웠다. 시멘트를 삽으로 개어 벽돌을 찍어낼 때도 바람이 드나들도록 틈을 두었다. 흙과 돌은 주어진 쓰임에 따라 모양이 달라야 한다며 주무르고 다듬었다.

가정을 이루어 자신만의 탑을 쌓던 장남이 급작스레 빠져나갔다. 오라비 돌은 홀로 눈밭에 묘비로 섰다. 서로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을 보듬어서인지 떨어져 나간 자리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고였다. 윗돌과 아랫돌은 몸과 마음을 뒤척이며 구멍을 메워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물리적으로 메워지지 않았다. 봄볕에도 마음 시린 부모님을 맏이인 언니는 알뜰살뜰 보살폈다.

돌 하나가 빠지자, 윗돌이 덜컹거렸다. 곧은 성정에 불같은 아버지와 마음에 사월 봄볕이 내리던 어머니 사이를 언니의 몸과 마음이 부지런히 닿았다. 넷으로 나누어 짊어질 일을 가까이에 산다는 이유로 윗돌 혼자 도맡아 안았다. 무게에 짓눌린 탓일지도 모른다. 언니의 가슴에 종양이 생겼다.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와 수술로 일 년 넘게 암 투병하는 사이, 부모님에게 근심거리가 될까 쉬쉬 숨겼다. 그런 와중에도 윗돌은 부모님 집을 오가며 가려운 데를 긁어 주었다. 맏이가 주저앉으면 아랫돌들도 푸석푸석 부스러질까, 우리 앞에선 아픔을 감추었다. 그럴수록 우리도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윗돌을 받쳤다. 서로 이고 지고 안고 업고 업히다 보니 형제의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탑을 이루는 돌은 저마다 쓰임이 다르다. 마음에 태풍이 지나가도 묵직하게 혼자 맞서는 돌도 있다. 요래조래 치거나 맞비비면 잘게 부스러지는 푸석돌도 있다. 평평하고 미끈한 돌이 있는가 하면, 야무져 쉬이 깨지지 않는 차돌도 있다. 모두 단단한 대로 무른 대로 모난 대로 다른 용도를 갖는다.

돌은 각자 성질 또한 다르다. 화성암은 근본이 불기운을 담고 있어 다른 돌과는 달리 따뜻함이 느껴진다. 스스로 타고 남은 돌이라 그런지 거칠지만 변하지 않는 자기만의 고집을 가졌다. 퇴적암은 압력에 눌리고 뒤틀려 단단하지만 부드러움을 지녔다. 변성암은 녹아 성질이 변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결정체로 빛난다.

형제자매 사이에도 성정과 마음씨가 서로 다르지 않던가. 인정이 많아 말맛대로 쉽게 퍼주는 맏이. 무덤덤하고 약삭빠르지 못해도 착한 천성을 지녔던 오라비.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끙끙대며 씩씩한 척 가슴앓이하는 난, 화성암일까 변성암일까.

집안에서 내 역할은 섬돌이다. 아버지에게 오가는 언니의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급하게 끓는 분하고 성난 마음을 다잡는 일조차 고스란히 내 차지다. 속마음을 겉으로 내보이지 않는 남동생들에게 윗돌의 생각이 닿도록 가운데 괴는 잔돌인 셈이다. 불안하게 기우뚱하는 돌탑의 층을 바로 잡는다. 윗돌과 아랫돌들이 부모님 집과 마음의 뜰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받친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는 아버지 말의 힘일까. 탑을 쌓기 위해 서로 몸과 마음을 공글리고 낮춰서일까. 때론 울퉁불퉁한 생각으로 마음이 맞지 않아 서먹해질 때도 있다. 그러면 안정감 없는 모난 돌과 못 갖추고 안 갖춘 돌의 틈새는 조금 더 갖춘 돌이 메우면 된다. 그것이 형제자매가 어깨를 맞댄 탑이다.

탑의 돌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착하고 어질게, 새침하고 냉정한, 꾀도 없고 눈치도 없는 덩둘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룬다. 맨몸으로 맞아도 차갑지 않을 이슬비에 파인다. 바람비에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버텨 무늬를 만든다. 서로 마주 닿은 자리에서 보듬는 만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오랜 시간 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돌이 부드럽게 닿는다. 누르거나 미는 힘이 더해지고 잡아당겨도 부서지지 않는 까닭은 처음부터 지닌 물성 때문이다. 이런 옹골차고 야무진 껴안음이 있어 돌은 어디서든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다.

형제자매는 한 몸에서 나온다. 티격태격 다투며 크다가 자기 역할을 찾아 떠난다. 세상과 부딪치느라 제 성질을 죽이는 언니였다. 처자식 떠받치느라 허리가 휘는 남동생들이다. 아들딸 인생길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글길을 가다 비틀거리는 말을 다시 세우는 나 아니던가. 그래도 가끔 한자리 모여 시절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돌멩이 하나를 찾아 든다. 누군가 쌓은 탑 위에 올리기보다 틈이 벌어진 곳에 놓는다. 나 또한 탑 속의 돌이 되어 마음을 세운다. 나지막한 돌탑에 따사로운 볕이 제 몸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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