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의 얼 / 박순태
시선을 따라 기묘한 감응에 젖는다. 뒤로 말린 주황빛 꽃잎, 만발한 살결 위에 수놓은 자줏빛 점박이. 꽃은 그렇게 제 속내를 드러낸다. 화려함은 한순간이되, 기억에 저장된 꽃의 형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독특함이 있기에 더 또렷해지는 존재. 참나리 꽃송이는 애초부터 자신의 실정을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여느 꽃과 다름없이 구조는 일처다부다. 암술 하나를 중심에 두고 여섯 개의 수술이 절정을 향해 몸부림친다. 화분 가루는 압력솥의 증기처럼 분출하고, 꽃잎은 끝까지 젖혀진다. 그런데 암술은 잠잠하다. 선택은 중심에서 이루어지건만 결정은 유보다. 이 느슨함은 무기력일까, 아니면 스스로 제어하는 태생적 자율의 상징일까.
태양이 머리 위에 걸리면 꽃은 정받이에 불타오른다. 향은 밤이 아니라 낮에 퍼진다. 백합과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향의 진동은 예상 밖으로 미미하다. 한껏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도 긴장은 고조되지 않는다. 암술과 수술의 가례는 눈에 띄게 관능적이되, 애태움도 격정도 광기도 없다. 꽃잎의 독특한 점박이는 허기진 내면의 불티일까. 수정受精은 목표라기보다 흥미 잃은 가십거리로 밀려나 있다. 그 꽃이 참나리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전혀 다른 질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꽃이 절정에 이르기 전부터 줄기에서는 이미 미래가 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잎과 줄기가 맞닿은 그늘진 자리, 시선이 머뭇거리는 그곳에 흑진주 같은 구슬들이 하나씩 맺혀 있다. 피지도 펼쳐지지도 않는 그 단단한 형상, 꽃술 교접의 성패와 무관하게 창조의 노래를 합창하는 구조물, 다음 세대를 보장하는 주아珠芽이다.
꽃송이가 질문을 던지면 줄기는 묵시로 답한다. 꽃잎이 삭아서 허물어질수록 살눈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진다. 관능은 증발하고, 시선을 당겼던 화려함도 이내 멎는다. 줄기에 맺힌 흑진주 같은 구슬눈 주아는 이미 후년의 재회를 준비하고 있다. 말 없는 천상의 결정체. 그 침묵에는 흔들림도 거리낌도 없다. 꽃살의 점박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어쩌면 이 존재를 알리는 암호였는지도 모른다. 꽃은 자신의 처지를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주아는 성숙 되어 건드리지 않아도 스르르 떨어진다. 부서지지도, 흩어지지도 않은 채 굴러가다 조용히 멈춘다. 그것은 낙하가 아니라 흙으로의 귀환이다. 이듬해 봄, 씨앗처럼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움을 틔운다. 살눈의 움틈은 시작이 아니라 재개다. 한 번 살아본 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렷다.
참나리꽃은 꽃술의 교접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유 부림이 아니라, 공허를 통과한 끝에 도달한 깨달음이리라. 암술은 중심이되 필수는 아니고, 수술은 여럿이되 경쟁을 잃은 존재다. 자유는 허락되었다만, 이미 닫힌 구조 안에서만 유효하다. 참나리는 자손만대를 우연에 맡기지 않는다. 가능성과 확실성을 동시에 배치한다. ‘참’이라는 유일한 진정의 표식, 그 무게는 엄중하다.
그제야 꽃의 행위가 읽힌다. 암수의 만남은 하나의 시도일 뿐이며, 종족의 지속은 이미 줄기에서 완결되고 있다. 꽃은 전면에 있지만, 결정은 후면에서 이루어진다. 꽃은 표면이고, 주아는 혈통보존의 핵이다. 화려함은 연막이고, 실속은 구조에 있었던 게다.
참나리는 종족보존 시험에서 과락한 꽃이 아니다. 시험이라는 형식의 준칙을 넘어선 존재다. 유성생식의 원칙을 거부한 게 아니라, 그 운명체의 궤도를 능가한 것이다. 순수혈통 유지의 절체절명 과제를 이루기 위해 끓어오르는 정염을 미련 없이 잠재운다. 그리하여 줄기는 묵묵히 살눈을 키운다. 꽃은 치레였고, 줄기는 실속이었다. 보임과 이룸의 연결고리, 참나리만의 절조節操다.
다시 꽃을 읽는다. 살결에 박힌 검붉은 점박이는 장식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말로 남기지 못한 속내를 문신처럼 새긴 흔적.
“나는 믿음을 잃었다. 나는 상처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간다.”
꽃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이 곧 상처다.
사람도 그러하다. 상처를 덮으려 할수록 태도에 얼룩이 남는다. 관계를 경계하는 눈빛, 농담으로 넘겨버리는 허세, 시간이 지날수록 비켜나는 화제. 그는 말한다. 혼자가 편하다. 홀로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말은 자립의 선언이 아니라, 상처를 채 건너지 못한 고백일 때가 많다.
그는 이미 한 번의 계절을 통과한 존재다. 믿었던 법칙이 흔들리고, 손을 내밀었던 방향에서 되돌아온 공백을 경험한 뒤로, 삶의 방식이 조용히 바뀌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꽃을 피운다. 웃음을 걸고, 관계의 자리에 서고, 세상의 빛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준비를 한다. 타인의 승인에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이어갈 수 있는 단단한 방식. 상처는 그를 무너뜨리지 않고 살아나기 위한 구조를 바꾸어 주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자신의 내부에 미래를 심는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강단이다.
애물단지 참나리 꽃송이. 욕망은 존재하되, 실행은 봉인되었다. 언젠가 꽃의 본분인 종족보존의 임무를 다시 부여받기나 할까. 그러나 참나리 본체는 꽃의 정절을 믿지 못한다. 남의 집 담장을 기웃거리다가 끝내 선을 넘어버린 수술의 무모함이며, 수술의 탐욕에 은장도로 맞서는 암술의 절개에 오차를 두지 않는다.
줄기는 순수혈통을 매단 채 서 있다. 타자를 통과하지 않는 번식, 단 한번의 우연조차 허락하지 않는 설계. 개방 대신 보존을 택한 방식. 그 고집이 참나리의 존재 자체다. 그리고 그 고요한 계획 속에서, 상처를 통과한 생만이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