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포 장수 / 김양숙
약수역에서 신내행 지하철을 갈아타고 둘째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이제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으니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어도 되었다. 거제에서 상경하느라 새벽부터 바빴다. 노곤한 어깨를 막 느끼려던 참이었다. 그때 뒤편 객실에서 한 중년 남자가 내가 탄 쪽으로 건너왔다. 그는 객실 한가운데에 손수레를 세우더니 바구니 안에서 잘 접힌 청색 천 몇 장을 꺼냈다. 어딘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나는 눈길을 보내기만 하면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킬까 봐 맞은편 창밖만 바라보았다. 앉거나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숫제 그걸 보지 못한 것처럼 했다. 그러든 말든 남자는 단돈 오천 원으로 1m 50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얄브스름한 천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지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모른 척했지만 내심 반가웠다. 천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뭐라고 설명하든 말든 나대로 청색 천의 쓰임새를 생각해 내었다. 시선은 창밖에 둔 채 손가락으로 슬그머니 핸드백을 열고 지갑의 단추를 따고는 안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서 만 원짜리인 듯한 지폐 한 장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내어 말없이 건넸다. 순간, 순식간에 내 손에 거스름돈과 짙푸른 천이 쥐어졌다.
방수포를 쥐고서야 그 사람을 건너다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반백의 머리는 단정하게 깎았고, 그리 비싸지 않은 듯한 잠바는 티셔츠와 바지, 구두와 잘 어울렸다. 얼굴은 그 일에 조금도 스스럼없는 듯 구김이 없었다. 그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살펴보는 줄도 모르고 두어 장 더 팔더니 다음 칸으로 건너갔다.
덕분에 내 안에 잠겨 있던 행상의 기억이 하나씩 실오라기 풀리듯 올라왔다. 첫 발령지인 Y중학교에 근무할 때 포마드 기름을 바른 중년 신사들이 만물상 가방을 들고 교무실을 찾고는 했다. 그때는 제법 괜찮은 전자계산기나 전집을 할부로 사기도 했다.
학교를 찾는 행상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40즈음이었다. 그 시절에는 비교적 저렴한 생필품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큰길에서 20분을 걸어왔다가 그냥 되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물건을 하나씩 사고는 했다. 그분들 중에는 내가 수업을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간 분도 더러 있다.
나는 소위 팔공(1980년에 대학에 입학한) 학번이다. 과외라도 해서 대학을 다니겠다며 진학은 했는데 그해에 ‘과외 금지법’이 발령되었다. 학비는 교수님의 배려로 해결되었고 몸은 대학 동기(同期) 덕분에 초등학생 둘 있는 가정에 입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잡비였다. 교과서만 있으면 공부가 되는 줄 알고 있는 오빠에게 책이 또 필요하다고 말하기 난처했다. 동아리 회비를 내어야 한다는 말은 더 어려웠다. 친구가 지난번에 커피를 샀으니 이번에는 한번쯤 커피를 사야 한다며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보다 세 살 많은 오빠는 가게를 마련하느라 밤잠을 아끼며 일했다. 그리 일해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쯤은 억지꾼이었던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동기가 전집 외판원 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한 질 팔면 몇 퍼센트 정도 수수료를 돌려받는 방법인데 자신도 그리하여 용돈을 보충한다 했다. 좋은 일을 권하면서도 돈도 벌 수 있으니 괜찮지 않으냐며 위로와 격려를 섞어 권했다. 그 당시에는 아파트보다 양옥집이 많았는데, 벨을 누른 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지도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 주 수업이 일찍 마친 날 비교적 부유해 보이는 동네로 갔다. 높고 낮은 담장 너머로 닫힌 현관문이 보였다. 어떤 집은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고, 어떤 집은 아이가 다 자라서 필요치 않다고 했다. 다음 주에도 또 다른 동네를 찾았고 또 그다음 주에도 담장으로 이어진 어떤 골목길을 걸었다.
전집을 왜 한 질도 팔지 못했는지 가끔은 지난 일을 꺼내어 들여다보고는 했다. 때로는 양옥집이 많이 들어선 동네 길을 걸을 때면 팸플릿을 들고 골목길에서 서성이던 때를 떠올리곤 했다. 지난해 서울 성북구 길상사 가는 길에서도 그 시절의 나와 함께 걸었다. ‘그게 뭐라고’ 싶었지만 아직 그랬다.
다음 칸으로 건너간 방수포 장수의 삶을 짐작해 보았다. 볕에 그을리지 않은 말끔한 얼굴에 손마디가 고른 것을 보아 사무를 보던 사람 같았다. 아무래도 눈빛이나 말투가 행상이 몸에 익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마도 사업이 망했거나 권고퇴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선뜻 지하철에 잡화(雜貨) 장수로 서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사연이야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기가 그려져 가슴이 먹먹했다.
아직도 서랍에는 예전에 사두었던 양말이며 칫솔, 때수건이 남아 있다. 요즈음도 보도블록 위에 보따리를 펼친 이를 보면 무엇을 살까 망설인다. 감히 고백해 보건대 한때는 그분들을 향한 연민이라 여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어쩌면 얼마간은, 그 담장 길을 걷던 나에게 고개 끄덕여 주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방수포 장수가 다음 칸으로 옮겨갔듯 나도 옮겨가는 중일 테니까. 그러니,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