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좌판 / 문미숙

깨끼저고리 같은 연분홍 개양귀비와 남보랏빛 엉겅퀴가 유월의 길목을 물들이고 있다. 하늘거리는 개양귀비와 가시 돋친 엉겅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도 무던해 보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이라는 생각을 할 때쯤 몽골 평원이 품을 내어준다.

풍경에 압도된 듯 차량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능선을 따라 꽃무늬 비단이 펼쳐져 있다. 풍경에 발목이 잡힌 일행은 테렐지 공원 ⃰ 안에 있는 적십자 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텐트에서 숙박하는 마지막 여정이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뒤 구릉에 올랐다. 초원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부터 다가오는 별빛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적요를 깨트리는 것 같은 숨을 고르며 엄마 계신 곳을 향해 앉는다.

두 팔을 뒤로 기대고 앉은 손끝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 같아 돌아본다. 손바닥에 눌린 꽃대가 고단한 엄마의 허리처럼 휘어져 있다. 서둘러 꽃대를 세운다. 몇 번을 더 시도해 보지만 그대로다. 어둑한 곳을 더듬어 찾은 돌멩이로 휘어진 허리에 기대놓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바람을 타고 코끝에 닿은 풀 내음이 엄마의 좌판을 떠오르게 한다.

빛바랜 사진틀 속 신부는 미소를 머금고, 삐쩍 마른 신랑은 광대뼈가 불거져 있었다. 사진 속 엄마의 연분홍 비단 저고리는 개양귀비꽃처럼 고왔다. 내 기억 속 엄마의 수줍은 듯 엷은 미소는 그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헛간에 지어놓은 작은 공간에 외떨어져 밤새 재봉틀 페달을 밟았다. 틈틈이 자식들의 옷도 만들었다. 그중에는 내 주름치마도 있었다. 그 치마를 입고 양손을 수평으로 벌려 한 바퀴 획 하니 돌면 엄마는 고단함도 잊은 듯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그런 모습의 엄마가 좋아서 어지러워도 돌고 또 돌았다.

엄마가 만든 것은 주로 꽃무늬 원피스였다. 자투리 천들은 재봉틀의 드르륵 소리에 밥상보나 커튼이 되었다. 헛간을 개조해 만든 엄마만의 공간은 몽골의 초원처럼 야생화와 나비로 수놓아진 광목천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엄마는 그 공간 안에서 갖가지 물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엄마의 재봉틀 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실직과 엄마의 잦은 병치레로 인해 가계는 기울어져 갔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커튼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다. 실직한 가장의 허술한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현실은 매웠다. 사진 속 넉넉함은 엉겅퀴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재봉틀의 시간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는 화단의 꽃을 뽑아내고 푸성귀들을 심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푸성귀를 머리에 이고 시장을 찾았다. 가끔 노상을 깔고 앉은 엄마를 볼 때면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느 때부턴가 무표정이 된 엄마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장사가 되지 않은 어떤 날은 비단 좌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자식들의 옷가지를 만들기 위해 아껴둔 비단이 좌판이 된 것에 대한 자책이었을까. 화단의 꽃들을 뽑아내고 푸성귀를 심었을 때의 표정이 떠오르곤 했다. 시장 골목 뒤에 숨어 엄마를 바라보는 날이면, 저 보자기에 올라타 황금의 나라에서 요술 반지를 가져다드리고 싶었다. 차츰 엄마의 손은 가시 돋친 엉겅퀴가 되어갔고, 아버지와 맞서는 시간이 잦아졌다. 가녀린 양귀비꽃 같은 엄마에게 돋친 가시는 날카로워져 갔다.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때로는 바가지 쌀을 꾸러 다니기도 하고 땔감을 구하기 위해 새벽을 끌고 다녔다. 밤새 다듬은 푸성귀들을 머리에 이고 새벽시장으로 가는 엄마를 따라나선 별들이 어떤 때는 고마웠다.

작은 나뭇가지로 휘어진 꽃의 허리를 받친다. 나를 위해 휜 엄마의 허리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후회가 몽골초원의 바람이 되어 이마를 스친다. 엄마가 노상에 펼치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보자기는 가족을 위한 다짐이자 몽골의 초원처럼 순수한 꽃밭의 소멸에 대한 미안함이었지 싶다. 휘어진 꽃이 겨우 하늘을 올려다본다. 보자기 끝자락인 듯 북두칠성 모서리가 엄마의 길을 밝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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