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입은 옷 / 임길순
“얘들아, 누가 아버지한테 좀 가 봐라.”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모인 우리는 우왕좌왕 했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무슨 다짐 섞인 주문이라도 걸듯 이 말을 반복했다. 어머니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어머님의 속마음을 몰라 답답했지만,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선뜻 가보겠다는 자식들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염습하는 분들에게 아버님을 잘 부탁한다고 수고비라도 드리라는 걸까 해서 봉투를 준비하여 내키지 않았지만 염하는 곳으로 우리 부부가 갔다. 남편도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리는 바람에 나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님 잘 모셔주세요" 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젊은 장례지도사들이 아버님 염습을 하다가 소리에 흠칫 놀라 나를 보았다. 그곳은 냉기가 가득했다. 아버님은 침대에 누워 저승으로 갈 옷을 거지반 입고 있었다. 뽀얀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가족들 곁으로 다시 오셔야 하는데 옷이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순간적인 두려움과 착각에서 벗어나자 입은 모시옷이 성글게 짜인 게 보였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마당을 가로지르던 빨랫줄에서 바람에 일렁이던 씨줄 날줄과는 영 다른 모양새였다. 나는 빨랫줄에서 순한 빛깔로 바지랑대와 너울대던 모시 수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찬 바람이 휙휙 지나갔다. 어머님이 어떤 연유로 다급하게 가보라고 했는지 짐작이 되었다.
“이상해요. 제가 늘 보던 그런 색이 아닌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그들의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나는 들고 간 봉투를 건네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남편한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했다.
어머님이 집에서 가지고 온 모시 맞느냐는 말에도 능청을 부렸다. 지금 와서 수의가 바뀌었다고 소란을 피운들 돌아가신 아버님께 무슨 소용 있을까 싶었다.
여든일곱이신 아버님은 건강하게 사셨다. 어제 아침에도 멥쌀과 찹쌀을 택배로 보냈으니 우리 손주들 건강하고, 며느리도 건강히 지내라는 전화를 주셨다. 평상시에 자주 듣던 말이라 별 이상할 게 없던 전화였다. 이것이 아버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그리고 청양 읍내 장날이라 외출을 하셨다. 당신 친구들과 장날마다 만나던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에 몸이 안 좋다며 택시를 불러 타고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안방에 누워 자는 듯이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어떤 생각에 이끌려서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셨는지 몹시 궁금했으나 여쭤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하니 누구도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어서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먹을게 귀했던 어려운 시절 보따리장수가 지나가면 꼭 밥을 먹여 보내는 인심 좋은 분이었다. 마지막 입은 옷이 바뀌었다고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관식을 할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수의에 대해서 말하는 상주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님은 매장을 했다. 장례차로 마을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꽃상여로 옮겨탔다. 상여를 타고 집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선산으로 가는 길에는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가네 가네 나는 가네. 저승 산천으로 나는 가네"
요령잡이가 요령을 흔들면서 선소리하면 상여꾼들이 “에헤어아”하고 화답했다. 선소리가 애절한 만큼 주변에 핀 진달래, 제비꽃,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새싹들도 고인과 하나 된듯했다. 죽음이 있어 철학자들이 많은 말들을 만들었겠지만, 내겐 선소리와 만장, 그리고 꽃들이 망자의 가는 길을 안내하는 깊은 울림이었다.
"아버님 전에 뼈를 받고 어머님 전에 살을 받아 환생하였는데"
"에헤어야"
슬픈 건지, 구성진 건지, 소리를 따라 복잡한 심경으로 묫자리에 도착했다. 지관이 나침반으로 관의 방향을 잡았다. 산소에 봉분이 만들어졌다. 새집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며 이제 편히 쉬시라는 평토제를 지냈다. 우리는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장례를 치렀다.
살아계실 때 동네 모든 이들과 이웃했던 아버님이었다. 집 가까이 있는 교회의 사람 좋은 목사님도 상여꾼과 같이 올라와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산소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목사님을 향해 농담했다.
“목사님이 아쉬워하니까 기도 시간 줄까나"
“안 되여, 기도 시간 길어지면 일이 늦게 끝나"
“기도 길게 하면 안 돼, 간단하게 해야 혀”
젊은 목사님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정말 짧고 간결한 기도를 했다.
장례를 마치고 고생한 고마운 분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상주들이 고생한 마을 어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부녀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어르신이 살아계실 때도 인정이 있으시더니 돌아가시면서도 좋은 일을 베푸셨어요. 상조회에서 고인의 이름으로 수의 세 벌을 마을에 기증하고 갔어요"
마을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이니 얼굴의 깊은 주름이 잠시 미소 짓는 듯했다.
“다 있다. 고맙다. 조심해라"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저세상으로 가시면서도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 괜찮다.”라고 하면서 소박한 옷을 입고 훨훨 가볍게 가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