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길을 만들어 간다

 댓글 commct02.png2026-08-21 (금) 12:00:00 이희숙 수필가ㆍ아동문학가
신문을 펴니 먼저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핫이슈로 뜨는 지명이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과 국제적 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에 원유 수송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물류, 금융시장, 물가, 경제성장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협의 중요성을 알기에 세계의 민감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진다.

해협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닷길이다. 반면 운하는 선박의 이동이나 무역 경로 단축을 위해 사람이 땅을 파서 만든 인공 수로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가 있다. 파나마 운하는 프랑스에 이어 미국이 주도한 사고 및 질병으로 인명 피해가 있었던 어려운 공사였다. 그러함에도 운송 거리와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어 국가 재정에 커다란 혜택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바다는 멀고 험한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광야와 같은 길이다. 앞에 놓인 광활한 바다에 갈 때 물길은 지도를 거슬러 지날 힘의 통로가 된다. 바다는 늘 그 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생 여정에서 깨닫는다. 남해의 섬과 섬을 잇는 섬섬길을 떠올려 본다. 바닷길은 사람의 발길보다 먼저 새들의 길을 열고, 배의 항로보다 먼저 바람의 길을 만든다. 그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서로를 향해 말없이 손을 내밀고, 그 손끝을 잇는 길이 바로 섬섬길이다.


섬섬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놓인 시간을 천천히 건너는 일이다. 밀물이 오면 길은 바다에 몸을 맡기고, 썰물이 오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섬섬길은 기다림을 아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걸음을 옮길수록 파도는 발밑에서 작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개껍데기는 오래된 편지처럼 추억을 품고, 갯벌은 수많은 생명의 발자국을 조용히 간직한다. 그 길에서는 누구도 서둘러 걸을 수 없다. 바다가 허락한 속도로, 자연이 정한 리듬으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줄 알았던 섬들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고,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느새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하나가 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닮지 않았을까. 때로는 파도에 길이 감춰져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는 다시 길이 열린다. 그 길은 우리에게 멀리 나아가는 용기와 잠시 머무는 여유를 함께 가르쳐 준다. 오늘도 누군가를 향해 조용히 길을 내어 준다. 우리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섬섬길 하나 있다면….

바닷길은 우리를 먼 세상으로 이끌고, 섬섬길은 우리를 마음속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를 건너며 세상을 만나고, 바닷길을 걸으며 비로소 자신을 만난다.

그 길은 세상을 잇는 힘으로 자기 길을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바다에 이르게 한다. 또한 멈추지 않는다. 바닷속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기다리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길이 막히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간다.

오늘도 바닷길은 생명의 약속이 되어 흐른다, 끝내 세상을 품는 가장 깊은 힘이라고.

<이희숙 수필가ㆍ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