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카라마조프 씨 / 민혜
여권 갱신을 위해 사진관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 사진사가 원하는 피사체가 되기 위한 수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 정물처럼 반듯이 앉아 있는 내게 사진사는 드디어 지시하기 시작했다.
"고개 조금 숙이세요. 너무 숙였어요. 정수리 머리칼 좀 누르시고요. 귀는 나오게 하고요…"
짧고도 다양한 명령어들로 인해 절로 경직되는 내 얼굴. 의도적 웃음을 지어보지만 실패한 표정이 어정쩡하게 맴도는 사이 나는 그 흔적을 지우려고 다시 신경을 쓴다. 게다가 아무리 매만져도 들뜨는 태생 곱슬머리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 평소엔 살짝 가려졌던 이마와 귀를 드러내는 일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증명사진은 서류가 요구하는 얼굴이라서 유사한 배경에 비슷한 자세와 표정을 만들어 낼 뿐 활짝 웃어도 안 되고 지나치게 개성적이어도 곤란하다. 그래선가 평생 여러 번 찍어봤어도 마음에 드는 적이 별로 없었다. 요즘은 포토샵으로 주름을 지우고 피부 톤도 고르게 만들어주는데 낯설고 불만족스럽긴 매한가지였다. 현재 모습보다 나이 들어 보여도 탐탁지 않았고, 세월의 흔적이 제거된 사진 앞에선 내가 아닌 나를 마주해야 하는 게 머쓱했다.
얼마 전의 모임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치켜들었으며, 또 다른 누구는 시선을 창 쪽으로 두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 사진의 주인공들은 실물보다 못해 보였다. 누군가는 심술궂게, 누군가는 어리석게, 또 누군가는 교만해 보여 그 현장의 사람들을 곡해하게 해주었다.
그 무리 틈에 끼어 있는 나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내 얼굴은 눈에 띄게 거슬리진 않았지만 어딘가 수심이 배어 있었다. 추측건대 그날 나눴던 대화의 무게 때문이지 싶었다. 실제 분위기는 웃음이 자주 오갔었는데도 사진은 얄궂게 그 행간의 미묘한 표정들만 붙잡아 둔 셈이다. 사진은 때로 우리가 무심코 노출했던 순간을 이렇듯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진 찍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녀가 연속으로 찍은 내 얼굴들을 보면 복잡한 기분이 든다. 같은 사람인 내가 어떤 장면에선 온순하고, 어떤 장면에선 날카롭고 건방지며, 어떤 건 우수가 깃들여있는가 하면, 우스꽝스러운 것까지 있다. 이런 사진을 대할 때면 누가 볼까 싶어 민망했으나 곧 생각을 거두어야 했다. 그 모든 게 분명 나였음으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얼굴 안에 수많은 표정을 품고 산다. 희로애락뿐 아니라 선과 악, 미와 추, 고귀함과 비열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얼굴은 타고나는 것이면서 시간의 층위에서 만들어지기에 개인의 얼굴에는 살아온 삶의 궤적과 분위기가 겹겹이 새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얼굴은 결국 사회적이다.
사진 속 인물들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도스토옙스키로 연결되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저자인 그는 창작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모두,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표도르 카라마조프다"
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그의 선언에 선뜩한 심정이 되면서도, 나 또한 그 말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방탕하고 탐욕스러운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 그는 분명 악인에 가깝지만 작가는 그를 단순한 타락의 상징으로 그리지 않았다. 표도르는 인간 본성의 가장 불편한 부분이자 우리가 애써 부정하고 싶은 인성을 집약한 존재라는 거다. 책임을 회피하고 욕망에 솔직하며 타인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표도르 적 인간을 우리 삶 속에서도 더러 만나왔기에 그의 얼굴은 낯선 듯 완전히 낯설지가 않다.
표도르의 아들들인 알료샤와 드미트리와 이반은 각각 신앙과 감정과 이성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인 표도르는 아들들과 대척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가능하게 한 근원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선과 악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인간 안에 공존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이 책을 의무감에 젖어 고행하듯 읽었는데, 상하 2단으로 나누어진 작고도 빽빽한 문장의 밀림 속에서 줄거리 따라가기에 급급하였다. 그 안의 인물들을 헤아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훗날 다시 읽으며 비로소 뭔가 보이는 듯 했다. 카라마조프적 기질은 특별한 악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선량한 알료샤에게조차 스며있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인간의 속성을 떠올리면서 들여다보면 사진 속 인물들이 사뭇 흥미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장소나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 상황에 맞게 조율되는 얼굴, 필요에 의해 숨겨지고 드러나는 욕망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나 나는 그날 모임 사진 속의 다양한 얼굴들이 우리 안에 잠재돼 있다가 잠시 돌출된 인간 심리의 파편들로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어떤 얼굴이 ‘진짜’냐가 아니라, 그 모두가 우리라는 사실이다.
대자연도 그렇다. 하늘은 언제나 같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맑다가 흐려지고, 비를 내리다 불벼락을 뿜는다. 강과 바다 역시 늘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변화는 결함이 아니라 본질이었다. 아마 내가 증명사진 찍는 일을 불편해했던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겠는지. 카메라 앞에서 거쳐야 하는 과정도 번거롭거니와 원만한 얼굴을 연출해야 하는 나란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질 않으니 말이다. 렌즈를 응시하는 막간에도 머릿속으론 여러 생각들이 들락거린다. 피사체에게 집중하는 사진사의 표정을 살짝 훔쳐보며 내게 묻는다.
내 안에 숨어 있는 표도르 카라마조프 씨, 오늘은 어떤 얼굴로 나를 드러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