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따라 웃었다 / 송연희
골목 안집 앞에 봉숭아가 붉게 피었다. 눈여겨보는 이가 없는 듯 꽃잎이 시들어간다. 해마다 꽃모종을 들고 다니던 할머니는 지난해 돌아가셨다. 가족 중 누군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봉숭아를 심었나 보다. 어쩜 꽃이 아니라 절절한 그리움을 심은 건 아닐까.
요즘 구닥다리 집은 팔리지 않는다. 세를 들려는 사람도 없다. 방 한 칸 보증금 200, 월세 10만이라 적힌 쪽지가 낡은 대문짝에 붙어있다.
봉숭아 꽃잎 한 줌을 땄다. 개미 서너 마리가 놀라 줄행랑을 친다. 이게 뭐라고 남의 것에 손을 대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봉숭아물 들일려고요.
돌담집 여자가 손에 든 꽃잎을 보고 묻는다. 키가 자그마한 여자는 어찌나 부지런한지 넓은 마당은 늘 깔끔하고 장독대는 정갈했다. 그녀의 남편도 두 해 전에 지병으로 멀리 떠났다. 세상살이가 심드렁한지 마당이 풀밭이다. 흙을 놀리지 않고 해마다 푸성귀를 심던 곳은 토끼풀 세상이 되었다.
뭘 심어도 먹을 사람이 없어서요.
여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휘 둘러보는 내 시선이 민망했던 걸까. 풀이라도 뽑지. 그 말은 그냥 안으로 삼켜버린다. 골목길엔 햇볕이 쨍쨍하고 담벼락 밑에 세워둔 자전거 아래 고양이가 졸고 있다. 가끔 이런 고즈넉한 풍경에 끌려 골목 안까지 들어와 본다.
저녁에 꽃을 도마에 놓고 찧었다.
그게 뭔데.
봉숭아 꽃잎을 따왔어요.
남자는 그런 걸 뭐하러, 하는 눈빛이다.
엄지발톱에 짓무른 꽃을 얹고 비닐장갑 손가락을 잘라서 끼우고 싸맸다. 낼 아침까지 그대로 있으려나. 꽃물을 들이는 마음은 가슴 안에 쟁인 추억 때문이다. 끝없는 슬픔 같은 그리움에 울 준비를 미리 하는 몸짓이다.
발톱에 물을 들이긴 처음이다. 손톱이 아니고 발톱에 물들일 생각을 하다니. 꽃물이 배려는지 아린 듯 저릿하다. 잠은 오지 않고 발톱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가마이 좀 있어 봐라. 오늘은 곱게 자거래이.
엄마가 아주까리 잎으로 싸고 실로 꽁꽁 묶은 내 손톱을 보고 웃는다. 아이가 손가락을 별처럼 치켜들고 모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발가락부터 봤다. 그대로 얌전히 있다. 비닐을 벗기니 두 발에 붉은 해가 생겼다.
꽃물이 든 발톱을 들여다본다. 언제 이렇듯 발톱을 유심히 본 적이 있었던가. 발톱이 길어 깎을 때나 봤다. 목욕탕에서 나와 다른 곳은 매 닦아도 대충 닦던 발이다. 육중한 몸을 싣고 천지사방 돌아다녔지만 큰 발가락의 수고를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네게 주는 보상이야.
발가락이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까딱거린다.
외사촌 형부는 지뢰를 밟아 오른발 발가락이 날아갔다. 발가락은 걸을 때 옴짝거리며 힘을 주는 힘점이다. 발가락이 없으면 걸을 수도 균형을 잡을 수도 없다. 형부는 육군 소위로 임관되자마자 비무장지대로 배치되었다. 육사 졸업 때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인재였다. 인물은 훤한데 불구라니. 언니는 집안의 반대를 뒤로하고 결혼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는 그 마음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뭐라 할까.
올봄에 형부도 돌아가셨다. 카톡에 뜬 부고를 읽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가지 못하고 아들을 문상 보냈다. 장례 끝나고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형부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셨단다. 서울에 가면 꼭 형부를 찾아뵙겠다고 언니한테 말했다. 현충탑 6.25 전사자 명단에 차갑게 계실 아버지 이름을 오랜만에 찾아뵐 이유가 생겼다. 언니의 목소리가 봉숭아 물든 듯 애잔하게 느껴짐은 내 마음 탓이겠지.
여름 끝 무렵 어느 날 지하철을 탔다. 노인석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어르신이 내 발톱을 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