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종시계 / 김석이
도시 문명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다. 자연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 기억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생생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푸른 산,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산골은 언제나 눈앞에 아른거린다.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산 중턱에 하얀 구름이 되어 층을 이루고 담장 가의 석류나무에는 이슬방울이 맺힌다. 외양간 황소는 코로 김을 내뿜으며 숨을 크게 내쉬고 닭들은 빨리 닭장 문을 열어달라고 소란이다.
글자를 몰랐던 할머니는 달을 보며 음력 날로 집안 행사를 기억했다. 이웃집 제사, 아기 돌이 되는 날을 신통하게 기억하고 해를 보며 계절과 시간을 구분했다.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되면 더운 여름이 지나야 가을이 온다고 일러줬다.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에는 다가올 정월 추위를 대비했다. 산, 오래된 나무, 뒷산 바위에는 때에 맞추어 모셔야 하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할머니의 기억과 믿음에는 어떤 특별한 염력念力이 있을 것이라 여긴다.
나는 식구들 생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어떤 때에는 내 나이도 잊는데, 할머니 기억은 늙지도 않았다.
시계가 귀한 시절,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아버지가 괘종 벽시계를 사 왔다. 시계를 감싼 나무 몸체는 옻칠로 반짝였다. 안은 금색 원판에 로마숫자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 바늘 세 개가 돌아갔다. 시계가 돌고 종이 울리도록 하는 강철 테이프 두 개가 있다. 두 개 테이프를 감고 시계를 대들보 기둥에 걸어 추를 좌우로 흔들면 초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째깍째깍! 시계 안은 톱니바퀴가 여러 개 있어 초, 분, 시간 바늘이 돌고 시간마다 종을 친다. 종은 매시간의 숫자만큼, 삼십 분이 되는 시점은 작은 망치로 한 번 종을 쳐 온 집에 울려 퍼졌다.
반짝이는 괘종시계를 기둥에 걸고 나니 작은 초가집이 화려한 대궐이 된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시계 보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치고 감긴 강철 테이프 힘으로 시계가 돌아가는 원리도 일러줬다. 시간마다 종이 울리고 종소리가 온 집에 울려 퍼졌다. 마루, 큰방, 작은방, 부엌, 심지어 아래채 사랑방에서도 잘 들렸다. 조용한 밤중에는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도 들리고 한밤중에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시계가 없을 때는 집마다 몇 마리 키우던 닭 울음소리로 새벽이 오는 것을 알았다. 첫닭은 아직 새벽이 오기 전 어두울 때 한 마리가 울었다.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이다. 두 번째 닭은 어둠이 걷히고 있을 때 두세 마리가 울었다. 아침 여섯 시 정도다. 두 번째 닭이 울 때 아버지가 일어나 소죽 끓이고 어머니도 일어나 부엌 나무 문짝을 열었다. 삐거덕!
토지가 적었으나 아버지 목수 일로 가족 생계는 어렵지 않았다. 목수는 가난한 농부보다 천한 직업으로 여기던 시대였으나 돈을 벌어 귀한 괘종시계도 사는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르는 젊은이가 몇이 있었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주하던 시기인 1970년대 후반에 우리 집도 도시로 이사했다. 도시 생활에 필요한 도구만 챙기니 이삿짐이 작은 트럭에 실어도 여유가 있을 만큼 조촐했다. 괘종시계도 이삿짐에 포함되어 이사한 집 거실 벽에 걸렸다.
아버지는 도시에서도 목수 일을 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던 시기라 집을 지어 파는 일도 해서 이사를 여덟 번이나 다녔다. 간혹 남의 집을 지어주고 잘못되어 돈을 물어주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괜히 시계 테이프를 힘주어 감고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거실을 차지한 괘종시계는 시간마다 종을 치며 집주인 행세를 했다. 수시로 시계 테이프를 감는 일은 아버지의 일과였다. 아버지는 평생 목수 일을 해서 자식 넷을 키워 학교 보내고 가족 여섯을 먹여 살렸다.
한때 나는 시간제 강사 생활을 했다. 부산에 살면서 진주까지 가서 야간 강의도 했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와서 식구들이 자는 시간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괘종시계는 피곤한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시간마다 매번 종을 쳤다. 잠이 들기도 전에 종소리에 깨곤 했다. 아버지가 눈치를 챘는지 달려있던 종이 떼어지고 종은 시간마다 소리가 나지 않는 헛치기를 했다. 다른 집 자식들보다 많이 배워 편하게 잘 살 줄 알았던 자식이 나이 들도록 떠돌고 있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았다.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쉼 없이 돌아가던 아버지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특별한 병 없이 아흔이 지나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주인 잃은 괘종시계가 따라서 멈추었다. 목수 아버지와 함께 오십 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똑딱거리며 돌았던 시계이다. 자식들은 도시로 다 떠나도 괘종시계만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다.
장례를 마치고 큰아이는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평면, 직각, 타원 다듬는 녹슨 손대패 세 개를 추억으로 간직하겠다고 챙겼다. 나는 괘종시계 테이프를 다시 힘껏 감아 추를 흔들어 주었다. 괘종시계의 째깍째깍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져 집에 활기가 돌아왔다.
여섯 식구가 시끄럽게 지내던 집에 이제는 여든일곱인 노모가 혼자 지낸다. 방이 네 개나 있는 집이라 많이 썰렁할 것이나 내색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진주로 가서 하루를 자고 온다. 괘종시계가 멈추지 않도록 시계 테이프를 충분히 감는다. 주말 하루를 큰아들과 같이 지낸 어머니 표정이 조금은 밝다. 형제들에게 누구든 집에 오면 시계 테이프를 충분히 감으라고 일러두었다.
괘종시계는 평생 일한 아버지 모습이고 째깍째깍 돌아가는 소리는 똑딱이는 목수 연장 소리다. 가난한 농부 자식으로 태어나 목수 기술로 여섯 가족을 부양한 아버지 모습을 닮은 나의 동반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