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목의 척화비 / 이정경
성문이 열렸다. 견고한 성벽도 이제는 경계가 허물어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얌전하게 핀 복사꽃은 방문객이 반가운지 발그레 웃는다. 봄바람에 실려 산들산들 성곽을 걷는다. 현재는 과거 속으로 걸어가고 과거는 현재를 너른 품으로 받아준다.
열린 마음으로 그간의 안부를 묻고 못다 한 정을 나누며 걷는다. 어깨를 활짝 펴본다. 가는 발걸음을 따라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성벽 위로 나붓거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가는 길마다 열렸으니 수백 년 전 무명 치마저고리에 댕기 머리를 한 내가 한 번쯤 걸었을 길처럼 정겹다.
읍성을 한 바퀴 돌아 성벽 안쪽 팔각지붕이 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조선시대에 객사로 쓰이던 도주관이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출입하는 삼 문 모두 자물통으로 닫혔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서다가 돌담 아래 나직이 선 비석 하나를 만났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만큼 비는 작고 초라하다. 몸을 낮춰 비문을 읽는다.
비석은 소박하지만, 비문에 새긴 결의가 돌처럼 굳다. 외세에 당해 낼 힘이 없는 조선은 나라의 문부터 닫아걸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변화의 세상이 두려워 화친과 협상을 거부했다. 잠그고 차단하는 것만이 최선이 선택이라 여겨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웠다
척화비 앞에 서니 내 삶 길목마다 세운 비석들이 보인다. 절박하거나, 감당하지 못할 일이 생기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나는 투박한 자물통으로 마음의 빗장부터 걸었다. 소통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봉쇄하고 불통하는 시간으로 나를 숨겼다.
사춘기가 막 시작할 즈음 친구들이 삼박사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작은 동네에 홀로 남았다. 먼 산의 소쩍새 소리만 텅 빈 마을을 지켰다. 해거름 어둠살이 내리면, 모내기를 막 끝낸 논 자락의 개구리가 내 마음을 대신해 왁왁하며 울었다. 여행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애어른이 되어버린 열다섯 계집아이는 숨어서 우는 소쩍새처럼 내가 세운 척화비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 시절. 모든 것을 갖춘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집은 덩굴장미가 활짝 피고, 피아노 소리가 담을 넘었다. 나풀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친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반짝이는 것은 늘 그녀의 몫이었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빛이 났다. 부동산에 투자 자랑에 어린 시절 숨기고 있었던 주눅이 슬며시 들고 일어났다. 삼십 년 직장생활을 한 내 청춘의 시간이 그녀 앞에서 한겨울 처마 아래 걸려 있는 무청 시래기처럼 빛을 잃고 버석거렸다. 세상 살아가는 능력의 격차 앞에 나는 열등의 척화비 하나를 세우고 말았다.
하느님 외 다른 신앙은 알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들른 사찰 대웅전의 울긋불긋한 탱화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등산로 입구에 돌탑을 보고 미신행위라 여겨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쌓고 포갠 간절한 마음을 읽지 못했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입으로만 행했다. 사랑은 없고 형식만 잡은 채, 그 길목에 세운 배타적인 척화비가 우두커니 나를 내려다본다.
긴 시간 나를 지키려고 쌓았던 벽은 갈수록 두껍고 높아졌다. 넘을 수 없이 골이 파이고, 건너가지 못할 강이 흘렀다. 갇힌 마음 안으로 섣달그믐에나 불 것 같은 시린 바람이 수시로 일었다. 나를 지키자고 세운 비석은 열린 마음으로 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었다.
용기 내어 비석 뒤에서 고개를 삐죽 내보인다. 한발 살짝 내밀다가 얼른 집어넣는다. 상처받을까. 행여 남이 넘어올까 그어 놓은 선이다. 쌓여 있는 옹졸한 마음을 단번에 뽑아 버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습관처럼 굳어진 마음은 비석처럼 차갑고 딱딱하다. 하지만, 마음 깊이 박혀 있는 나의 척화비는 시간이 갈수록 누추한 모습만 보인다. 돌이켜 보니, 비석은 자신감이 없을 때 큰소리만 친 부끄러운 나의 유물이 되었다.
조선이 척화비를 세운 지 한 세기 반이 지났다. 비는 처음의 결의와는 달리 비문 사이로 맥없이 돌꽃만 피우고 있다. 시대의 운명을 가슴에 고스란히 안은 채 척화비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역사의 뒤안길에 쓸쓸히 남았다. 긴 시간 고집스레 길을 막던 척화비는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며 초라하게 서 있다.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고 살아온 시간이 난들 편하기만 했을까. 숨어버리고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내게 다가서는 마음을 모른 척 외면하며 비문만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내가 던진 돌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는지, 소갈머리 저지르지나 않았는지, 내 안의 척화비를 가만히 만져본다.
시간은 의도하지 않아도 봉인한 마음을 풀어주고, 경계의 선도 허물어 버린다. 열린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표용이다. 부족한 나를 숨기고, 좋은 것만 보이고 싶었던 내 젊은 날도 세월의 바람을 맞고 둥글둥글해졌다. 오랜 풍상에 거칠어지고 마모된 척화비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길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오간다. 간혹 길 위에서 논쟁이 일고 내 길이 옳다고 우긴다. 그렇다고 소통을 막으면 길은 끊기고 나는 거기에서 갇히고 만다. 사람과 사람, 숱한 마음이 이어지고 교차해야 우리 마음의 문명에 꽃이 핀다.
이제 내 길목의 척화비도 허물어야 할 때다. 경계가 없는 골목을 뛰어 놀던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싶어지는 날이다. 봄바람이 돌담의 경계를 넘어 나직하게 서 있는 척화비 위로 훑고 지나간다. 바람에 실려 온 복사꽃 이파리 하나 공중으로 팽그르 돌더니 척화비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