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마루의 신비 속으로 / 김철희

산정(山頂)에서 굽어보면 도로는 마치 물길이 만들어 낸 구부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실개천처럼 굽이진 길을 힘겹게 올라오는 차가 작은 점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게 보인다. 팔을 뻗으면 구름이라도 잡힐 듯 높직한 마루를 이루는 곳에 터를 잡은 돌비석은 득도한 자의 위용을 하고 서 있다. 음각으로 파인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세월에 덮여 검다.

옛사람들은 험난한 이 길을 봇짐 하나 걸러 메고 넘나들었다. 쉬엄쉬엄 오르기를 반나절, 등줄기며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가쁜 숨을 내려놓았던 곳. 바람이 지나가고서야 알았다. 바람도 쉬어간다는 것을.

차를 타고 국도를 다니다 보면 고갯마루에 이정표처럼 서 있는 석물을 자주 본다. 조령재, 한티재, 우풍재 등등 이름도 다양하다. 고개마다 곡절은 갖고 있을 테지만,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저마다 품고 있는 응어리의 무게는 다르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무심히 바라볼 뿐. 그러다 풍광이 빼어난 곳을 만나면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상념에 젖는다. 자연의 영령이 나그네의 바쁜 발길을 잡아챈다.

노모는 늘 뭘 그리 아등바등 사느냐고 채근하신다. 살아보니 사는 게 별거 없더라면서, 뒤도 옆도 돌아보라고 자늑자늑 설명하셨다. 우리의 삶은 쥐벼룩의 어깨춤 같은 것, 찰나가 아니겠는가. 숱한 고비를 넘고 온갖 일을 겪으며 살아온 인생이 힘들만도 하련만,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신조만큼은 강하시다.

쉽게 얻어지는 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이치를 아시기에 매사 바지런함과 아금바리 근성으로 살아오셨던 분. 어머니의 이맛살 실개천으로 바람의 독경 소리가 덧없이 지나간다. 세월 앞에 헛헛해하는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 속에 눈물이 비친다. 첩첩산중 고개에 홀로 땅을 물고 있는 빗돌의 처지 같아서....

몇 해 전, 안동 봉정사를 찾은 일이 있다. 영주 부석사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어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산사이다. 어느 날 어머니와 얘기하다가 ‘한국의 산사’ 7곳을 여행하기로 약속했다. 수십 년을 다닌 상주의 남장사가 영험한 절이라고 믿기에, 그곳 말고도 더 유구한 사찰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봉정사로 가는 차 안에서 노모는 늘 봐왔던 밭과 울창한 숲이 낯설게 느껴졌던지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회한에 잠기는 듯 되뇐다.

“비가 안 내리니 올해도 작황이 별로겠구나. 양봉도 예전 같지 않은데..." 한바탕 걱정을 쏟아내신다.

차창 밖을 내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마흔아홉 이른 나이에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고갯마루는 백 세 인생으로 치자면 절반쯤 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산하의 절경을 바라다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온 어머니. 만약 단 한 번의 행복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당신과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색색이 변하는 저녁놀의 신비를 바라다보는 것일지도.

길이 생긴 대로 도로를 포장한지라 차멀미가 난다며 천천히 달리라고 하신 지 얼마 안 돼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잠시 쉬어 가자고 하셨다. 나지막한 고개지만 잔바람이 갑갑한 가슴에 닻을 내린다. 아침부터 너덧 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힘겨워하는 기색이 낯빛에 역력하다.

여태껏 어머니는 고달픈 고개를 숱하게 넘어오셨다. 아무리 털어봐도 먼지밖에 없는 집안 터수에 줄줄이 생겨난 자식을 보육하는데 이골이 났을 법도 하지만, ‘어미’라서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셨다. 그런 분이 지금 내 곁에서 닳고 닳은 연골 무르팍을 어루만지고 있다. 새도 쉬어간다는 문경새재에서 고사리를 꺾어 말렸다가 시장에 내다 팔며 궁색한 살림을 묵묵히 버텨오셨다.

봉정사는 입구부터가 급경사이다. 어머니가 온전치 못한 다리로 걸어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려니 걱정이 태산이라 관리인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차를 몰고 요사채 밑까지 올라가라고 일러준다. 한숨 돌렸다. 아, 오십 계단이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을 가려면 저 돌계단을 올라가야 할텐데... 그때 어머니가 차 문을 열고 말씀하셨다.

“예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있겠냐. 다리야 아프겠지만, 참고 올라가 보자"

쉬었다 걷기를 여러 차례, 간신히 대웅전 앞에 섰다. 산을 넘어 도착한 고갯마루가 그곳에도 있었다. 요사채는 고요하고, 대웅전의 열린 문으로 가부좌를 한 부처의 자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몇 개의 계단을 올라 법당으로 향했다. 합장한 두 손, 고개를 숙여 몸을 바닥에 밀착하고 두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린다.

노곤한 인생의 짐을 잠시 법당에 내려놓은 노모는 오랫동안 엎드려 좀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내려놓지 못한 속세 근심이 무겁게 노모의 몸을 누르고 있다. 돌 위에 또 하나의 돌이 얹힌 돌탑처럼.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평신하는 노모의 숨결이 가쁘게 떨린다. 또다시 지존 앞에 몸을 낮춘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인생의 여정을 닮은 고개는 케렌시아다. 무력해진 몸과 마음에 힘을 주고 정신적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쉼의 장소.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 앞에 엎드린 노모의 예빈 등짝이 고갯마루의 땅처럼 편편하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