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둥지 곁을 맴도는 바람

댓글 commct02.png2026-09-18 (금) 12:00:00 이희숙 수필가ㆍ아동문학가
한참 들여다보아야 했다. 나뭇잎을 들추니 둥지가 보였다. 나뭇가지로 틀었는데 안쪽은 부드러운 결로 엮어진 새집이다.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꿈틀거리는 게 있었다. 부화한 작은 새 두 마리가 몸을 비비며 꼬물거렸다. 은밀한 비밀 장소를 발견한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다시 나무 앞에 눈을 고정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빨간 부리가 입을 쩍 벌린다. 그때 내 머리 위를 빙빙 도는 것이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푸덕거리며 서성이는 게다, 걱정스러운 듯. 그제야 새끼 새를 지키는 어미 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며칠 후 사그라지지 않는 궁금증은 내 발걸음을 둥지 앞으로 이끌었다. 가려진 나뭇잎을 조심히 열었다. 그런데 없다, 아무것도. 꼬물거리던 생명체가 사라졌다. 어떡하지. 나 때문에 다른 처소로 옮긴 걸까? 이젠 날개를 펴 스스로 하늘로 날 수 있는 걸까?
 
빈 둥우리 위를 날던 어미 새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큰딸을 대학 기숙사에 혼자 떨쳐 놓고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상실감, 허탈감이 밀려왔다. 빈손이 된 듯한 허전함, 내 역할이 없어진 듯한 감정의 파도가 몰려왔다. 품에 있던 아이가 독립하여 집을 떠나는데 마음껏 기뻐해야 할 터. 아직도 내 품에 안기며 의지하기를 바라는 걸까? 어린 딸이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기보다 한 걸음 뒤에서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아이의 삶은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사계절을 견디며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와 닮았다. 바람을 한 번도 맞지 않은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작은 실수와 서툰 선택, 때로는 눈물의 시간을 지나며 자신의 힘을 발견하길 바라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딸은 자신의 힘을 발견할 것이다.

어느 날 아이는 엄마 품을 떠나 자신만의 하늘을 날아야 한다. 그때 폭풍우가 몰아쳐도 엄마는 곁을 지키며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말을 건네는 존재로 말이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가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는 데 있다. 기다림은 새끼 새가 더 멀리 날아가길 바라는 기도다. 사랑은 붙잡는 힘보다 놓아주는 용기에서 더 깊어진다. 아이가 자기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믿어 주는 부모의 기다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응원이지 않을까.

둥지 곁을 맴도는 바람은 소리친다.

“바람 속에서 길을 찾아봐! 또 다른 길의 시작을 찾아 날개를 더 넓게 펴! 더 높이, 더 단단하게 치솟아 올라!”

45년이란 긴 세월 동안, 나는 남의 새가 맡겨 놓은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뛰었다. 그랬던 일상을 지나 은퇴 후 둥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짐을 내려놓은 두 손이 낯설어지다니… 끝난 것은 일뿐인데. 아이들에 대한 애착? 일 중독이었나? 내일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인 듯싶다. 이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 보자, 자판기를 두드리며.

멀리서 둥지를 떠나 새로운 길을 찾는 손자가 보인다. 

<이희숙 수필가ㆍ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