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의 시간 / 심선경
향기에는 얼굴이 없다. 그것을 깨달은 건 어느 차가운 겨울날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바구니 속 모과들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그 추레함에 눈을 돌렸다. 울퉁불퉁한 껍질과 흠집투성이 표면은 마치 세상의 모든 거친 풍파를 한 몸에 새긴 듯했다. 누군가 무심히 두고 간 그 열매들을 나는 책상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 안을 채운 어떤 그윽한 향기가 내 의식을 깨웠다. 처음엔 창밖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의 갈피에 묻어온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향은 사라지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농밀해졌다. 방 안을 더듬듯 둘러보다가 마침내 구석에 놓인 그 못생긴 열매를 발견했다. 내가 외면했던 모과로부터 이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모과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가치를 매기지만, 모과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껍질을 화려하게 가꾸는 대신 그 에너지를 온전히 향기로 바꾸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신 누군가의 호흡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수려한 겉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빛을 잃지만, 깊은 향기는 오래도록 기억의 지층에 각인된다는 것을 모과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손에 쥔 모과를 쓰다듬으며 나는 오래전 만났던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 사람 역시 모과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 좀처럼 내 시선이 닿지 않던 동료가 있었다. 어릴 적 앓았던 마마 흔적인지, 울퉁불퉁하고 거친 인상은 나무에서 떨어져 상처 입은 모과의 표면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늘 그를 스쳐 지나갔고, 누구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 한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소란스러운 세속의 일들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둔 채 고요히 세상을 관조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존재감 없음을 화젯거리로 삼았지만, 그것은 진심 어린 관심이 아닌 권태로운 오후의 잡담일 뿐이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우리 조직에는 햇빛을 독차지한 듯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늘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이끌었고, 여론을 빠르게 모아 일을 시원하게 해결했다. 상급자의 의중을 재빨리 간파했고 동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본능적으로 골라냈다. 사람들은 그를 '실세'라 부르며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 격랑 속에서도 그림자 같던 그 동료는 침묵 속에서 오직 자신의 몫만을 지켜내고 있었다.
어느 날, 조직에 예기치 않은 감사가 들이닥쳤다. 대형 사업 예산의 부적절한 집행이 문제가 되었고, 실무를 주도하며 박수받던 ‘실세남’은 해명 자료를 내지 못해 징계 위기에 처했다. 과원들이 전전긍긍하며 사태를 지켜보던 그때에도, 모과를 닮은 그 동료만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듯했다.
모두가 체념하던 일주일 뒤, ‘모과남’ 그가 부서장 앞에 두툼한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수년 치의 원장 기록과 규정 분석 등 결백을 증명할 치밀한 자료들이 완벽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기록’과 ‘규정 준수’라는 기초를 그는 홀로 묵묵히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위기를 넘기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화려한 적극성은 타인의 시선에 기댄 덧없는 불꽃이었으나, 외면받던 그의 한결같음은 모과의 기운처럼 절실한 순간 강력한 향기로 피어올랐음을. 박수를 위해 만든 ‘실세남’의 성과는 뿌리가 흔들렸지만, 묵묵히 익어간 ‘모과남’의 인내는 조직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책상 위 모과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과일 가게나 채소가게 진열대에서 모과는 늘 구석진 자리에 놓인다. 사과나 배처럼 매끈하게 빛나며 눈길을 끌지도 못하고, 한 입 베어 물면 떫은맛에 고개를 젓게 만든다. 모과는 당장 소비될 것들의 대열에서 애초에 밀려나 있다.
그러나 이 투박함은 모과의 결함이 아니라 고도의 생존 전략이었다. 모과는 지금 당장의 선택을 구걸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의 손을 빌린다. 한구석에 놓여 천천히 익어가며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묘한 향을 만들어 낸다. 오늘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소진되는 대신, 한 계절 내내 공간 속에 스며들며 존재의 흔적을 새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모과는 서두르지 않는다. 단지 숙성될 뿐이다. 단단한 표피 아래에서 은밀한 변화를 일궈내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억눌렀던 기운을 일제히 해방한다. 그 향은 찰나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문 너머로, 책장 틈새로 파고들어 기억 속에 박힌다. 계절이 바뀌어 생을 거두어야 할 때도 모과는 쉽게 썩지 않는다. 다른 과일들이 물러져 흐물거릴 때, 모과는 오히려 더욱 단단해지며 향을 응축시킨다. 부패가 아니라 승화로 답하는 것이다.
책상 위 모과를 오래 바라본다. 시간이 모과를 빚은 것이 아니다. 모과가 시간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저 단단한 살 속에 가두고 삭힌 것이다. 세상이 허락한 시간이 아니라 모과가 제 몫으로 묵묵히 머금은 시간. 그 차이가 썩음과 익음을 가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타인의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내 삶을 증명하려 애썼던가. 그러나 모과는 묻지 않았다. 누가 보든 말든 제 안에서 밀도를 채워갈 뿐이었다.
나의 계절은 아직 정점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조급함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며 미처 여물지 않은 오늘을 소모하기엔 삶이 너무도 귀하다. 모과가 그러했듯, 고요히 생의 한 모퉁이에 앉아 소리 없는 시간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고 싶을 뿐이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미각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좋다.
모질고 투박한 껍질 안에서 이 삶이 고요히 침잠하며 농익어 가기를 소망한다. 생의 끝자락 어느 날, 이름 모를 이의 숨결을 멈춰 세울 만큼 서늘하고 아득한 향기로 피어나 세상에 건네는 낮은 기별이 되고 싶다. 마침내 그 향이 누군가의 생生에 고요히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결로 남을 수 있다면, 나는 진정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