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 조수미
"너 왜 그렇게 혼잣말을 해?"
언니의 무심한 한마디에 순간 멈칫했다. 괜히 발끈하며 대답했다.
“내가?”
‘그래? 내가 그렇다고?’ 처음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부정했다. 왠지 부끄러웠다. 이상한 행동을 지적받고, 숨기고 싶은 습관을 들킨 기분이었다. 언니의 말을 들어서일까. 집에 돌아온 나의 혼잣말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 뒀더라." "몇 시지?" “좋아!"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소리들. 정말 그러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말소리로 가득한 집에서 자랐다. 단출한 네 식구인데도 집안은 종일 서로의 말소리로 와글거렸다. 지지고 볶으며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대화가 끊긴 적은 없었다. 할 말이 잔뜩 쌓인 날에는 욕실까지 언니를 따라 들어가 수다를 떨곤 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텔레비전은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만화든 드라마든 영화든 화면 속 이야기는 가족 간의 또 다른 말을 불러냈다. 늘 누군가의 목소리가 삶의 배경음처럼 깔려 있었고, 조용함이 낯선 것은 당연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첫날밤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냉장고 소리만 윙윙거릴 뿐 정적에 귀가 먹먹했다. 현관 앞에서 누군가 오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다시 고요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조용한데 잠은 더 오지 않았다. 창밖의 차 소리가 반가울 지경이었다. '이게 자유인가?' 싶었지만, 허전함이었다. 소리가 필요했다.
보고 있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켜두었고, 자동으로 재생되는 의미 없는 유튜브 쇼츠도 그저 흘러가게 두었다. 어떻게든 누군가의 말소리를 채워 갔다. 그러다 그 소리를 내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배고프네." 마음속 생각이 어느새 말이 되어 있었다. "뭐 먹지." 소리 내어 중얼거리고, “콩나물국 해 먹자.”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혼잣말에 대한 지적을 듣고 나니 신경이 쓰였다. "다 됐다" "아 맞다" "춥네" "할 수 있어"... 계속되는 혼잣말을 멈춰보려 했다. 입을 다물었다. 답답했다. 머릿속도 엉켰다. 참지 못하고 "아, 답답해!"라고 내뱉어 버렸다. 소리 내어 말하니 시원했다. 막혀있던 생각도 풀렸다.
멈출 수 없는 혼잣말을 귀 기울여 들어본다. 용도가 제각각이다. 결정할 때 "이렇게 하자." 변명할 때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격려할 때 "괜찮아, 할 수 있어." 토닥일 때 "오늘도 잘 지나갔어." 이런 말들이다. 누군가 옆에서 해주면 좋을 말들을 내가 나에게 해주고 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내가.
'혼잣말’을 검색창에 쳐본다. 결과들이 쏟아진다. 커뮤니티마다 나와 같은 고민 글이 눈에 띈다. 댓글 창도 떠들썩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어요", "완전 공감해요", "귀신이랑 대화하는 줄 알더라고요", "1인 2역도 해요", "외동이라 그런가 했는데" 등의 수많은 댓글에 동질감으로 긴 숨을 내쉰다.
다시 검색창에 '혼자 사는 사람의 혼잣말'을 적어 넣는다. 기사와 연구 결과들이 눈에 들어온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흩어진 생각을 모으고, 소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자기 대화가 늘어난다고 한다. 외로움일까, 혼자 사는 게 나를 이상하게 만든 걸까 걱정했던 마음을 안도감으로 내려놓는다.
신호등 앞에서 "빨리 바뀌어라" 속삭이는 사람, 편의점에서 "이거 먹어봤나" 중얼거리는 사람, 카페에서 "뜨거워" 작게 말하는 사람, 회의 시간에 "어디 갔지" 혼잣말하는 동료. 누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혼자 사는 사람은 더 자주 그렇다. 나만 유별난 게 아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나의 혼잣말은 외로움이라기엔 너무 실용적이고, 때로는 따뜻하기까지 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확신들,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작은 안부들, 혼자서 나를 돌보는 법이다. 괜히 눈치 보지 않고 계속 중얼거려도 좋다. "오늘도 괜찮았어." "내일도 할 수 있어."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혼잣말은 외로움의 신호라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는 자기 돌봄 기술이다. 어쩌면 혼잣말은 혼자여도 괜찮은 이유일지 모른다.
타이핑을 마치며 혼자 중얼거린다.
"됐다, 이 정도면 오늘 쓰고 싶었던 건 다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