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과 실 / 박은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어쩌면 그와 나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의 실 하나가 생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쑥쑥, 사랑, 무럭, 축복... 그리고 온맘, 만복... 요즘 부모들은 태중胎中의 아기에게도 이름을 지어 불러준다. 이름이란 부모의 바람과 사랑이 담겨 있으니, 태명胎名이라도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아기를 향한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름이 간절한 바람이나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속 인디언 이름들은 자연이나 현상, 혹은 구체적인 사물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바람이 몹시 불었던 날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언덕’이 되었고, 지빠귀가 울면 ‘지빠귀가 노래해’가 되었다. ‘빗속을 걷다’ 같은 서정적인 이름도 있었고, ‘너 잘 만났다’나 ‘시끄럽게 걷는 자’처럼 재미난 이름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이름은 어느 문화에서나 그 순간의 풍경과 마음을 담아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인디언이 바람과 새, 빗속에서 이름을 얻듯, 우리 전통 속 이름에도 당시의 환경에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도 있다. 조정래의 <아리랑>에는 태어난 날 마당가에 수국이 활짝 피어 이름이 ‘수국’이 된 처녀가 등장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들 하나에 이어 딸 셋을 연달아 낳자, 아들을 바랐던 수국의 할머니는 수국꽃을 부처님 얼굴로 여기며 합장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들을 꼭 점지해 달라 기도했다. 나는 연꽃이 한창이던 여름에 태어났는데, 만약 마당에 연꽃이 피어 있었다면 ‘연실’이 되었을까.
이름이란 어쩌면 그 사람의 예언적 서사를 품고 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 이름에도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장난삼아 친정아버지께 필명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반짝였으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작명 솜씨가 신통치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실,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은 것이다. 살면서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순하고 둥글며, 어찌 보면 촌스러운, 그러나 모나지 않은 이름이었다. 다만 젊은 시절, 누군가 “언니 이름이 금실, 동생은 동실이냐?”하고 묻던 순간에 얼굴이 붉어졌던 적은 있다. 위로 언니가 둘이나 있었지만, 애초 그런 조합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내 이름은 은혜 ‘은’, 열매 ‘실’, 은실이다. 셋째 딸인 나에게 아버지는 ‘이제는 그만 딸을 맺으라’는 소망을 담아 ‘열매 실’을 붙였다. 앞의 ‘은’은 아마 언니들과의 동질감을 주고 싶어 그리 정한 듯하다. 어릴 적 나는 ‘은혜의 열매’라며 으쓱댔던 기억이 있다.
어쩌다 보니 이름 속 ‘실’은 나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서명할 때도 나는 ‘실’자를 사용하며, 나를 ‘실아’라고 불러주는 이에게는 이유도 없이 점수를 잘 주는 편이다. ‘실’이란 열매라는 뜻이지만 무언가를 이어주는 것, 떨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묶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것이 사랑이든, 추억이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이든. 금실이란 말만 해도 부부의 사랑을 뜻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은실은 은근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성명학에서는 사주를 뼈대에, 이름을 옷에 비유한다고 한다. 타고난 뼈대는 바꿀 수 없지만, 옷을 잘 지어 입으면 삶이 한결 나아질 수 있단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면 내 이름은, 나를 무난하게 살아가게 한 부드러운 옷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을 읽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이름과 교묘하게 겹쳐졌다. 어느 부분이라고 허투루 넘기겠냐만, 특히 여덟 살 한강이 쓴 시 한 편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사랑이란 어디에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어린 한강에게 사랑이 금실이라면, 나는 은실쯤이면 어떨까. 금빛 사랑은 찬란하고 강렬하지만, 때로는 너무 눈부셔 오래 바라볼 수 없다. 은빛 사랑은 고요한 달빛처럼, 한밤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깊고 넓게 스민다.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 "은-실-" 입술이 옆으로 살짝 벌어지며 작은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아버지는 훗날 내가 수필가가 될 줄 예감했을까. ‘은’과 ‘실’, 부드러운 어울림이, 내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의 마음과 지금의 내가 하나의 결로 이어지는 듯하다. 비록 번쩍이는 금실은 아닐지라도, 은빛 실로 엮은 낭창낭창한 거미줄 같은 수필을 남긴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나의 이름이 곧 나의 이야기이고, 그 은빛 실이 나와 누군가를 잇고, 그 위로 공감이 흘러 또 다른 이를 향해 번져가면 좋겠다. 내 이름은 은빛 실, 나는 그 실로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엮어가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