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 / 김희숙
지하철역 부근으로 난장亂場이 섰다. 일명 노점상이다. 과일 파는 여자는 건널목 입구에 터를 잡았고 붕어빵 굽는 아저씨는 계단 위의 명당을 차지했다. 바깥 구경 나온 붕어들이 오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춘다. 옥수수 삶는 아낙의 이마가 땀범벅이다. 지나는 노인이 가판대의 양말을 하릴없이 뒤적인다. 그 옆 간이 옷걸이에는 구제 옷들이 점잔 빼며 걸려 있다. 한낮이어서인지 행인이 뜸하다. 그마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지나친다.
환풍구에 기대어 아주머니가 머리 방아를 찧고 있다. 이른 아침에 공판장을 다녀왔을까. 꿈에서라도 손님 오기를 비는 걸까. 길바닥에 종이 상자를 뜯어 깐 만큼이 그녀의 자리다. 둥그런 바구니에 얇은 채반을 포개어 단을 높인 폼이 마치 제기에 제수 올린 듯하다. 홍동백서의 엄격한 법도를 따르진 않았어도 나름의 규칙은 있나 보다. 감자 오이 당근 상추를 가지런히 진열해 두었다.
길거리 장사꾼으로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연의 비바람은 수시로 몰아치고 관청의 단속은 예고 없이 나온다. 짐을 풀고 싸고 피하는데 이골이 났을 터이다. 하루 벌어 그날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난전은 가능성의 공간이요, 밥을 위해 허리 숙인 세속의 기도처다. 그런데 손수레에 실린 무게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홍보라도 한다면 매출이 오르려나. 가져온 상품을 남김없이 판다면 온몸에 내려앉은 매연쯤이야 툭툭 털고 일어서련만 허리에 두른 전대가 홀쭉하다.
팔아야 산다. 인간에게 파는 것은 숙명이다. 농부는 작물을 팔고 어부는 생선을 판다. 공장 제품을 거래하고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며 이도 저도 팔 것 없는 이들은 몸으로 때우고 시간을 저당 잡힌다. 판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지 싶다. 팔려면 알려야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아야 사러 온다. 알리기 위해 TV에 선전하고 전광판에 불을 켜고 자동차 창문까지 도배하며 전단지를 뿌리고 SNS에 띄운다. 현대인들은 뭐든지 많이 팔려고 아등바등 기술을 발전시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거리 좌판은 떳떳하게 광고하기가 어렵다. 뜨내기라 내건 간판도 알릴 주소도 없다. 홍보는 언감생심. 그저 지나는 걸음이 멈추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영광 고을의 ‘난장트기’가 떠오른다. 아날로그식 알림 수단을 한데 모아 잔치를 벌인다. 예전에는 한식 무렵이 되면 칠산 앞바다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들로 법성포구가 불야성을 이루었다. 또 국가 세금 창고가 있던 곳이다. 한양으로 세곡을 싣고 떠났던 배들이 다시 법성창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단오 기간과 겹쳤다. 잡아 놓은 조기는 골목마다 넘치고 한양에서 가져온 물산이 흥성거렸다. 물품은 주인을 찾아가야 쓰임을 갖는 법. 방방곡곡으로 굴비가 팔려 나가도록 상인들을 불러 모아야 했다. 법성포 주민들은 단오제 한 달 전부터 장을 열었다.
세상의 문을 두드린다. 농악대가 길굿을 친다. 꽹과리가 앞장서고 징 북 장고 소고가 뒤따른다. 악기 소리가 제 몸에서 나는 소리인 양 숲쟁이 숲의 나무들이 웅성댄다. 서로 다독임을 주고받아야 숨을 쉬는 게 인간 아니던가. 동굴 문은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으로 열렸으나 사람의 얼어있는 마음은 온기가 닿아야 녹는다. 닫힌 마음 문을 여는 의식이다. 두드려 내는 소리에는 빗장을 풀어헤치는 열쇠라도 담긴 걸까.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신명이 일어난다. 심장이 뛰면서 어깨가 들썩인다. 전쟁터 북소리는 병사의 사기를 북돋우고 사찰의 새벽 종소리는 어둠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장터의 장사치는 발 구르고 손뼉 쳐서 무표정으로 지나던 얼굴을 돌려세운다. 두드린다고 모든 문이 열리겠는가마는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나설 터이니 신바람부터 일으킨다.
어느새 소문은 손끝으로 전해진다. 카페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올라오는 평점이나 댓글이 장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본래 소문이란 두 발이 하던 일이다. 발은 세상의 길 위를 흘러 다닌다. 국경을 넘나들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며 사람 사이를 흐른다. 오일장 도는 장돌뱅이나 대문을 기웃대던 방물장수는 등짐에 팔도 소식을 함께 넣어 다녔다. 그들의 언어는 흥정을 부추기기도 하고 깨뜨리기도 한다. 법성포에 난장이 열린다는 소식은 보부상 조직이 전한다. 봇짐을 꾸린다. 사방팔방으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나선다.
상징성을 가진 물체는 눈과 귀를 자극한다. 백 마디 말보다 널리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문 앞에 금줄이 쳐졌으면 드나드는 걸음을 자제하였고 대나무에 오색천을 매단 곳은 무속인 집으로 여긴다. 입간판을 내세우거나 화환이 놓인 가게는 호기심으로 기웃댄다. 법성포에서는 깃대도 한몫 거든다. 눈에 띄게 휘날리려면 곧게 자란 대나무가 제격이다.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는 대나무이니 소중하게 다룬다. 자르기 전 막걸리를 뿌려주고 고사까지 지낸다. 장대에 매달 괴나리봇짐에 난장을 튼다는 문서를 넣고 장사가 잘 되길 바라는 염원도 꾹꾹 눌러 끼운다. 패랭이와 짚신과 엽전도 무명천으로 묶어 매단다. 준비를 마친 난장기는 멀리서도 알아보도록 마을 입구나 다리 위에 세워 둔다.
알리는 일은 동시대인에게 멈추지 않고 아래로도 이어진다. 대기업의 마케팅은 이미 전 세계인이 아는 맛인데도 새로운 광고를 꾸준히 선보인다. 세대를 넘어서 입맛을 길들인다. 난장트기 행렬 중 장고 치는 여인 뒷줄에서 중학생 딸아이가 소고를 두드린다. 소고춤 동작을 요령 한 번 피우지 않고 배운 대로 소화한다. 장시간 같은 자세를 취하려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련만 흐트러짐 없이 의젓하다. 보부상 역을 맡은 청년들은 꿀 같은 직장의 휴가 날짜를 행사에 사용한다. 어른들 모시고 잡다한 일을 도맡으며 전통을 익힌다. 문화유산은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며 쉼 없이 짐을 나르는 등이 든든하다.
천지신명에게 고한다. 황토와 막걸리를 뿌려 제사 지낼 터의 부정을 씻어낸다. 제관들이 제상에 과일 나물 탕 쌀을 진설하고 향을 피운다. 세찬 바람 한 점에도 넘어질 수 있는 미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세상사 사람의 힘만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무리 강한 이라도 혼자서는 세파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하늘이 돕고 땅이 거들어야 나아갈 수 있으니 낮은 곳으로 엎드리는 것이 사는 길임을 터득해 왔다. 술잔에 술을 채워 올린 후 절을 한다. 보이지 않는 비손들이 모여 생을 감싼다. 공동체를 위해 무릎 꿇은 몸짓이 숭고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힘껏 애써본다. 그 뒤는 하늘의 일이다.
사람이 온다. 골목에서 나오더니 졸고 있던 아주머니를 깨워 가격을 묻는다. 순식간에 바구니 세 개가 비워진다. 구부러진 오이는 덤으로 담긴다. 지갑이 열리니 세종대왕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