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며칠을 황사바람이 불었다. 잠잠하던 바람이 오후만 되면 세상을 흐리게 했다. 안개처럼 뿌연 황사가 싸이는 날이면 나는 병을 앓았다. 해마다 사월이면 비켜가지 않는 우울증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살아온 날들도 추억의 겹으로 무거워져 몸주체를 할 수 없다. 그늘진 마음들이 켜켜이 싸여 목젖까지 울컥 밀려나오면 베란다에 있는 양파주머니를 통째로 꺼내어 깐다. 양파의 겹을 벗기며 내 우울을 치유한다.
빨간 망 속에는 양파가 층층이 쌓여 있다. 공기가 천천히 드나드는 망이건만 짓무른 것도 더러 있다. 양파의 곪고 문드러진 정도가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채기처럼 느껴져 쓰라리다. 나이테처럼 싸인 겹을 벗겨 내면 인생의 쓴맛처럼 맵싸한 양파의 향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옷고름을 풀고 한 겹 한 겹 옷을 벗듯 알몸이 된다.
누렇게 마른 껍질을 벗겨내면 뽀얀 속살이 보인다.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투명한 막은 빈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사는 나를 보호하는 방어벽 같다. 알몸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을 살포시 열면 새로운 나를 만들기 시작한 겹이 나타난다. 그 안에는 맨살 부둥켜안으며 쓰라림을 견뎌야 했던 나의 삼십 대가 동그맣게 앉아 있다. 사람 사는 일이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늘 파도치는 것이어서 앞일을 가늠하지 못하고 산다.
내 나이 서른에 들던 해, 뜬금없는 일에 얽히고설켜 세상의 매운맛을 톡톡히 봤다. 반갑지도 않게 찾아든 불청객의 해작질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발만 동동 굴리며 살아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안은 채 가슴앓이를 했던 하루하루였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동그란 양파처럼 꼭꼭 숨기고 있었던 것은 서푼어치도 안 되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드러내지 않은 견고한 슬픔들이다. 슬픔의 겹을 열어젖히면 웅크린 채 쌓인 세월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운명이란 때로는 사소한 사건이나 우연한 만남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는 미묘한 것이라 했던가. 세상물정에 눈이 어두운 남편이 동료를 믿고 마음을 보냈다가 반갑지도 않은 손님을 만났다. 어처구니없는 된서리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살뜰하게 마련한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었고 한 푼 두 푼 부어온 적금통장도 바닥이 드러났다. 남의 빚을 갚느라 지독하게 매운 삶과 맞서야만 했던 세월을 자기에게서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은 헤아릴 것이다.
한 해 두 해가 가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남편에 대한 믿음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밖으로 내색은 않고 안으로만 곰삭았던 속은 썩은 양파처럼 문드러졌다. 하지만 몇 억겁의 세월을 건너 만나지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인연인지라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원망과 미움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가니 연민의 정이 싹텄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와 희망 없었던 캄캄한 터널을 지나오며 상상으로 배를 채우는 습관을 지녔다. 쓰라림과 목마름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살아갈 때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것을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 지난한 삶의 흔적은 상처로 남았지만 상흔의 세월을 모두 껴안기로 하니 한결 성숙해졌다.
양파를 벗기며 새로운 진리 하나를 얻는다. 어떠한 겹으로 이루어졌느냐가 바로 우리네 인생이듯, 한 겹씩 벗길수록 나의 인생이 드러난다. 내 안에는 부드러운 겹도 숨어있고 곪은 겹도 들어 있다. 벗기고 벗겨도 알 수 없는 양파처럼 가면을 쓰고 남몰래 간직한 비밀 또한 있을 것이다. 삶의 풍파를 만나 상처를 한 번 입고 나면 생채기처럼 겹이 하나 생기고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면 꽃잎처럼 하나의 겹이 포개졌다. 겹 속에는 스스로 선택했고 충실했던 진짜의 내 모습이 들어있다. 지금까지 겪은 좌절과 분노, 기쁨과 희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는 것이 어찌 슬픈 날들만 존재했을까마는 힘이 들면 들수록 나를 굳세게 감싸며 꿈을 키워 왔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주름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욕망은 줄어드는 법도 없이 공기가 들어가면 부풀려지는 풍선처럼 팽창했다. 많아지고 커질수록 나의 겹은 더욱 여물었다. 돌아보면 푸른꿈도 있었고 걸어온 길도 멀었다. 기다림은 늘 조금증을 일게 하였지만 한 해 두 해가 흐르면서 새로운 겹이 자리를 잡았다.
나를 온전히 벗기고 나니 우울증의 늪에서 탈출한다. 양파를 빌러 실컷 울고 나니 저만치 멀어져 있는 남편이 눈에 들어온다. 어찌 나에게만 슬픔이 존재할까. 부부가 살아가는 일 또한 양파의 겹과 무엇이 다를까. 내가 걸어온 길이 힘겨운 여정이었다면 남편 또한 고단한 날의 연속이었을 것이 뻔하다.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아도 아픔의 흔적이 얼마나 단단히 엮어주는지는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안다. 상처 난 곳을 치료하고 나면 새 살이 차오르듯, 본의든 타의든 아픔을 호되게 겪고 나면 세상을 품는 가슴도 넓어지기 마련이다.
남편이 앞서 걸어간 길을 내가 걸어가듯 내가 걸어온 하루하루를 다박다박 걸어오는 남편이다. 때로는 그가 이불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나를 감싸는 따사로운 품이기도 하고 나는 모성애를 발휘하여 그의 하루하루를 감싸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부부는 겹겹이 되어 서로를 감싸며 살라고 짝으로 맺어졌는지 모른다. 겹겹으로 싸인 것이 인생이고 우리는 둥근 우주 속에서 하나의 겹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바퀴 같은 겹 하나를 또 숙성시키고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기쁨보다 슬픔이 더한 날들이었다면 이제는 삶이 무르익고 기쁨의 날들이 쌓이기를 소망한다. 행복은 그저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뒤에 따라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안에 들어있는 고통마저도 감추지 않고 사랑으로 빚어낸 양파의 겹처럼 행복의 겹들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