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나의 등단 소식을 전하면서 내 글이 실린 수필 전문지를 한 권 보내겠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축하의 인사말 끝에 하는 말인즉, "이제 자기는 올가미를 쓴 거야. 이젠 글이 쓰기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야." 한다. 축하한다는 인사말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그 뒷말이 꺼림칙하다. 도대체 무슨 심술인가. 그 '올가미'라는 말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두고두고 생각에 잠기게 했다. 과연 나는 올가미에 걸린 것인가.
'올가미'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산짐승의 '덫'이다. 그건 시골에 있을 때 남편과 함께 인적이 드문 산골을 걷다가 겪은 일인데, 좁은 오솔길에 그 흉물이 놓여 있었다. 그 길의 주변은 잡목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그 길이 아니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는 곳에 놓인 올가미에 나는 발목이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올가미는 어떻게 된 것인지 나를 꼼짝 못 하게 묶어 놓질 못했다. 그러나 산짐승이 걸렸다면 어찌 됐을까. 걸린 녀석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더 깊이 옥죄여 결국에는 숨지고 말았을 것이다.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띠'가 생각난다. 손오공을 착하게 살지 않으면 어김없이 그 띠에 머리가 죄어 고통을 당한다. 언젠가 본 영화 생각이 난다. 제목이 '올가미'였다. 오래된 영화인데, 아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며느리를 괴롭히는 병적인 시어머니를 그린 내용이었다.
내가 등단을 하고 보니 마음에 부담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우선 문학에 관한, 많은 독서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거려 보지만,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마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강박증 자체가 이미 올가미에 걸렸다는 증거 아닌가. 그 친구 말이 맞다. 나는 요새 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등단하고 나서부터 더욱 그러하다. 이제 등단하기 전보다는 뭔가 나은 글을 써야겠다는 욕심이거나 아니면 자존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도무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글이 쉽게 써지지도 않으니 어쩌면 좋은가. 이거야말로 틀림없는 올가미다.
어제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면서 내게 누런 봉투의 우편물 하나를 던져주었다. 책 보내줄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보냈을까 하고 겉봉을 살펴보니 뜻밖에도 내가 잡지에서 본 바로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분의 수필에 홀딱 반해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서 그분의 수필집을 사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혹시 발표된 내 신인상 글을 봤을까.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나는 놀람과 기쁨에 들떠 당장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솜씨가 없는 나는 그분에게 선생님의 글이 좋아서 두 번 세 번 읽고 있다는 말도 미처 못하고 그냥 "너무 좋아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럴 때 나의 올가미는 신선한 충격이다. 그분이 보내주신 책에 내 이름까지 사인을 했으니 이것이 어디 예삿일인가.
손오공은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이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만 가중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는다. 손오공은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착하게 살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사느라 올가미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제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띠'는 더 이상 손오공을 괴롭히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자신을 성숙시키는 매체로 탈바꿈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의 올가미에 걸려 어려움을 겪는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건대 나 또한 이런저런 일로 질식할 것 같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결혼부터가 나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올가미였고, 자식을 낳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올가미 아닌 올가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오히려 그 올가미에 감사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 올가미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새삼 깨닫는다.
뒤늦게 나는 ' 수필가'라는 새로운 올가미를 둘러썼다. 그러나 이 올가미는 내가 좋아서 만난 스스로의 선택이다. 새로운 올가미는 나에게 삶을 보다 치열하게 살라고 주문하고 있다. 나는 그 주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본 시어미처럼 병적인 집착은 하지 않으리라. 혹시 내일이라도 문학보다 더 좋은 것이 생긴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올가미를 벗어던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 나는 오히려 마음 든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