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의 꿈 / 위상복

강구 토박이가 옥계계곡을 향해 거슬러 오른다. 무더위가 숙지기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잰걸음이 초행길은 아닌 듯하다. 가늘고 날렵한 몸매 자랑하듯 은빛 날개를 번득인다. 연신 허리춤을 비틀어대는가 싶더니 가쁜 숨을 토해낸다.

계곡 찾아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거센 물살도 갈라야 했고 가파른 벽도 넘어야 했다. 하늘만큼 높은 보를 여럿 오르다 보면 몸을 감싼 비늘도 멍들기 일쑤였다. 목숨이 걸린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아이들이 유혹하는 달콤한 낚싯밥도 참아야 했고, 어른들이 던지는 무시무시한 투망도 피해야 했다. 6․25 전쟁만 없었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나 할까. 그가 살던 오십천 하구처럼 평화로운 세상은 아니었다.

자갈을 촘촘히 깐 마땅한 여울목이 반갑게 맞이한다. 소년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먼저 계곡에 도착한 수컷들과 몸을 비비며 재회의 기쁨으로 뒤엉킨다.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자 의식이 시작된다. 최후의 만찬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밤인들 이만큼이나 절절했을까. 수컷과 암컷의 만남이 숭고하다. 흐트러진 매무새를 연신 가다듬다 보니 물 위에 동살이 내려앉는다.

모두 흩어진 고요한 아침, 지느러미로 바닥을 고른다. 모래와 자갈을 파내 오목하게 만든 곳에 알을 얹는다. 조용히 눈 감고 지나온 세월을 불러본다. 강물에서 살던 시절도, 바닷물에서 지내던 시절도, 다시 옛집을 찾아 먼 길 달려왔던 기억도...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도 잠시뿐, 크게 한번 솟구치는가 싶더니 허연 배를 드러내며 꿈나라로 빠져든다.

그에겐 그해 겨울이 유난히도 시렸다. 췌장에 달라붙은 작은 불청객이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일찍 발견한 걸 다행이라 여기며 기적을 바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향에서 떨어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와 수술을 반복했다. 하지만 낫겠다는 그의 의지나 살리겠다는 가족의 노력이 손톱만한 침입자 하나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웠다.

불청객의 횡포는 거침이 없었다. 처음엔 의사의 진단도 주변의 위로도 들리지 않도록 그의 귀를 꼭꼭 틀어막았다. 허탈해하던 그의 마음은 분노로 일렁거렸고, 끝내 처절한 절규로 폭발하였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차츰 그가 일상을 되찾아 갔다. 별일 아니라며 툴툴 털어내고 꼭 일어설 것 같은 자신감도 드러내고 건강 조심해야겠다며 이웃까지 살폈다. 매일 일기 쓰듯 그려낸 그의 심정이 휴대전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왔다. 할 말이 없을 땐 어릴 적 나와 함께 놀던 추억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아갔다.

사촌이 여럿이지만 그와 앉는 자리가 가장 가까웠다. 변변한 명패도 없는 나를 형이라고 찾아주는 게 늘 고마웠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는 닮은꼴 때문일까.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끼리 더 가엽게 여긴다고, 연로한 홀어머니를 떠맡은 서로의 처지를 곱씹으면서 만나는 기회가 다른 이보다 잦았다. 내 마음도 그와 깊숙이 닿아 있었다. 특히 오십 고개 넘을 즈음 중풍으로 쓰러진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안부가 늘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마가 꼬리를 보일 무렵, 그날따라 카톡방이 숨을 죽였다. 비슷비슷한 글을 아침마다 맞이할 땐 성가신 느낌도 들었지만, 그의 소식이 건너뛰자 마치 배달 사고라도 일어난 것처럼 궁금증에 빠져들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년 넘게 보내오던 문자 아니던가. 시골집도 들릴 겸, 그가 입원한 고향의 병원을 찾았다. 초봄부터 말썽을 피운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외에는 병실 출입을 반기지 않았다. 얼굴 대신 목소리로 만나고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고 머뭇거리는 순간, 병원 로비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부스스하고 다리가 퉁퉁 부은 게 마음에 걸렸다. 눈도 못 붙이고 밥도 못 넘긴 듯한 모습으로 1층까지 내려온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특히 중풍으로 망가진 몸이라 혼자 발걸음 떼기도 힘든 상태여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가쁜 호흡을 가라앉히고 이마에 맺힌 마른땀을 훔쳐내더니, 나직한 목소리가 한숨에 섞여 나왔다.

"형님,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아니야, 지금 좀 힘들어도 낫고 나면 다 지난 일이 될 거야. 여태 항암치료도 잘 견디어 냈잖아. 조금만 더 힘내"

바닥까지 내려앉은 진한 한숨 소리에 짓눌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스러질 듯 내뱉는 거친 숨소리 앞에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손에 잡히는 단어를 궁색하게 나열했을 뿐이다. 그의 두 손을 부여잡고 상한 얼굴을 바라보느라 시곗바늘이 도는 줄도 몰랐다. 한쪽 팔과 다리로 지팡이에 기대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바로 다음 날 쇼크가 오면서 입을 닫았으니.

그의 일생은 곡절로 얼룩졌다. 어쩌면 사서 고생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테다. 널찍한 새집에서 신혼살림 시작한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안정된 직장이나 떡두꺼비 같은 두 아들도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지 않았던가. 하지만 멀쩡한 직장 걷어차고 사업에 손대면서 그의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거듭된 도전과 실패 끝에 처자식도 건사하지 못할 만큼 세파에 휘둘렸다. 남들보다 앞서겠다고 꿈길 좇아 나섰지만, 거센 물살 헤치고 오르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를 보면 삶도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왜 그리도 바둥대며 힘들게 오르려 했을까. 길지도 않은 인생, 강물이면 어떻고 바닷물이면 또 어떤가. 삶터에서 가족과 함께 헤엄치며 웃고 즐기다 가면 그만일 것을…. 그는 마치 앞만 보고 물질하는 은어 같다고나 할지. 겹겹이 구겨졌던 그의 일생을 바라보는 주변의 눈시울을 촉촉하게 적신다.

한 무리 은어 떼가 오십천을 가른다. 자갈에 달라붙은 은어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눈망울만 꾸벅인다. 그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던 날 묘비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어린 조카들 모습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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