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기 / 박순태
흙이 냉랭하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땅바닥이 발을 탁탁 밀어낸다. 입김 젖은 마스크가 냉풍 세례로 뻣뻣하다. 꽃샘추위가 천기이던가.
노랗게 물든 개나리꽃이 한기에 얼어붙고, 돋아나던 쑥은 풀이 죽어 흙바닥을 긴다. 나뭇가지의 생장점이 봄맞이 징검다리에서 동작을 멈췄다. 동물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려다 기지개를 접었다.
땅은 언제쯤 속마음을 제대로 열려나. 그저께 내린 비로 흙이 스멀스멀 숨을 틔우며 몸을 뒤척이더니 굼뜬 한랭전선으로 고슴도치 털 세우듯 서릿발이 성성하다. 한순간에 돌로 변해버린 엄마 표정 같고, 훈장의 회초리만큼이나 따끔한 맛을 낸다. 그런가 하면 판소리 가락에 맞춰 북을 내리치는 고수의 몸짓이 연상되기도 하고, 모처럼 살랑살랑 다가오려다 매정하게 돌아서는 여인을 만난 듯도 하다.
산 초입을 지나 가파른 고개에 오른다. 번쩍번쩍 날을 세운 언덕 바람이 무더기 화살이 되어 산객을 표적으로 삼는다. 걸음을 잠시 멈추니 냉기가 몸을 덮친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내 굳어버렸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땅은 소박맞은 여인의 속심을 그려내는 듯 더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북풍한설의 굼뜨기인가, 미련인가, 마지막 발악인가. 흙 알갱이 하나하나를 꽁꽁 옭아매었다. 온 땅이 서로 엉켜있어 소통이 잠든 세상이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향한다. 눈부신 잔설에 사박사박 발자국을 남기며 정상을 뒤로한다. 몇 굽이 능선을 타고 내리니 햇볕이 흙을 쓰다듬는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대지의 기운이 모세혈관을 연상시킨다. 하산하는 발길이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 흙이 푹신푹신 밟히고, 물기가 있는 곳에는 질끈질끈 달라붙는다. 발바닥이 먼저 봄맛에 젖는다.
흙 알갱이는 서로 붙었다 뗐다 하면서 봄을 불러들인다. 아침엔 쌀쌀맞게 대하더니 정오를 넘기자 뭇 생명체를 너그럽게 품는다. 부슬부슬한 땅을 밟으니 인자하신 할머니 품에 든듯하다. 대지는 쓰라림과 기쁨의 감정이 뒤섞인 결정체일까, 시기와 질투와 욕심을 비운 대비심일까, 온갖 정세에 초탈한 경지일까. 무는 유의 근원임을 얼었다 녹았다 하는 흙에서 읽는다.
맞은편 산봉우리에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기의 밀도에 따라 신기루가 미소를 머금고 손짓한다. 어느새 식물은 새싹을 틔우려, 동물은 몸을 풀려고 수런댄다. 옥동자 순산한 산모의 몸 내음이 흙에서 잡힌다. 사물끼리의 소통을 코가 먼저 듣는다. 대기의 기상도, 땅의 기운도, 몸의 생체리듬도 파장을 더 세게 울린다. 꼬물대는 흙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오르자 심신이 은근히 깨어난다. 풀밭에 들어설 땐 움트는 씨앗을 밟을까 싶어 고양이 발걸음으로 살그머니 걷는다.
걸음걸음 따라 봄기운이 한 움큼씩 몸속으로 빨려든다. 땅이 겨우내 꽉 틀어막았던 문을 열고 온기를 피워 올린다. 바랭이와 잔디를 비롯한 들풀이며, 소나무와 참나무를 선두로 하여 그늘 내리는 나무들이며, 서로 등을 돌린 채 왼쪽 오른쪽을 고집하면서 역방향으로 휘감아 올리며 갈등을 유발하는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이며, 가시 달린 탱자나무와 찔레까지 연년세세 차별 없이 보듬는다. 한 식구가 된 식물들은 때맞춰 싹 틔우고 꽃망울 피워 열매 맺을 것이다. 봄을 맞은 대지는 우주의 리듬 따라 닫았던 가슴을 열면서 모든 생명체에게 제 몸 공양에 아낌이 없다.
녹아내린 흙의 감촉에 생각이 몰린다. 시선이 땅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땅으로 오가기를 반복한다. 소소한 일을 두고 주변인들과 소원하게 지내온 게 왠지 찔린다. 사람을 차별치 말라고 외치면서도 실상은 달랐다.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한 사촌 동생이 절을 하지 않고 멋쩍게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제상에 올렸던 음식도 멀리했다. 하찮은 짓이라며 가볍게 넘겼으면 될 것을, 그 꼴이 흉하게 보여 정이 떨어졌다. 급기야 동생이 믿는 종교까지 싫어했으니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이것뿐이 아니다. 찻집이나 식당에서 계산대 앞으로 다가설 때면 상습적으로 한발 물러서서 시선 떨구는 자를 거두절미하고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지인들과 대화에서, 처음엔 후보의 장단점에 접근하다가 입을 살짝 닫았고, 진보와 보수의 성향을 따지려 할 때면 벽을 치고 말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취향 또한 다각적이지 않은가.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모난 돌이나 둥근 돌이나 다 쓰임새가 있으니 차별하지 말라.”고 일렀다. 땅은 어느 것을 골라내어 따지려 들지 않으며 ‘따지기’로 온정의 손길을 고루고루 주면서 가슴에 품는다. 선생의 말을 곱씹는다.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마음의 해빙이 당연한 급선무다. 언제쯤, 눅눅한 흙처럼 되려나.
겨울이 억지를 부리며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봄 마중에 들뜬 생명체는 갑자기 휘몰아친 냉기류에 몸서리친다. 꽃샘추위는 봄을 향한 겨울의 마지막 고비가 아니라, 기온이 올라 싹틔워 꽃피울 때 겨울을 이겨낸 인내와 초심을 잊지 말라는 다짐이었으리라. 새벽녘 동틀 무렵이 가장 어둡듯, 등산길에서 마지막 깔딱 고개에 오르면 가깝고 먼 평원이 눈에 안기듯, 만사가 다 그렇게 풀려나가나 보다.
이제 땅의 박자가 점점 빨라진다. 추위가 끝났음을 알리는 파장이 더 세게 울린다. 하늘과 대지가 뜨거운 입김을 주고받으니 흙이 몸치장 준비에 바쁘다. 겨울의 경계를 넘어서는 땅 위에는 만물이 소곤댄다. 땅이 잠시나마 탁탁거리면서 발길을 밀어낸 것은 자신의 처지를 앞세워 따지려 들었던 게 아니었다. 길항하는 힘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적당한 때를 찾아 ‘딱 지금’의 온도로 내 앞에 선다. 해토머리의 변덕, 얼어붙은 마음을 해빙하려는 따지기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새 생명들의 고고呱呱, 그 울음소리가 코에 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