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개구리, 길을 찾다 / 이춘희
개구리 한 마리가 연잎 위에 엎드린다. 뒷다리는 접고 앞다리는 쭉 펴서 곧 뛰어오를 모양새다. 툭 튀어나온 눈알을 쉬지 않고 굴린다. 시선 따라 몸이 물을 향하다가 뭍 쪽으로 방향 바꾸기를 거듭한다.
몇 달 전, 유년기에 살던 동네를 찾았다. 기억 속의 그림은 전시회장에서 내려진 지 오래인 듯했다.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마을은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봐야 하는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하던 골목길도 널찍한 도로가 되어 차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삶의 곳곳이 시시때때로 달라졌다. 중학생 때 텔레비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조그만 상자 속에 든 사람과 나무, 꽃을 만져보려고 나는 화면을 몇 번이나 더듬었다. 흑백이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살랑대며 바람길을 알리는 꽃과 이파리에 넋을 잃었다. 몇 년 후에는 산과 들이 천연색을 입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정경을 그려냈다. 이제는 화면 속 친구와 대화도 한다. 갖가지 정보가 든 스마트폰은 몸의 일부가 되어 손을 떠나지 않는다.
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찾아오라 했을 때 천사는 꽃, 티 없이 웃는 어린이 웃음, 어머니 사랑을 가지고 왔다.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엄마'라는 이름을 얻고, 내 속에 든 헌신과 희생 보따리를 한치의 미련도 없이 풀었다. 생선의 도톰한 살은 아이에게 먹이고 나는 가시에 붙은 살을 훑었다. 아이들에게는 유명상표 신발과 옷을 사 입히면서 나는 시장이나 상설매장의 옷만 기웃거렸다. 고기를 구워 먹일 때면 잘 먹는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서 먹지도 않은 내 배가 불렀다.
육아의 긴 터널을 벗어나니 한 마리 개구리가 된 듯하다. 뭍과 물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 물가에서 갈팡질팡한다. 모임에 가면 엄마 개구리들의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온 정성으로 키운 아들에게 "엄마가 희생해 가며 나를 키워달라 했어요?" "엄마가 학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대학 가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에 허무가 쌓인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그런 말들은 애교 수준이다.
결혼할 나이가 되니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사귀는 아가씨와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겁박하는 아이, 결혼을 반대한다고 부모와의 연을 끊겠다고 위협하는 녀석, 결혼식 일주일 전에 청첩장을 들고 와 혼주석에 앉아 있기만 해 달라는 황당한 아들.
이런 아들 낳으려고 기도는 기본이고 쓴 한약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내키지 않는 미신에 마음도 맡겼다. 든든한 기둥 하나 세워 놓았으니, 그늘막에서 우아한 노후를 보내리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아들이 손잡고 온 며느리 눈치 보느라 바빠졌다. 자칫 버리는 수고를 시킬 까 봐 애써 만든 반찬 줄 때도 조심스럽다. ‘며느리 남편을 네 아들이라 생각하지 마라.’가 시어머니가 지켜야 할 계명의 으뜸이라니 박은 기둥이 뽑힐까 노심초사다.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니 숨이 가쁘다. 변화에 민감하지 못해 빨리 따라가지도,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엄마 개구리들은 뭍에서만 살지도, 물에서만 있지도 못하고 두 곳을 오고 가는 신세다. 명절에 '가족 모임에 왔으면' 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와 있지만,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아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화 속 청개구리 엄마처럼 내 뜻과 반대로 말해야 하는지 내가 바라는 대로 말해도 될지 오늘도 뭍과 물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
하늘을 보니 솜사탕 모양이던 구름이 강아지 생김새로 바뀌었다. 몇 달 전까지 잎이 무성하던 나무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 삶을 써 내려간다. 발그레하던 내 얼굴색은 거무스름해지고, 탱탱하던 피부는 여기저기 주름이 잡혔다. 유전자를 대물림하는 인류도 턱이 짧아지고 이마는 넓어졌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그러니 생각도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자연스러우리라.
새 길을 찾았는가. 커피를 앞에 두고 앉은 엄마 개구리들 색깔이 어째 좀 달라 보인다. 예전의 볼멘소리는 간데없고 핸드폰에 찍힌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내보이며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아들의 어린 시절 기억이 아기 얼굴에 겹쳐서일까. 종족보존본능이 채워져서일까. 뭍과 물의 경계를 지운 길이 엄마 개구리들 앞에 생긴 듯하다. 그녀들이 마음에서 내려놓은 아쉬움과 기대가 길 위에 늘비하다.
찻집 벽에 걸린 화면 속 개구리가 뒷다리를 박차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물갈퀴를 한껏 벌려 물살을 가르더니 갈대 줄기를 잡고 땅에 발을 얹는다. 몸이 뭍에 올라오자 폴짝폴짝 뛰며 수풀 사이로 사라진다. 순간, 번갯불이 머리를 친다. 물속에 살다가 육지로 올라온 개구리는 두 곳에 모두 가고 싶어서 갈팡질팡한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