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우닝가 10번지
유숙자
노란 수선화가 살포시 꽃대를 올리는 봄이면 나는 그곳이 생각난다.
겨울에도 잔디가 파랗고 이른 봄부터 노란 수선화가 피며 안개가 꿈처럼 피어오르는 곳.
1980년 남편의 근무지가 영국으로 옮겨지면서, 우리 가족은 런던 북쪽 ‘서나 가든’으로 이주했다. 그 동네는 고색창연한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고 아름드리나무의 울창한 나뭇잎이 하늘을 덮어 아치를 이루었다. 집에서 3분 거리에 템즈강이 있는 것도 축복이었다. 강가 나무들이 그림 같고 무더기로 피어 있는 수선화 사이를 한유하게 노니는 백조. 강가를 산책할 때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경치가 수려했다.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엔 내가 꿈꾸고 상상한 이상의 존재감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 속에 그렸던,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으로 떠났다.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벌판 하워즈 무어. 사철 세찬 바람으로 건물 벽면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어 분위기가 음산한 곳.
겨울이면 폭설과 눈보라가 심하여 종종 길을 잃는 사람이 있으나, 봄이 오면 보랏빛 헤더(Heather) 꽃이 벌판 가득 물결쳐 애잔한 향기가 은은한 곳.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는 ‘폭풍의 언덕’이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헤더 꽃 사이를 누비며 나는 비련의 주인공인 캐서린이 되어 꽃물결에 몸을 맡겼다.
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의 29세 때 작품 ‘폭풍의 언덕’은 죽음까지도 따라간 가장 슬프고 애절한 사랑이다. 결국, 작가가 이처럼 파격적인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세상 것의 집착과 영원에의 사랑을 동시에 갈망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몸서리쳐지는 처절한 사랑을 체험하고 캐서린처럼 짧은 생애를 마쳤다.
지금은 브론테 기념관을 만들어 당시 집필하며 사용했던 펜이며 책, 의류, 장신구 등 유품을 전시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세찬 바람은 여전하고 기념관 앞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긴 줄이 이어진다. 브론테 기념관은 기다리는 사람이나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나 침묵 그대로의 침묵이 흐를 뿐이다.
해 질 무렵이면 촛불 밝힌 식탁에서 식사하던 노부부가 생각난다.
자주색 우단과 흰색 레이스 커튼이 보기 좋게 드리워진 창가에서 갓 결혼한 부부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두어 시간씩 식사하던 노부부. 처음에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겠지 했으나 창가의 식사는 그들이 평생을 그 집에 살며 보여 준 일상이라는 것을 매일 그 집 앞을 산책하며 알게 되었다. 이런 로맨틱한 시간을 가져 보지 못한 나에게, 해 질 무렵이면 ‘서나 가든’의 노부부는 촛불을 밝히며 내게 온다.
수북이 쌓인 눈 속에서 파랗게 솟아오르는 잔디를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 머리 위 검은 구름이 한 조각만 있어도 비를 뿌리는 신기함. 기도하는 자세로 경건하게 서 있는 주황색 가로등은 안개 속에서 피어 오르는 꽃 같다.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진기한 정경은 가로등 사이를 풍선처럼 무리 지어 떠다니는 안개의 군상이다. 가로등과 안개가 무형 예술 작품 같았다.
영국에서 살았던 시절이 45년 전이라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따금 뉴스에 다우닝가 10번지(10 Downing Street)가 비칠 때면 마켓에 가려고 바구니를 들고 관저를 나오던 대처 수상의 소박한 모습이 떠오른다.
인생의 황혼, 고즈넉한 뜨락에 앉아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는 때이면 안개비 자욱이 내리던 런던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곳엔 내가 꿈꾸었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 한 번 더 살아보고 싶은 날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내 마음은 그리움의 도시 런던을 향해 길을 떠나고 가슴에선 추억의 수선화를 한없이 피워 올리고 있다.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