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鵬)새가 되어 / 노상

몽골의 하늘은 청명하다. 몽골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게르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을 보니, 몸을 날려서 하늘 호수에 푹 잠기고 싶을 정도로 청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깊은 청색의 바다 같다고나 할까.

마지막 날 일정표에는 열트산이라는 지명이 적혀있고, 2시간 정도의 소요 시간만 표시되어 있었다. 가벼운 트레킹이려니 여기고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열트산 초원이었다. 열트산은 텔레지공원에서 톨 강을 가로질러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이다. 열트산 능선에서 흘러내린 골짜기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고, 초원에는 기암들이 솟구쳐 있어, 우리가 걷는 들판 길을 받쳐주고 있었다. 가벼운 트레킹 코스라기에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열트산 초원으로 들어서니 넓은 들판에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이곳에서 에델바이스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알프스산맥도 아닌 열트산에서 그 꽃을 만날 줄이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우윳빛 에델바이스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다른 야생화들도 있었다. 특히 보랏빛 꽃이 눈길을 끌었다. 나는 국화인가 생각했는데 벌개미취 꽃이란다. 청초한 보랏빛 꽃잎이 예뻤다. 초원 여기저기 보랏빛 꽃 무더기가 아련하게 옛 추억을 자극하였다. 또 하나 눈에 띄게 선명한 푸른색 꽃이 있었다. 용담초라는 야생화였다. 한약재 이름으로만 기억했는데, 그 잎들이 신비한 꽃다발처럼 살포시 피어 있었다. 열트산 초원은 야생화 들판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트레킹이 야생화 들판에서 천국을 맛본 기분이었다.

초원에는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도 있었다. 지금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지만, 8월이 지나면 추운 날씨로 접어들 텐데, 얼마나 매서운 바람이 불까. 꽃들은 모두 키가 작았다. 그러나 에델바이스, 벌개미취, 용담초 그들은 이 들판을 지키고 있으리라. 꽃들은 홀로 피어있지 않았고, 함께 모여서 보듬고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일까.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일까. 들판의 외로움이 가슴 속으로 살랑살랑 불어왔다.

야생화가 피어있던 야트막한 초원과 그 오솔길을 돌아서니 기암괴석의 뒤에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가슴이 탁 트여왔다. 열트산 초원은 거의가 하늘이었다. 하늘이 시야에 가득했다. 간혹 구름이 떠 있다가 다시 청명한 하늘에 솜사탕 같은 살포한 흰 구름이 포슬포슬 떠 있기도 했다. 걷는데도 창공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발만 잠깐 떼면 잔잔한 바람과 더불어 창공을 날아갈 것 같았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날고 싶었다. 열트산 초원의 아름다운 자연을 품에 안고 날고 싶었다. 문득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읽었던 전설 속의 붕새가 생각났다. 붕새가 되어 초원 위를 날고 싶었다. 바닷속에 갇혀 살았던 물고기 곤(鯤)이 바다라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붕새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열트산 초원은 넓디넓었고, 청색의 하늘은 끝 간데없이 높았다. 열트산 초원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숨을 쉬니, 속이 탁 트여 왔다. 내 속이 맑은 공기로 가득 찼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비상하는 붕새처럼 심기일전이 되었다. 그때 내 영혼은 붕새가 되어 열트산 초원 위를 날고 있었다.

날아다니다 초원을 내려다보았다. 배낭을 메고 하늘을 바라보며 양팔을 벌인 사람들이 보이고, 묵묵히 한 줄을 유지하며 초원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야생화 사진을 찍느라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엎드려서 셔터를 누르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운 초원 위의 꽃밭 같았다.

다시 날개를 치니 좀 더 높은 곳을 날 수 있었다. 열트산 초원뿐만이 아닌 높은 창공까지도 날고 있었다. 방금 지나온 톨 강도 작은 선으로 보였다. 푸른 초원을 내려다보며 바람이 부는 대로 우주 공간을 날아다녔다. 붕새가 되어. 내 존재 그대로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는 이 절대 자유, 이 기쁨. 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높은 창공을 날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땅의 것들이 작아 보였다. 큰 것과 작은 것이 구별됐다. 장자 <소요유>의 구절이 생각났다.

진정한 자유인은 자기에 얽매이지 않고(無己) 공적에 무관하고(無功)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無名).

작은 것이란 '자기에 집착하고 공적과 명예를 탐내는 것'이다. 바로 욕심의 정체들이다. 열트산 초원이라는 원대한 자연 앞에서 작은 것을 쥐고 있었던 나의 지난날이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작은 것들이 아닌 좀 더 커다란 목표를 향하여 가야 하리라.

하산할 때는 낙하산을 타고 하강하는 기분이었다. 붕새처럼 자기 초월의 용기를 가슴에 안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 열트산 트레킹은 몽골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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