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을 주는 당신 /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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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란에 내 이름 석 자가 선명하다. 겉봉투에서 보낸 이가 부산지방법원인 것을 봤을 때부터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제 가슴을 찢어버릴 기세로 요동친다. 몇십만 원의 원금은 그들의 계산법으로 도두쳐 칠백만 원 가까이 불어나 있다. 엄마가 빌린 돈을 대신 갚느라 이십여 년을 시달렸다. 돌아가셨을 때는 드디어 빚 독촉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잠시 후련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등기 봉투를 보면 몸에서 피가 싹 빠져나간 듯 한기가 든다.

 

어린 시절 엄마 바지 자락을 잡고 대청마루를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드디어 문이 열리고 주인댁이 나왔다. 엄마가 주인댁이 내미는 몇만 원을 황송해하며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나는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을 나이라 가끔 주인집 아들과 소꿉놀이 할 때가 있었다. 이 아이와 결혼하면 저 집에 들어앉아서 마음껏 엄마에게 돈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질경이를 찧고 모래로 지은 밥으로 차려낸 소반을 나보다 한 살 어린 그 아이에게 나긋하니 받쳤다. 나는 이성보다 물질에 먼저 눈을 떴다.

일찍 셈을 깨친 나와 달리 엄마는 경제관념이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 가년스런 살림의 이유에는 저축이라곤 모르는 그녀의 지분이 절반 이상이었다. 어린 나를 경로당에 맡기고 논밭이나 과수원으로 품삯 받는 일을 다녔다. 고무장갑 만드는 공장을 다녔고 브로꾸 공장에서, 양계장이나 소 목장에서 일해주며 살기도 했다.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고 논에서 논우렁을 잡아 내다 팔았다. 밤낮없이 벌어도 철저히 가난했다. 누군가 빈틈없는 계획으로 이 집안에 부귀영화란 들어올 수 없다며 작은 틈새까지 눈땜한 듯했다.

어떤 날은 우리 세 식구가 나흘을 물 만 마셨다. 손가락을 빨며 쫄쫄 굶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돈을 빌리러 다녔다. 나를 앞세운 것은 몇 번의 경험으로 터득한 전략이었으리라. 앙상한 여자아이가 새카만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어미와 함께 오매불망 푼돈을 꾸러 왔다는 생각을 하면 단돈 만 원이라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앞에 살 때는 분식을 팔았다. 컴컴할 때 일어나 어묵을 꼬치에 끼우고 김밥 마는 엄마를 도왔다. 돈통 관리가 야물지 못한 탓인지 보증금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가게를 잃고 리어카에서 붕어빵을 팔기도 했지만, 어느 날 리어카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은 시골 구판장을 넘겨받았다. 살림집이 딸린 데다 월세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거저 주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의심할 줄 모르고 바투 잡았다. 소금 종지를 놓고 막걸리만 마시는 주민을 상대로 돈을 벌 리 만무했다. 채운 물건은 먼지만 쌓여가고 가끔은 우리가 먹었다. 한 것도 없이 약간의 빚을 지고 동네를 떠났다.

엄마는 조금 더 주민이 많은 동네로, 조금 더 읍내에 가까운 동네로 옮겨가며 가게를 열었다. 옮길 때마다 빚은 늘어났다.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아무나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던 때가 오자 돌려막기라는 용어를 몰라도 알아서 잘 돌려막으며 몇 년을 더 굴렸다. 사채가 법의 규제망 안으로 체급을 줄여 티브이 광고를 내보냈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빌린 돈으로 빚 일부를 갚았지만, 독촉 전화를 며칠 미루는 정도였다. 그런 처지에 남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는데 돌려받은 적은 없었다.

좋게 말해 사람 잘 믿고 순진해서 잘 속는 엄마를 나는 결혼과 육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버려 뒀다. 육백만 원짜리 다단계 옥장판을 깔고 누워서 지인에게 속은 줄도 모르고 웃던 당신을 알면서 모르는 체했다. 검은 양복 입은 사내들이 가게로 들이닥치기도 했다. 평일 대낮에 욕설 없이 한 시간 정도 달구치고 간 그들은 합법적이었지만 그 후 서랍에서 찾아낸 온갖 서류들은 불합리하고 온당치 않았다. 엄마가 무책임하게 쳐놓은 사고들이 전부 내 책임으로 돌아왔다.

할부로 갚을 수 있는 것은 할부로 그렇지 않은 것은 적금을 깨고 퇴직금을 정산해 갚았다. 빚을 갚는 중에도 엄마는 내가 모르는 빚을 계속 지었다. 두더지 게임 같았다. 약 올리듯 불시에 무시로 서류가 날아왔다. 지인이나 친척들에게조차 신용을 잃은 지 오래였다. 엄마가 신용불량자가 된 날 나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더 이상 이 여자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엄마는 이제 하늘 어딘가로 구멍가게를 차려 떠났다. 사망신고를 하면서 신청한 금융거래내역 조회에서도 나오지 않던 채무가 뒤늦게 날아온 것이다.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정승인신청을 하고 신문에 공고를 냈다.

백중날, 귀신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노는 날이라고 시어머니가 아버님께 용돈을 드리러 간다기에 따라나섰다. 엄마는 내가 안 가도 용돈 많이 받은 다른 귀신한테 빌려서 잘 먹고 잘 놀테지만, 죽어서까지 빚지게 할 수는 없으니까 간다. 이런 것을 다 떠나서 나는 생각한다. 비 오는 날, 돈 빌리러 간 집 처마 밑에서 튄 낙숫물에 바지 밑단이 젖어가던 저물녘, 내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손이 참 따뜻했다. 비에 머리와 얼굴이 젖었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비와 다른 점성으로 당신의 볼을 적시며 천천히 흐르던 그것을.

성인이 되고부터 줄기차게 엄마에게 날돈을 뜯기며 살았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나를 키워내려고 세상 여기저기서 푼돈을 빌려야 했던 당신을 이해하는데 생에서 사로 건너는 사건이 필요했을까. 빈곤의 지붕 아래서 도망가지 않고 끈질기게 내 손을 잡고 다닌 당신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도 그 사랑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받은 것에 비하면 나는 아직 갚을 게 많다. 그걸 엄마도 알아서 이렇게 한 번씩 등기를 띄워 장난친다. 엄마 살아계실 때 잠깐 고마워하고 오래 원망했었다. 돌아가시고는 도무지 미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간절한 소원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엄마를 부른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별을, 별이 안되면 별빛이라도 빌려서 가져다줄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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