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찾아 / 반숙자 

 

모래벌판을 달리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폐뿐인 땅을 예닐곱 시간 달리다 보면, 나를 들여다보다 지친 끝에 낯선 사람에게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은 목마름을 느낀다. 이 사막은 캘리포니아 주 남부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쪽에서 콜로라도 하곡으로 뻗어 있는 모하비 사막이다. 하루를 달려 도시를 만나 쉬고 또 하루 달려 숲을 만났다.

역사가 숨 쉬는 도시나 문화 예술이 꽃 피는 유럽을 마다하고 사막을 통과하는 여행지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다. 더 깊이 들어가면 고독하고 싶었다. 철저하게 혼자 하는 내적 여행을 통하여 비대해진 생활의 누더기를 벗고 타성에 젖은 의식을 깨우려 했다.

10여 년 전에도 이 사막을 통과한 일이 있다. 그때는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닿는 여정이었고 문인들과 동행이어서 편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반대의 여정이며 계절도 여름이 아닌 늦가을이다. 또한 동행들도 모르는 사람들로 미니버스에 운명을 실었다.

진정한 여행은 혼자 떠날 때 의미가 깊다고 하던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새롭지 않은 자신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여행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명징하게 살아나는 의식의 체험이다.

셋째 날은 요세미티 야성의 품에서 쉬었다. 그리고 다시 떠난 길, 광활한 벌판은 훈련되지 않은 야수처럼 위험과 안식을 동시에 제공했다. 처음에는 들떴던 사람들이 광야에 흡수되었는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이 어떤 목적 없이 말하지 않고 지내기는 어렵다고 하는데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은 지혜를 체감으로 터득하는 모양이다. 잠잠하다. 눈빛이 깊어지고 있다. 가족이 함께 온 사람들도 모든 대화가 끝난 듯 상념에 빠져든다.

거기가 어디쯤인가. 힘들게 달리던 차가 멈춘 곳에는 하루 종일 지지 않을 것처럼 이글거리던 태양이 지평선에 걸렸다. 차에서 내려 흥건하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숨소리조차 멎은 듯한 사막의 고요가 영혼의 심연으로 스며들었다. ​

시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 안에 한 마리 미물이 되어 욕망도 회한도 없는 충만한 현존에 전율했다. 우리의 한 생애 이런 순간이 몇 번이나 있을까. 먼 옛날 교부들이 사막을 찾아 수도한 이유도 황폐한 사막만이 줄 수 있는 충일과 안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막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 온몸으로 아늑한 평화를 느낀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옆에 사람들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고 싶다.

해 저무는 사막에 어른 키만 한 가시 옷 선인장이 서 있다. 해가 저물면 기온은 급강하한다. 나그네는 길 잃을까 갈 길 재촉하고 동물들은 하룻밤 쉴 곳을 찾아든다. 그때 선인장은 가시 옷 속에 감추어둔 가슴을 연다. 그 가슴은 깊고 포근해서 산토끼나 전갈 따위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어 준다.

사막에도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 줄이야. 생명 가진 미물들이 자슈아를 찾아드는 밤, 모래밭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었다. 추운 사막의 밤, 별 이불을 덮고 영혼의 집을 찾아가면 어디로인가 실종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알랴.

우리는 서로가 자슈아가 되어 콜로라도 강변의 라플린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제 일행들은 타인이 아니라 가족 같은 유대감이 생겼다. 사막을 건너온 때문임을 안다. 음료수를 나누고 밤 깊도록 호텔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삶을 이야기했고 신앙을 고백했으며 문학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런 유대감은 특별한 사건과 만난 뒤에 더 강해진 것 같다. 모래 언덕을 지나 바위산을 넘어 염전을 스쳐가는 곳에서였다. 바로 우리 앞에 승용차가 달리고 있었다. 사람 하나 구경하지 못하는 거대한 사막에서 지나가는 차만 보아도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움은 잠시, 승용차의 트렁크 밖으로 사람 발이 한짝 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닫힌 트렁크에 치인 마르고 힘없는 발은 검지도 희지도 않은 황색 피부, 도무지 알 길 없는 발 하나의 실체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누구나 총기를 지닐 수 있는 나라, 수틀리면 총을 쏘고 아무 데나 시체를 버려도 살과 뼈가 이내 풍화되어 먼지로 사라져버리는 사막의 횡포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제 우리는 침묵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기, 인정하기, 그리고 누구도 판단하지 않기를 자신에게 다짐하노라면 시끄럽던 사람의 눈길도 부드러워져 있음을 느낀다. 사막은 이래서 지혜의 샘이라고 하는 것일까. ​

사람의 생애에도 사막은 있다. 신산한 여정을 거쳐 온 이들의 가슴이 넓고 따뜻한 것은 혼자 헤매며 터득한 침묵의 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레째 달리는 사막의 복판,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가도 가도 어둠뿐이다. 다시는 사람 사는 동네를 못 볼 것 같은 위기의식이 스물다섯 사람 생명의 본능을 떨게 했다. 이 벌판에서 버스가 펑크라도 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니 이 사막에서 낯에 본 것 같은 불상사가 생긴다면​…. 저절로 두 손이 가슴으로 모아졌다.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둔 순간보다 더 순수해지는 때가 있을까. 한없이 무능하고 불완전한 나,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 일생이 부질없음을, 영원한 것은 오직 한 분뿐임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 찾아온 신탁神託, 그리고 자유로움, 그것은 죽음도 두렵지 않는 평화였고 그토록 원했던 벌거벗음이었다. 그때 멀리서 참으로 멀리서 불빛 하나가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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