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 / 김상립 

간혹 만나는 지인들 중에는 “당신 아직도 글 쓰고 있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웃고 만다. 아마 그들의 입장에서는 80세를 넘긴 내가 별 소득도 없을 것 같은 글쓰기에 계속 매달려있으니 궁금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내 자신도 그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했으니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수필을 통하여 특별한 명예를 얻거나 달리 돈을 번 일도 없다. 그래도 시간만 나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 나도 놀란다.

그러나 나에게는 글 쓰는 일이 이미 내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굳어져 습관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길을 걷거나 얘기를 하던 중에도 써야 할 글귀가 생각나면 메모를 하거나 책상 앞에 앉고 만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 올해에는 마치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쓰기 위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난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글을 쓸 수 있고, 써진 글을 읽으며 내가 생존해 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힘든 날을 잘 견디어 왔다. 

지금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생각의 덩어리에서 한 올 한 올 찾아내어 엉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풀어가며 글로 쓴다. 한 인간이 걸어왔던 삶의 여정 속에서 나름으로 경험하고 느낀 것들 중에서 수필로나마 후학들에게 남겨 두는 게 좋겠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 쓰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런 행위가 먼 훗날로 이어져 내려갈 인류문화 형성에 아주 작은 흔적으로나마 보탬이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를 감히 생각하며 힘을 내어 본다.

오늘도 나는 컴퓨터 자판기 대신에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원고지에 정성껏 글을 쓴다. 아무리 디지털 기계가 판을 쳐도 끝까지 아날로그적 심사로 글을 쓰고 싶은 까닭이다. 덕분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 첫 마디가 굽어져 뱀 대가리처럼 보기가 싫어졌지만, 수필이 준 선물로 생각하고 멋쩍게 견디고 있다. 때로는 내가 현대를 살아내야 하는 마지막 구세대 같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입장이 된 내게 부여된 소임은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글을 쓰게 되니 위안이 된다. 다만, 글을 쓰는 내 정신세계만이라도 르네상스시대에 분연히 일어나 사람의 가치를 다시 찾기 위해 애썼던 문인들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 않으려 늘 긴장한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지나갈 수 있는 인생 역(驛)이 몇 개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보다 많은 것을 살피고 느끼며 지나치려 애써야겠다. 애당초 수필문학도 험난한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종점으로 가는 그런 결과물일 터이다. 내 비록 첨단지식은 미흡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때로는 연민으로 아파하며 그렇게 써나갈 참이다. 글을 창(窓)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면 인생도 더욱 아름다워질성싶다. 결국 문학이란 것도 내 가슴에 사랑을 담아 자연과 인생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아니더냐?

수필은 내 인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삶의 품격을 지켜준 소중한 존재이다. 그것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향처럼 늘 아프고, 그립고, 안타깝고, 더러는 가슴 설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힘만 있어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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