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 민명자
토요일 오후, 지하철역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지하철 예술 무대다.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흰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매트로 아티스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 나는 군데군데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낮은 무대 뒤쪽 벽엔 숲 속의 자작나무들이 배경그림으로 병풍처럼 둘려져 있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올 것만 같다. 한 곡이 끝나던 참이다. 다시 노래가 시작되었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둘러봐도 소용없었지/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 가객 김광석의 노래다. 발장단을 맞추는 아주머니,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감상하는 노인, 표정이 각양각색이다. 노랫말에 가슴이 콱 막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부초 같은 인생. 어디로 가야하나, 어떻게 가야하나. 조금 전, 횡단보도를 건너며 내가 있는 쪽을 자꾸 돌아보던 아이, 외손녀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외손녀가 오전에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 댁에 가도 되냐고. 그럼, 되고말고.
아이가 왔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꽤 크고 무거운 배낭을 지고 왔다. 기색이 왠지 예사롭지 않았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이가 말했다.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내심 가출이란 단어를 염두에 두었던 듯, 배낭에 챙겨온 옷가지와 일용품엔 일탈에 대한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제 부모와 입시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고3 막바지, 대입 원서를 쓸 시기는 닥치고 성적은 뜻대로 오르지 않으니 출구 없는 시간들 속에 숨이 막바지에 찬 듯했다. 제 부모 입장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일 게다.
아이는 제 심정을 털어놓으면서 연신 울컥울컥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저녁 땐 학원엘 가야하고, 보강을 안 하면 제적당하는데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며 걱정을 했다. 내일은 일요일인데도 오전과 오후에 학원 스케줄이 차있단다. 그래, 가지 마라, 대학이고 뭐고 다 관두고 푹 쉬어, 까짓 대학이 인생의 전부겠니?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조금씩 이야길 풀어나갔다. 네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여기로 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어쩌니. 엄마 아빠랑 의논해서 원서도 써야 하고, 제일 중요한 시긴데 지금까지 노력한 게 아깝지 않니? 그동안 잘 견뎠는데 조금만 더 참으면 안 될까? 할머니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해. 할머니랑 학원에 같이 갈까? 나는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다행히 다소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리고 순순히 학원 길엘 따라 나섰다.
이른바 대치동 학원가. 말로만 듣던 곳이다. 내가 사는 마포에서부터 그곳까지는 꽤 멀다. 도착해서보니 학원으로 가는 도로엔 배낭을 멘 아이들이 물결처럼 밀려다닌다. 차도엔 아이들을 내려주거나 태우는 엄마들이 또 하나의 물결을 이룬다. 여기가 우리나라 맞나? 해외토픽에서도 화제가 되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연휴에는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연휴특강을 들으려 대거 상경을 한단다. 예전엔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학원으로 내몰리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 소리가 되어버리고 ‘조부모 재력, 아버지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 장래를 좌우한다는 말이 우스개 아닌 우스개로 나돌 정도다.
한창 창창하게 꿈을 키우며 자라야 할 중고등학생들이 중고품처럼 길들여지고 일등만이 존재가치가 있는 세상을 살아야하니 어쩌나. 고3 성적이 대학을 결정하고 그 간판이 평생자격증 노릇을 하고 그것은 종종 인격으로까지 규정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대학입학은 끝이 아니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은 옛말이고 첩첩산중 취업절벽 앞에서 길 찾는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자본주의 무한경쟁사회에서 필연적인 생존법칙이라고 치부한다면 별다른 방도가 없다. 전장의 무사처럼 불굴의 투지로 버티면서 강자로 살아남든지, 아니면 그저 루저로 살아가는 수밖에. 초등학생들마저 자신의 장래 꿈을 ‘정규직‘이라고 말한다는 사회에선 희망은 먹빛이다.
나는 먼발치에서 아이가 학원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돌아섰다. 적대적 공생공간에 아이를 밀어 넣은 거다. 공부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나와, 할머니가 아현역으로 마중 나갈게 문자 줘, 라는 말을 보태면서. 최선이란 때로 최악이 될 수도 있음을 실감하면서.
산소가 희박한 수족관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물고기를 집어넣고 ‘살아라, 살아라.’ 하는 것, 사각의 정글 안에 여린 인자를 지닌 생명을 밀어 넣고 ‘이겨라, 이겨라.’ 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이는 오늘 저녁,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우리 집으로 올 거다. 하룻밤이라도 편히 쉬고 갈 수 있으려나.
매트로 아티스트의 노래도 끝이 났다. 지하철을 탔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꽤 한산하다. 일반석은 젊은이들 자리로 남겨두고 경로석에 앉는다. 내 왼쪽 옆에 앉은 노인이 어깨에 둘러멘 작은 가방에서 전표를 꺼내 차곡차곡 정리하더니 천 원짜리 지폐를 가지런히 모아서 한 장 한 장 센다. 지하철택배 일을 하는 분인 듯하다. 오른쪽 옆에 앉은 노인은 술에 취해 졸면서 내게 자주 몸을 기댄다. 나는 노래 한 곡을 떠올린다.
“곱고 희던 두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김광석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 옆의 노인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긴 생의 주름이 그들의 손등에 고단하게 겹쳐있다.
지상으로 빠져나온 지하철이 한강을 건넌다. 마주보이는 창밖으로 시퍼런 강물이 흐르고 하늘엔 잿빛 구름들이 뭉텅뭉텅 너울너울 뭉쳤다가 흩어지면서 제 자리를 찾는다. 그 구름 갈피에서 석양이 붉은 숨결을 토해내며 숨바꼭질을 한다. 우리는 지금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가.
철교를 지난 지하철이 정류장에 멈췄다. 영감님 한 분이 타더니 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손에 비닐봉지를 들었다. 검은 비닐에 뿌리가 묶인 관엽식물이 큰 이파리 댓 개를 달고 봉지 안에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곁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이파리를 만져보며 조화냐고 말을 건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스스럼이 없다. 영감님이 답한다. 누가 아파트에 버린 걸 주워서 키웠더니 뿌리를 내려 아들네 집에 갖다 주러 가는 길이란다. 뿌리를 내리게 한 손길도, 다시 일어선 생명도 아름답다.
우리 아이도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저렇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 지하철 예술무대에서 들은 노래의 후렴 구절이 다시 귓가를 맴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그래, 우리 다시 한 번 걸어보는 거야. 그 길이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나 뙤약볕 내리쬐는 모래사막일지라도 쓰러지지 말고. 아이야, 너는 혼자가 아니니 힘을 내렴. 우리 다시 함께 기운을 차려보는 거야.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아이들이여, 삶에 지친 군상들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