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연금술 / 서은영

 

"내가 손을 잡았어? 그거 내 술버릇이야."

이미 그에게 손뿐 아니라 마음조차 잡힌 후였는데, 그는 웃으며 의미 두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의 손가락은 유난히 길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머지 중지, 약지, 소지는 삼발이 다리가 되어 초록색 당구대 위에서 뻗을 때는 살색 타이즈를 신은 발레리노 다리 같았다. 붉은 공과 흰 공이 연신 삼각형을 그리며 도는 당구대 위에서 뻗었다 접었다 하는 그의 손가락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동물의 앞발이 몇 천만 년을 진화해야 저렇게 아름다운 손가락이 될까?' 그의 손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날마다 나의 손은 호주머니 속에 단단히 감추어져 있었다.

 

나의 손가락 마디는 굵고 주름투성이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엄마는 '반찬값'이라며 갖가지 부업을 했다. 큰딸인 나는 '살림밑천'이라는 이름으로 그 일을 놀이 삼아 거들었다. 또래들이 어린이용 가위로 종이를 오려 인형놀이를 할 때, 나는 무쇠 가위로 면장갑의 시접을 잘랐다. 엄마가 가위 손잡이에 천을 두껍게 감아 주워도 작은 내 손엔 엿장수 가위처럼 헐거웠다. 서툰 가위질이 손에 익을수록 내 손마디에 콩알만 한 굳은살도 넓어졌다. 나이테라는 것이 나무 밑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손마디에도 작은 나이테 주름들이 둥글게 접혔다. 이런 내 손을 그의 손이 잡았다. 그 순간 그가 날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굳이 말로 물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있지 않고선 그렇게 고운 손이 미운 손을 잡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술버릇이란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잡힌 순간부터 내내 행복하던 손이 부끄러웠다. 얼른 뒤로 감추고 두 손을 번갈아 세게 움켜쥐었다. 그의 부정이 아무래도 손 탓인 것 같았다. 그랬던 우리가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손을 잡았으니 책임져라 생떼를 썼는지, 아무리 술기운이라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데 덥석 손잡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감언이설로 설득했었는지….

 

그 후 두 해가 지난 97년 이른 봄날, 왕자님 손과 할미손이 서로 맞잡고 결혼식을 올렸다. “너의 손에 찬물 한 방물 안 묻힐게.” 라는 그 흔한 약속 하나 받지 않고서. 오히려 섬섬옥수 그의 손에 찬물을 묻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원 강의를 계속하며 맞벌이를 했다. 늦은 퇴근을 할 때마다 그가 버스정류소에서 기다렸다. 하루 종일 분필가루에 까칠해진 손이지만 그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할 때면 너무 행복했다.

 

마냥 곱디고울 줄만 알았던 그의 손이 백수가 되었다. IMF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줄줄이 도산하는 시절이라 있는 사람도 줄이는 판국에 구인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이력서를 들고 이리저리 다녀도 책상에 앉아 펜대만 굴리는 직장은 다시 찾기 어려웠다. 겨우 취직을 한 곳은 소방업체였다. 양복 입고 영업을 하는 일이었으나 안전모를 쓰고 건설 중인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를 설치도 해야 했다. 각가지 색의 배선을 자르고 연결하며 나사를 죄었다. 현장 일을 한 날이면 서툰 연장 질에 손이 베이거나, 찍히는 경우가 많았다. 상처가 낫기도 전에 다른 상처를 만들었다. 아무리 남자이지만 삼형제 막내라 고명딸처럼 자란 그에게는 벽돌만 나르지 않았지 막노동이나 매한가지였다.

 

막일이 손만 거칠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거칠게 만들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것에 화를 냈다. 미처 못 본 그의 날카로움에 놀랐다. 더 큰 문제는 점점 속으로 작아지는 것이었다. 차츰 친구들과 만남은 물론 친정 방문을 꺼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내 신조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이 어떻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 주는 일을 자랑까지는 아니지만 숨어 지낼 필요는 없지 않으냐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넌, 콘크리트 아파트 골조 건물에 철조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시멘트 가루 날리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이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아차 싶었다. 그의 자존심으로는 버티기 힘든 상황 속에서 가장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던 것이다. 더는 그의 어떤 행동에도 충고하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하는 그대로 이해했다. 일에도 관성이 있는지 열심히 할수록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의 손에도 굳은살이 넓어지며 우리 저축금도 조금씩 높아졌다. IMF로 학원 강사를 줄여 갔지만 나는 끝까지 남도록 더 열심히 가르쳤다. 막내라 품 안의 어린 자식으로 보았던 시부모님은 거친 일도 묵묵히 하는 아들을 대견해했고 휴일에도 보충하러 가는 며느리를 안쓰럽게 여기셨다. 드디어, 시댁에 얹혀 산지 2년 만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세상사람 대부분 제 손으로 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간다. 가늘고 곱던 그의 손도 제 가족 밥벌이를 위하여 굵고 거칠어졌다. 이제는 그 손을 잡아도 부드럽지도 가슴이 뛰지도 않는다. 마치 나의 왼손이 나의 오른손을 잡은 듯 밋밋하다. 손바닥의 전율은 무디어지지만 부부의 정은 더 깊어진다고 믿는다. 손바닥이 거칠어질수록 삶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믿음직한 그의 손, 보송보송한 아들 딸 손, 많이 예뻐진 나의 손은 깍지를 끼고 앞뒤로 흔들며 오늘도 행복하게 행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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