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심자 / 김서령
봄이 온다. 봄은 땅에서 뭔가 맹렬히 돋아나는 계절이지만 반대로 땅이 입을 벌려 씨앗을 맹렬히 삼키는 계절이다. 나무라면 꼬챙이만 꽂아둬도 물이 오르고 씨앗이라면 땅바닥에 굴러떨어지기만 해도 싹이 돋는다. 우주가 약동한다. 모든 길짐승, 날짐승의 피톨과 핏줄들이 바쁘게 요동친다. 땅에 뭔가를 심지 않으면 안 된다. 봄에 땅에 씨앗을 묻어본 사람은 그 짓을 안 하는 봄을 견딜 수 없어진다. 한 톨 씨앗이 싹을 틔워 꽃이 피고 한들거리다 수백 배의 알곡으로 여무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가을이 무슨 소용 있으랴. 봄에 씨앗을 묻는 이의 일 년은 암만 빨리 흘러도 허망하지 않다. 진작 내 인생의 봄날에 깨우쳤어야 할 진리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알고 나면 너무 늦다.
대신 봄이 오면 나는 회한을 곱씹으며 땅을 파고, 은유가 아닌 글자 그대로의 씨앗을 굴려 넣는다. 그럴 때 가장 재미나는 씨앗이 콩이다. 꼬챙이로 구멍이나 숭숭 뚫고 두어 알 굴려 넣기만 해도 콩은 자란다. 일 년 내 거름 한번 주지 않아도 가을이면 수십 개의 콩 코투리가 볕살 아래 하얗게 제 배를 뒤집어 보인다. 콩은 우리 곡식이다. 밀이 유럽의 풍토에 알맞고 벼가 동남아시아의 작물이라면 한반도는 단연 콩의 땅이다. 간장과 된장과 콩나물과 두부, 그것 없이 우리가 숱한 기근과 전쟁을 어찌 견뎠으랴. 흔한 알곡이니 콩을 두고 유난히 궁리가 많았으리라. 싹틔워 먹고 갈아먹고 띄워 먹고 우려먹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냈으리라.
이 땅 어디서나 콩은 자랐다. 마당 귀퉁이 거름더미 곁에 어쩌다 저절로 튕겨져 자라던 쥐눈이콩, 배나무나 감나무를 감고 올라가던 양대 넝쿨, 울타리를 타고 오르던 강낭콩, 못자리를 하고 난후 심심파적으로 찔러 넣어뒀던 논두렁 밭두렁 콩, 뿌리 내릴 땅을 만나기만 하면 콩은 싹이 난다. 제 자리를 어엿이 잡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까다롭지 않아서다. 박토에 뿌리내려 제가 가진 덕성을 나눠주기 위함이다.
어릴 적 우리 고방엔 콩가루 바가지란 게 있었다. 추수한 콩을 가루 내어 빻은 날콩가루를 담아둔 바가지였다. 요즘 부엌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어디나 쓰냐고? 다용도였다. 우선 국 끓일 때 썼다. 무우도 배추도 일단 콩가루 바가지에 한번 넣었다가 빼서 국을 끓였다. 말린 시래기는 물론이고 봄에 돋는 냉이나 쑥도 콩가루에 굴렸다가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콩가루가 들어가면 국 맛은 순하고 선해졌다. 거친 시레기도 약 오른 들풀들도 자극적으로 제 주장을 내세우기를 삼갔다. (물론 콩가루 대신 콩을 띄워 만든 된장을 풀기도 했다.)
두 번째는 국수를 만들 때 썼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얼추 반반씩 넣어 치댄다. 국수 빛깔은 희지 않고 노랬다. 밀은 빻으면 흰 속살이 나오지만 콩의 살빛은 연노랑이다. 내 입맛엔 지금도 누런빛이 도는 콩가루 국수가 훨씬 구수하고 달다.
세 번째는 콩장을 저을 때 썼다. 이것도 물론 일종의 국이긴 하다. 국 끓일 마땅한 야채가 없을 때 우리 엄마는 콩장을 저었다. 밥그릇 옆에 국그릇을 비워놓고 상을 차리는 건 아녀자의 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콩장은 끓는 물에 콩가루를 넣고 후루룩 끓여내는 건데 우리 집 말고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다. 콩가루 들어간 다른 음식처럼 편하고 구수했다. 콩장은 불 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거짓말처럼 솥 안의 내용물이 넘쳐버린다. “콩장 저을 때는 꼭 불 옆에 붙어 서 있그라. 정신을 딴데 팔면 냄비에 국이 흔적 없이 어데로 가버린다.”고 엄마는 날 가르쳤다. 물론 나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누가 콩장 같은 걸 저어 먹어? 그러나 엄마 돌아가신 후에 난 문득 아무 자극 없는, 니 맛도 내 맛도 없이 덤덤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같은 콩장을 그리워하게 됐다.
네 번째로 ‘콩가루 배땍이’란 것도 만들었다. 일종의 콩가루 수제비인데 콩가루를 빡빡하게 말아 떡국처럼 배딱배딱하게 썰어서 끓는 물에 담가 끓였다. 이건 몸살 기운이 있을 때 황급히 만드는 치료식이었다. '밭에서 난 쇠고기'를' 가루 낸 게 콩가루였으니 급히 아미노산을 보충할 필요가 생겼을 때 요긴하기도 했으리라. 이마에 열이 들떠, 약간 비릿한 내음 도는 콩가루 배땍이 대접을 앞에 둔 어린 내가 저기 있다.
엄마 돌아가신 후 시골집 걸음이 뜸해진다. 엄마 없는 집은 이미 집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고향이란, 집이란, 제 몸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통로였다. 가장 구체적인 통로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고향 집이 가진 구체성의 죽음이다.
땅이 어머니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건 씨앗을 심어봐야 확인된다. 다시 키우고 살려내는 어머니 땅. 살았을 때 우리 엄마는 평생 땅에다 뭘 묻어놓는 삶을 살았다. 나 자신도 엄마가 묻은 씨앗 중 하나였겠지만 추수가 실하지 못하니 민망할 뿐이다. 병을 얻어 몇해 봄을 서울서 보내야 했던 어머니는 씨 뿌리는 철을 놓쳐버리는 걸 병의 고통보다 더 괴로워했다. “콩 심어야 하는데. 고추씨 뿌려야 하는데 감자 싹을 놔야 하는데. 검정깨. 쪼매 심고 싶은데, 열무싹 돋는 게 얼마나 이쁜데. 애호박 한창 열릴 철인데….” 등등이 엄마 신음의 주된 내용이었다.
지난가을 엄마 없는 시골집 밭둑에서 오랜만에 콩 이삭을 주웠다. 튕겨져 나간 동그랗게 여문 콩알을 주워올리는 기쁨은 콩알처럼 옹글었다. 길에서 우연히 만 원짜리 지폐를 주워 들었을 때의 음험하던 가슴뜀과는 엄청 다른 종류였다. 흙덩이 사이로 시든 풀잎 위로 희게 구르는 콩알, 하나씩 주어 올릴 때마다 내 마음이 희한하게 소슬하고 겸허해졌다. 드넓은 하늘 아래 자신의 존재가 콩알처럼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옆에는 수곡할매가 엎드려 콩을 줍고 있었다. 현란한 몸빼바지를 입었건만 검정 당목 치마를 두른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수곡할매가 자꾸 뭐라고 웅얼거렸다. 다 빠진 흰머리에 여태도 자르지 못한 자그만 쪽, 굵고 깊은 주름, 콩밭 이랑에 엎드렸을 때 할매는 그대로 콩밭 안으로 녹아버렸다. 할매 곁으로 바짝 다가갔더니 비로소 소리가 들렸다. ‘니는 인제 어매 없어 어엘로? 예전부텀 콩 간 데가 어매 손 간 데라 캤데이. 어매 본 듯 마이 줍그라’ 음식에 콩이 들어가면 어머니 손이 거쳐 간 듯 편안하고 이롭게 변한다는 말이 옛부터 있었단다.
무식하다고 촌스럽다고 은근히 얕잡고 골리던 이런 할매들이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말 안에 내 컴퓨터에 담아놓은 수십 개의 파일 내용보다 더 큰 진실이 함축돼 있다. 책에서 배웠던 숱한 개념어와 추상어들이 실은 얼마나 헛다리 짚는 맹탕이었던가를 나는 수곡할매와 콩을 주우며 다시 깨닫는다.
우리 농촌이 아무리 피폐하다 해도 수십 년 이어진 농정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런 할매들이 살아있는 한 아직은 마을마다 두렁 콩이 자란다. 땅을 파다 보니 이들은 절로 땅을 사랑할 줄 알게 됐다. 그래서 논둑 한 뼘도 놀리지를 못한다. 두렁콩 자라는 걸 보면서 사람 사는 도리도 배웠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간이 지녀야 할 도덕률의 근본이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느니, 미래를 위해 오늘 노력하라느니, 정직이 최상의 재산이라느니 백가지로 파생될 삶의 경구들이 이 한마디에 요약돼 있다. 이토록 간명한 진리가 또 있을까.
남을 향해 돌을 던지려다가도 하늘이 본다 싶어 얼른 팔을 내리고 길가다 돌멩이를 차서 엄지발톱이 빠져나갈 듯 아프면 내가 무슨 벌 받을 짓을 했던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개밥을 한 끼 굶겨도 죄 많을라 두려워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은은하던 마음씨, 그건 바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치를 오래 들여다본 데서 저절로 생겨난 세계관이었다. 두렁콩이 드물어지고 남의 콩을 대량으로 사다 먹고 묵어 나는 논밭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점점 콩 심던 시절의 가치관을 잃어버리는 중이다. 온갖 종류의 이기적인 다툼들, 9시 뉴스의 어지럽고 기맥히는 사건들은 곡식을 땅에 묻고 거기서 싹이 돋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본 사람들이 드물어지는 데서 오는 현상 같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걸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콩 심은 데 팥 날 수도 있다는 요령과 속임수들이 득세하다 보니 질서의 바탕이 조금씩 무너지는 게 아닌가. ‘세월에 방울을 달아놔야 한다’고 말한 이는 소설가 이윤기이다. 처음엔 보잘것없는 쇠방울이라도 시간이 그걸 은방울로도, 금방울로도 만들어준다는 거다. 방울을 달아놓지 않고 보내는 인생은 허송세월이기 쉽다. 연못가에서 나무하다 도끼를 빠뜨린 나무꾼이 쇠도끼 대신 은도끼와 금도끼를 얻는 이야기는 그의 정직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제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골라 묵묵하고 꾸준하게 그 일에 매달린 인생이 마땅히 받아 안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산신령은 오랜 세월 나무꾼의 한결같은 도끼 소리를 연못 아래서 들어왔을 거다. 그랬기에 도끼를 들고 물 위로 쑥 올라올 수 있었던 거라고 나는 믿는다. 봄이다. 땅에 씨를 묻어야 할 계절이다. 당신 인생이 아직 봄에 가깝다면 무슨 씨앗을 묻을지를 고민하라. 되도록이면 콩을, 제 토양에 알맞은 놈을! 그래야 수확이 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