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정철

 

  나는 찾는다. 누군가 궁금할 때 찾는다. 누군가 그리울 때 찾는다. 찾는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쭈뼛쭈뼛 말로 하는 고백이 아니라 성큼성큼 말로 하는 적극적인 고백이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고향을 찾고 한 달에 한두 번 친구를 찾고 일주일에 한두 번 단골술집을 찾는다. 고백과 고백 사이 간격은 누구에게는 일주일이고 누구에게는 1년이다. 사랑하는 농도의 차이일 것이다. 그런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찾는 것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상대가 있다. 짙은 색 피부를 지닌 그의 이름은 커피다.


  나 혼자만 커피를 짝사랑하는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점심시간 빌딩은 사람을 토해낸다. 빌딩 몇 동에 저 많은 사람이 들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콸콸 토해낸다. 사람들은 빠르게 분리되어 식당으로 몸을 숨겼다가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 시간 전하곤 다른 모습이 포착된다. 손마다 커피다.


  그래, 그들은 커피 한 잔을 손에 넣으려고 줄을 서며 점심을 먹은 것이다. 그들 손에 들린 액체는 저 거만한 빌딩 입장을 허락하는 출입증 같기도 하도 오후에 찾아올 졸음을 때려잡을 신통한 약 같기도 하다. 신이 인간 손을 둘로 설계한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손 하나는 커피를 들라고. 남는 손 하나로 세상 모든 일을 하라고.


  왜 우리는 일상 한복판에 커피를 들여놓았을까. 왜 귀한 손 하나를 기꺼이 커피에게 줄까. 맛있어서? 멋있어서? 중독되어서?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니, 아니 혹시 외롭기 때문은 아닐까.


  도시에는 수많은 혼자가 산다.
  혼자 있어도 혼자. 누군가 곁에 있어도 혼자. 혼자들은 안다. 오늘도 외로움에 몇 대 얻어맞을 거라는 것을. 외로움을 치료하는 병원은 없다는 것을. 책도 영화도 드라마도 내 외로움은 듣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것을. 그래서 늘 혼자인 혼자들은 커피에 기댄다.


  커피는 언제든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외로움 치료제다. 세상에서 가장 차분한 자세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귀로 혼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제 이야기도 들어주고 오늘 이야기도 들어준다. 사랑 이야기도 들어주고 전쟁 이야기도 들어준다. 사랑이 전쟁이 되는 이야기도 다 들어준다. 내 곁에 내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주는 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웬만큼 치유된다. 이제 알겠다. 약국보다 커피숍이 더 많은 이유를.


  오늘도 나는 친구라는 익숙한 외로움 치료제를 포기하고 커피를 찾는다. 커피에게 사랑한다고 한 어제 한 고백을 또 한다. 친구가 쉽게 하는 말을 커피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는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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