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을 떠나 오슬로로 향하는 크루즈 안이다. 내일 아침이면 그토록 기대하던 뭉크 미술관을 돌아볼 계획에 마음이 설렌다. 짐을 정리해두고 면세점을 찾았다. 화장품 코너에서 크림 하나를 골라 들고 계산대로 갔는데 내 앞에서 한 할머니가 바퀴 달린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싣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끄러운 바닥 탓에 물건을 하나씩 계산대에 올릴 때마다 바구니가 자꾸만 다른 곳으로 미끄러져 굴러갔다. 할머니는 물건을 올리고, 도망가는 바구니를 끌어오기를 반복하셨다. 바로 앞에서 먼저 계산을 마친 젊은 여인은 제 물건만 챙긴 채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발을 뻗어 미끄러지는 바구니를 지탱해 주었지만 곁에 있던 젊은 여인은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할머니가 신용카드를 꺼내 계산을 마칠 때까지 먼산 쳐다보듯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여인의 곁에서 혼자 빙빙 돌던 일곱 살쯤 된 아이가 ‘와당탕’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나!” 비명을 질렀는데 정작 아이 엄마인 젊은 여자는 “괜찮아?” 한마디를 툭 던지는 게 전부였다. 아이는 멋쩍은 듯 스스로 일어섰고, 조금 전의 할머니 또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계산이 끝나고 할머니가 묵직한 물건 봉투를 집어 들자, 그제야 여인은 할머니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함께 걸어나갔다. 남남인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이 사실은 모녀 관계였고, 그 아이는 할머니의 손주였던 것이다.
문득 낮에 가이드가 들려주었던 북유럽의 자녀교육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광경은 결코 가족 간의 불화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생활문화였다. 이곳 사람들은 자녀가 14세가 되면 ‘컨퍼메이션(견진성사/성인식)’을 통해 스스로 종교를 결정하게 하고,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시킨다고 한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타투를 하든 밖에서 밤을 새고 들어오든, 부모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을 성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통과의례로, 결국은 스스로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단단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많은 가정에는 ‘반지하방’이 마련되어 있어,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에게 그 공간을 내어준다고 한다. 친구들과 밤새 들락거리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 자유의 정도가 깊어지면 아예 출입구까지 따로 만들어주어 부모의 동선과 분리하기도 한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간섭과 과보호 없이, 서로를 온전한 두 개의 인격체로 대하는 문화, 어린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기보다 스스로 털고 일어날 힘을 기르게 하고, 나이 든 어머니의 짐을 당연하게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영역과 자립심을 존중하는 문화. 내 시선에는 다소 차갑고 무심해 보였던 그들의 행동이, 실은 서로를 존엄한 개인으로 예우하는 방식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차가운 밤바다를 가르는 크루즈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품 안의 자식으로 기르며 늘 노심초사 간섭하고 붙잡아두려 했던 우리의 정서와, 홀로 서는 법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이들의 정서 사이의 거리를.
내일 마주할 뭉크의 화폭 속에서도, 어쩌면 이들이 지닌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인간 내면의 독립성이 묻어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북유럽의 깊은 밤 속으로 들어간다.
<성민희 수필 비평,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