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것

 댓글 2026-06-25 (목) 12:00:00 이리나 수필가
 
2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교수님 한 분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개강식에서 진동으로 해두라고 했던 휴대폰을 꺼냈다. 그 사이 전화와 카톡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뿔싸. 내 수업은 2교시가 아니라 1교시였다.

분명히 개강식에서 얼굴까지 비춘 선생이 첫날부터 나타나지 않으니, 학생들과 목사님이 선생을 찾아 돌아다니는 소동이 벌어졌다. 나의 반을 일부러 수강한 친구는 그동안 세 번이나 전화했다. 내가 땀 흘리며 스텝을 익히는 동안에.

두 번째 날,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몇 분이 와 계셨다. 사람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사정이 생겨 중간에 그만두신 분도 계셨지만, 끝까지 여섯 분이 남아주셨다. 감사하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지금껏 주로 나의 시선으로 사유한 글을 써왔다. 주제를 고르는 것도, 글의 흐름을 잡는 것도. 그런데 다른 사람과 글을 읽고 함께 합평하면서, 다양한 독자의 시선을 새삼 느꼈다. 글이란 결국 혼자 쓰지만,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삼촌뻘 되는 분은 글마다 꼭 한자를 섞어 쓰신다. 본인은 그게 자연스럽고 좋다고 하시는데, 읽는 우리는 잠시 옛날 한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결국 내가 다른 분들을 대신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한자 옆에 꼭 한글 토를 달아주시면 좋겠다고.

저마다의 이야기는 달랐다.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추억을 되살리시는 분,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을 글로 옮기며 위로를 받으시는 분, 그리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글 쓰는 재능을 발견하시는 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학기 말에는 ‘내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써서 우리끼리 조촐하게 졸업 발표회를 열었다. 그 작품들을 래미네이트 해서 교회 식당 벽에 붙여놓았더니, 지나가던 분들이 하나씩 멈춰 서서 읽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어깨가 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벽에 걸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다. 이번에 그것을 배웠다.


가을에는 더 많은 분이 함께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먼저 한 가지를 확인할 것이다.

내 수업이 1교시인지, 2교시인지.

<이리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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