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라플린(Laughlin)에서 만난 강
2026-07-09 (목) 12:00:00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
라플린(Laughlin)에 왔다. 이곳은 네바다주와 아리조나주가 서로 어깨를 맞댄 곳에 있다. 마치 네바다주가 손을 뻗어 잡아당긴 듯, 가까스로 그 땅의 끄트머리에 매달려 카지노 게임이 허락된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막의 흙먼지 속에서도 호텔들은 저마다 소박하게 불을 밝히며 나름의 품위를 지키고 있다.
화씨 110도의 뜨겁고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리조트가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뜻밖에도 강이다. 먼 길을 달려와 숨을 고르듯 깊고 푸른 물길을 펼쳐 놓고 있는 거대한 콜로라도강이다.
강을 중심으로 두 개의 마을이 마주 보고 섰다. 강 저편 아리조나주에는 몇 무리의 가족이 오순도순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즐긴다. 반면 이쪽 네바다주의 풍경은 전혀 딴판이다. 호텔 투숙객들이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상스키를 타고, 그 사이로 유람선 한 대가 느리게 지나간다. 선상 위의 관광객들은 손을 흔들며 왁자지껄한 웃음을 강물 위로 흩뿌린다. 나는 잠시 이곳이 사막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강에서 두세 걸음만 벗어나도 다시 사막이다. 그 두세 걸음의 간격이 꼭 우리 삶 같다. 사막의 바람을 가르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나는 우리의 삶을 생각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사막 같은 계절이 찾아온다. 발을 들일 때마다 푹푹 꺼지는 모래언덕 같은 일상, 내면에서 웅얼대는 공허, 건조한 바람 속에서 바짝 말라가는 감정. 뜨거운 사막이 강줄기 하나로 인해 휴양지가 되고 생명의 터전이 되듯, 우리 삶에도 저런 강 하나쯤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흐르는 강은 다르다. 어떤 이는 가족이고, 어떤 이는 신앙이다. 이름은 달라도 그것은 메마른 영혼을 적시며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도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시간이 있었다. 사막 같은 시간 속에서 나를 위로한 것은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었고, 한 줄의 문장을 써 내려가던 창작의 순간이었다. “내가 나의 천사가 되어 주면 된다.” 단 한 줄의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골짜기 어디선가 멈췄던 물결이 다시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했다.
콜로라도강은 거대한 바위산을 깎고 깊은 협곡을 지나 마침내 이곳 라플린에 이르렀다. 강물이 푸르고 깊은 것은 장애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바위와 굽이를 만나면서도 끝내 흐르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상실과 슬픔, 실패는 우리 안에 골짜기를 만들지만, 바로 그 깊이만큼 우리는 단단해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강이 흐른다고 해서 사막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뜨겁고 메마른 사막 가운데를 강은 묵묵히 흐른다. 그 묵묵함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새를 불러들이고, 사람들을 머물게 한다. 우리 삶의 결핍이나 고단함도 그렇다. 그것들이 완전히 소거되어야만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작은 물길 하나만 살아 있다면, 그곳에서 다시 꽃이 피어난다.
라플린의 뜨거운 폭염 속에서 콜로라도강을 바라본다.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다만 흐른다. 나도 그렇게 흐르기로 한다.
<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