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살으리랏다

유숙자

음악이 우리에게 불러 일으키는 감동과 영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악은 우리를 일상적 괘도에서 해방시켜주고 삭막해진 영혼을 치유하며 감수성을 회복시켜 준다. 음악을 들으며 행복했고, 연주를 관람하면서 감동의 눈물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반면 고통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을 때, 음악 속에 깊숙이 파묻혀 완전히 세상을 초탈한 상태에 있으므로

영혼이 맑게 씻겨 내린 듯 위안을 받은 적도 있다.

“모든 예술은 한결같이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고 쇼펜하워도 말했듯이, 음악은 온갖 예술 형태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음이 마땅한 것 같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릴 때부터였다. 부모님께서 음악을 즐겨 하셔서 집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음감이 발달해서인지 듣는 족족 멜로디가 외워졌다. 한 곡에 빠지기 시작하면 수십 번씩 거푸 듣기에 귀에 쉽게 익었다. 그 탓에 감수성이 예민해졌고, 음악을 들으면 즐거울 때가 많았지만 슬퍼지기도 하고 눈물도 났다.

베토벤이 내게 다가온 것이 그 무렵이었다. 14세 여중생은 YMCA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드나들며 고전 음악에 푹 빠져있었다. “밥은 굶어도 살 수 있지만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클래식 음악에 몰입해 있을 때 베토벤의 유일한 “바이올린협주곡” 작품 61(Beethoven : Concert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D major, Op. 61)은 첫사랑처럼,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고 깊이 몰입했다.

1악장 시작부터 선율이 아닌 팀파니가 은은하게 4번 둥둥둥둥 두드리는 독특한 리듬이다.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하면서 팀파니의 모티브가 나타나고 관현악에서 시작, 목관 악기에서 전체 연주로 교향곡처럼 전개해 간다. 

제 1 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제 2 악장 Larghetto, 제 3 악장 Rondo - Allegro.

 

예술인은 사사로운 감정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내 인생의 정점에서 만난 향기로운 영혼과 꿈꾸던 아델라이데의 언덕을 올라 보지도 못한 채, 나의 또 다른 나는 해 질 녘 저녁연기 처럼 그렇게 스러져 갔다. 상실의 아픔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즈음, 갑작스러운 선친의 소천은 나로 하여금 발레를 영영  놓게 만들었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 안타깝게 깃을 떨고 있는 빈사의 백조.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 2 악장은 고요를 향해 침잠하듯, 그렇게 지치고 힘든 나에게 내밀하게 손 내밀며 다독여 주었다.

베토벤이 이 협주곡을 쓴 시대는 그의 일생 중에서 가장 창작력이 왕성하여 예술적 작품이 수없이 만들어졌던 행복한 시절이다. 또한 불멸의 연인 테레제와 교제하던 시기였다. 바이올린의 서정성과 교향곡의 웅장함이 결합된 클래식 음악사에 걸작 중 하나인 이 명곡이, 세상을 잃고 비틀거리는 가녀린 영혼을, 종교적 경건함과 장중함의 흐름 속으로 이끌어 위로와 위안으로 안정감을 주며 회생시켰다.  

 

베토벤의 “장엄미사”(Missa Solemnis in D major, Op. 123)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시미라고도 하는 미사의 한 형식인 장엄미사를 처음 관람한 것은 독일 드레스덴 프라우엔키르헤 콘서트였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악 감독인 파비오 루이지의 지휘 아래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 합창단과 솔리스트들이 전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이 곡은 베토벤이 최악의 환경 속에서 많은 진통을 겪으며 태어났다. 베토벤의 신앙은 어떤 특정한 교파와 무관했으나 장엄미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유일한 분이신 전능자에 대한 외경과 기도와 절규가 영혼 깊숙이 독백으로 토로하고 있었던 탓이다.

장엄미사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감상자들에게까지 종교적 감정을 일깨움은 물론, 영원한 믿음을 심어주려 했다는 베토벤의 고백으로도 자신 속에 깊은 종교적 감정이 잠재해 있었음에 연유되었다. 이 공연을 눈물 흘리며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작곡가의 음악이 나의 영혼 속에 있는 근원적 종교 감정을 일깨웠던 탓이다.

그것은 전능자에게 감사하는 눈물이며 예술적 감동의 극치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흐름이다. 완전히 세상을 초탈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위대한 작품 장엄미사는 세상에서 얻은 많은 것보다 그 이상을 신에게서 찾고 싶은 마음, 전능자에게 의존한 사람만이 누리는 평안함이 베토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충만케 해준 탓이리라.               

 

나의 일상 생활 루틴 중 하나는 시작과 마무리가 음악이다. 아침 음악은 주로 그리그의 페르 귄트 제 1 모음곡, 제 1곡의 “아침 기분”(Grieg : Peer Gynt Suite Op.46 Morning Mood)으로 시작한다. 조용한 새벽 모로코 해안의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곡으로 플루트와 오보에가 주고받는 아르페지오의 선율이 아름다운 곡이다. 들으면서 차츰 이미지가 떠오르고 기분이 상승한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작품 136의제 1 악장(Mozart : Divertimento in D, K 136-1)도 아침 음악이다.

16세의 모차르트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잘츠부르크에서 작곡한 곡으로 일명 잘츠부르크 교향곡 이라고도 한다.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싱그럽고 경쾌한 멜로디로, 우아한 이탈리아풍의 선율이다. 우울한 아침이라도 그 기분을 한 방에 날려 주는 유쾌한 음악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오래전 라디오 시절, 한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침의 서곡’ 시그널뮤직이었던 탓에 그 시절 많은 사람의 귀에 익숙한 곡일 것이다. 

 

늦은 밤 하루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중에서 “야상곡”(Mendelssohn : A Midsummer Night’s Dream Op.21, 61-Notturno)을 듣는다. 이 야상곡은 제  3 막과 제 4 막 사이에 연주되는

간주곡으로 마법의 숲에서 잠든 연인들의 평화로움과 몽환적인 밤의 정취를 표현하였기에 신비롭고 차분하다. 호른과 바순의 서정적인 듀엣에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앙상블이 가미해져 멘델스존 특유의 따뜻하고 우아한 관현악 법이 더해진다. 깊은 밤 숲속의 고요함과 낭만을 잘 묘사한 곡이어서 들을 때마다 정서적 안정감이 스며들어 불면의 밤에 들으면 나른한 꿈속으로 잦아든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중 제 3 곡 “달빛”(Debussy : Clair de Lune Suite Bergamasque L. 75-3)은 내가 가장 즐겨 듣는 곡 중 하나다. 백건우의 연주를 감동으로 만난 후 근래의 조성진까지 많은 피아니스트의 곡을 들었다. “달빛”은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로 자연의 아름다운 달빛을 암시하는 서정이 넘치는 피아노의 명곡이다. 관현악과 하프의 절묘한 음색으로 된 관현악 편곡도 좋지만, 피아노가 더 달빛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달빛”은 밤바다에 일렁이는 윤슬같이 아름답다. 기쁠 때 들으면 은은한 축복 같고 꽃잎이 지는 밤에 들으면 눈가가 젖어든다.   

 

타이스의 명상곡(Meditation from Thais)은 오랜 세월 동안 곁에 있어준 애장곡이다. 오페라 타이스 제 2 막 1장과 2장 사이의 간주곡으로 기원전 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무대로 수도승 나다나엘과 무희 타이스의 비극적 사랑을 노래한 주옥 같은 작품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는 사랑 받는 인기곡으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며 고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언제들어도 정겹고 로맨틱한 곡이다. 한 장례식장에서 추모객이 뷰잉할 때 작고 은은하게 들리던 명상곡이 인상적이었다.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E 단조, Op. 18의 제 2 악장 로망스-라르게토(Chopin : Piano Concerto No. 1-2 Romance-Larghetto)는 첫사랑 콘스탄차를 향한 애틋한 마음과 고별의 감정을 담아 작곡한 곡으로 로맨틱의 극치와 서정적 경지를 표현한 곡이다. 피아노의 순수한 음을 살려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쇼팽의 명곡으로 낭만적이고 조용하며 조금은 우울하다.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기 2년 전에 완성한 마지막 곡으로 초연은 바르샤바에서 쇼팽 자신이 했다. 이 연주가 고별 연주였다. 이때 소프라노 가수인 첫사랑 콘스탄차

글라드코르스카가 노래했는데 쇼팽은 그녀에게 열렬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밤하늘의 달빛 아래 속삭이는 듯한 선율로 곧 나타날 것 만 같은 그녀를 꿈꾸며 작곡한 녹턴처럼 우아한 곡으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피아노에만 털어놓고 고향을 떠났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곡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내 심장 깊숙이에서 죽은 듯 잠잠하던 옛 기억이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한 음악. 사랑하는 여인을 가슴에 품은 채 속으로 삼켜야 했던 눈물. 쇼팽은 후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만큼 이 곡에 감동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슈베르트의 세레나데(Schubert : Standchen D 957 . No. 4)는 독일의 낭만파 시인 루트비히 렐스타브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장르에서 손꼽히는 명곡이다. 선율이 청순하고 고요와 그리움이 배어 있어 심금을 울린다. 본래 세레나데는 소야곡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궁정 연회에서 연주되었다. 우리에게는 연인의 집 창 밑에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로 알고 있었지만.

어느 날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베링가를 걷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친구 띠째가 비어자크라는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갔다. 띠째는 세익스피어의 시를 읽고 있었다. 그때 슈베르트는 ‘세익스피어의 시를       

보니 얼마 전에 헤어진 테레제와의 악상이 떠오르는군.’ 하며 오선지를 찾았다. 그러자 한 친구가 손님이 놓고 간 계산서를 건네주었다. 슈베르트는 계산서 뒷면에 5선을 긋고 멜로디를 적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간청하여라 나의 노래여/밤을 뚫고 그대에게 날아가서/저 아래 조용한 작은 숲으로/사랑하는 사람아 오라 나에게- - -.’ 

종업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번잡한 소음 속에서 불후의 명작 세레나데가 탄생하였다. 

개인적 취향은 프랑스의 떠오르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이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 완벽함은 물론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빼어난 감성을 지니고 있어 전율이 인다. 극도의 고독과 슬픔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연주, 순수하고 따뜻한 위로를 주어 감동한 나는, 그에게 노래를 바쳤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작품 제 20번의 제 2 악장 “로망스”(Mozart : Piano Concerto No. 20 in D Minor K. 466-II Romance)를 가장 감명 깊게 들었던 것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였다. 영화가 준 분위기 탓도 있겠으나 영화가 끝날 무렵 자막을 올리며 들려주었던 2악장 로망스는 한 음악가의 삶과 인생의 비극적 요소를 함축성 있게 보여 주어 긴 여운을 남기었다. 슬프고 애잔하면서 부드럽고 회상적이어서 이 세상 모든 슬픔을 체념하고 달관한 후에 갖는 평온한 느낌 마저 들었다. 이 곡은 그의 피아노협주곡 27곡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1785년 2월 10일에 완성하여 다음 날 모차르트 자신이 피아노 연주회에서 초연했다.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단조로 쓰였다는 점이며 단조 특유의 우수를 띤 정서가 낮게 드리워져 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 폴트는 이 곡의 초연을 듣고 ‘가장 빛나는 연주회’라고 극찬했다. 어떤 운명적 예고를 암시하는 듯한 서정이 짙게 깔리는 전반부를 넘어, 평화로우나 애수 어린 중반부를 지나면 드디어 힘차고 화려한 론도 형식으로 바뀌며 같은 주제가 반복된다. 한 곡에서 다양한 음악적 감성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뛰어난 곡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작곡한 지고의 정신세계를 보여 주는 최고의 작품이라 하겠다.

삶에서 가장 기쁘고, 가슴 벅차고, 무언가로 충만했던 순간에 이 곡과 함께 했고, 가장 우울한 날에도 집어 들게 되는 음반이다.

 

드보르자크(Dvorak)의 대표적 오페라 루살카(Rusalka) 중 제 1막에 나오는 아리아 “달에게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는 인간 왕자를 사랑하는 물의 요정 루살카가 자신의 애절한 마음과 깊은 사랑을 전해 달라고 달에게 간청하는 곡이다.

물의 요정 루살카가 호수를 찾은 왕자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이 특징이며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고음과 노래는 이제까지 들어 볼 수 없었던 분위기의 음악적 표현에 여운이 남는다. 신비하고 황홀할 만큼 환상적인 소프라노 아리아가 귓가를 맴돌아진다.

“깊고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달님이여 당신의 빛은 온 세상 비추네요/당신은 이 넓은 세상 비추면서 사람들 삶을 내려다보죠/달님, 잠시만 멈추시어 사랑하는 내 님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소서/은빛 달님이여 부디 그에게 말해주소서 내 두 팔이 그를 감싸고 있다고/그저 잠시라도 그가 내 꿈을 꿔 달라고 -.”

너무도 애절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노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신비로움, 그 자체다. 

개인적으로 소프라노 강혜정이 부르는 아리아를 즐겨 듣는다.           

 

“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침묵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라고 빅토르 위고가 말했듯이 음악은

상실 속에서 겨울처럼 찾아오는 차디찬 슬픔과 고통을 치유해 주며 영혼의 깊은 평안과 구원을 경험케 한다.

외롭고 고독한 밤, 베토벤의 바이올린협주곡 제 2 악장의 고요하고 경건한 선율을 들으며, 작곡가의 영혼이 건네는 순수한 인간적인 위로를 만나, 귀로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영혼으로 들으며, 베토벤의 고독과 쓸쓸함과 희망을 함께 나누었기에 끝 간데없이 음악 속으로 빠져드는 게 아닐까.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이기에 그를 생각하면 감동이 벅차오른다.

베토벤의 음악은 내게 불가능을 가능케 한 유일한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고뇌할 때도 그의 음악은 최고의 영감이자 동반자였다. 

나의 음악실에 빼곡히 꽂혀 있는 음반으로 매일의 삶이 보람과 설렘에 안긴다.

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 5번 “황제”의 문을 두드려야겠다. 쇼팽의 “야상곡” 작품 9의 2번, 리스트의 “사랑의 꿈”과 트리플 데이트를 즐기리라.

아! 음악, 음악에 살으리랏다.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