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30 (화) 12:00:00 정유환 수필가손주 보러 나선길, 91-5-22번 세 개의 프리웨이를 지나야 한다. 저마다의 삶을 달리는 길을 가득 메운 자동차들. 꼬리에 꼬리를 문 자동차의 행렬 중 날렵하게 요리조리 잘도 달리는 어떤 차. 아, 쟤는 물 건너왔구나, 뽐낼 만한 스펙이지. 고개를 주억인다. 요란한 소리 내며 앞지르는 자동차. 바라만 보는 운전자들. 부러움일까 질투일까 체념일까, 갈 길을 가고 있다. 어차피 서로의 길은 다르므로.
순간, 멋지게 빠르게 기막히게 내 앞을 끼어드는 잘난 놈. 놀란 발은 브레이크를 밟고 두 팔은 핸들을 끌어안는다. 하마터면 부딪칠뻔했다. 내 스펙으론 욕 한마디가 고작이다. 너, 거기도 나보다 빨리 갈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강 색 그 녀석은 우쭐대며 저만치 사라졌다.
오렌지 크러쉬(orange Crush)라 불리는 이 지역은 5, 22, 57번 도로가 교차하는 극심한 정체 구간이어선지 이런 일이 다반사다. 늦은 밤이나 한낮을 빼곤 항상 복잡하다. 오늘 아침도 5번 프리웨이는 주차장이나 다름없다. 안쪽 차선은 좀 나을까 하여 일차 선으로 옮겼으나 이 북새통에 거기라고 나을 턱이 있나. 천천히 굴러가는 무리 속에 섞여 한 마리 굼벵이처럼 움직인다. 왼쪽 카풀 레인의 차들은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그때, 어디선가 가속페달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자동차를 들이받는 쾅 소리가 찢어질 듯이 귀를 울렸다. 내 바로 앞에 있던 SUV가 그 앞의 차를 들이받는 소리였다. 무리하게 카풀 레인에 진입하려다 사고를 낸 모양새였다. 그 앞차는 뒤 범퍼가 부서졌고 내 앞차의 앞 범퍼는 덜렁덜렁 떨어져 흔들거렸다. 덜렁거리는 범퍼를 카풀 레인에 반쯤 내민 채 멈춰 선 앞차는, 굵은 하얀 차선이 선명하여 절대 진입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 불법을 저지른 흔적을 지닌 채 멈춰 선 것이다. 카풀 레인을 달리는 차들도 이들을 피하느라 속도를 줄였다. 졸지에 꼬리를 받친 그 앞차와 불법으로 차선을 침범한 내 앞차는 그대로 멈춰서고 말았다. 무리하게 일차 선으로 진입했던 나도 멈춰 선 꼴이 됐다.
어찌어찌 간신히 그 차선을 빠져나와 다음 차선으로 옮겼지만 두 대의 차가 멈춰 선 탓에 교통 사정은 더 나빠졌다. 운전자들은 대부분 신사적이어서 빵빵대며 경적을 울리진 않았으나 차창에 비친 얼굴은 지쳐 보였다. 22번에 거의 다 와서야 유별났던 오늘의 원인을 마주했다. 카풀 레인과 일차 선에는 수 대의 자동차가 어지럽게 엉키어 있고, 여러 대의 경찰차와 앰블런스 경광등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큰 사고가 난 것이다. 이걸 구경하기 위해선지 달릴 수 있는 자동차도 서행 중이었다. 사고당한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마음 한쪽에 무사한 나를 안도하며 불행의 현장을 구경하고 싶어지는 이기적인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드디어 22번에 들어섰다. 프리웨이 세 개 건너 다다른 딸 집 가는 나들목, 빨강 색 그놈이 보인다. 그렇게 잘 난 척 으스대며 달리더니 겨우 내 앞에 멈춰 서 있다. 운전자는 이십 대쯤으로 보인다. 그래, 그 잘난 스펙도 오늘의 이 길에선 소용없었다. 때로는 환경에 순응하면서 좀 더디 가는 법을 배워야 할 모양이다.
그와 나의 종착역은 여기 신호등. 오늘따라 그 나들목 신호등 빨강 불은 우리를 길게 잡아 두었다.
<정유환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