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망 한 번 좋다. 참 시원하네요."
이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나서 우리 집에 들르는 사람들마다 똑같은 첫마디다.
거실 소파에 앉으면 창의 반은 하늘이 차지하고 반은 먼데 산과 그 앞에 펼쳐진 시골 풍경이 차지한다. 가까운 곳에는 교회의 뾰족탑과 십자가가 보이고 그 주변에 집 몇 채가 흩어져 있을 뿐, 그리고는 논밭이다. 농지정리를 하지 않은 네모, 세모, 사다리꼴, 반원 모양의 논밭들이 불규칙한 속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그 논밭의 초록빛들은 연한 연둣빛부터 진초록빛까지 다양하여 마치 녹색 조각보를 펼쳐 놓은 것 같다. 그 뒤로 옥동마을과 양지마을에서 벋어 나온 구불구불한 하얀 길들과 논두렁 밭두렁이 지렁이 기어간 길처럼 한가롭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납작한 집들이며 봄이면 여기저기 구름처럼 피어나는 복숭아꽃, 벚꽃들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고향의 봄'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전망이 좋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도 사실은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 시골 풍경에 매료되어 자기도 모르는 새 튀어나오는 감탄사들이다. 도시 속에서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남아있는 한 자락의 비문명적인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동네에 투명한 햇살이 가득한 날이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 어릴 적 친구들과 나물을 캐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저만치 창공에서 종달새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오기라도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했다. 그런 날은 행복했다.
밤이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지고 납작한 지붕 밑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이 먼 옛날 어느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동네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먼 데서 닭 우는소리가 들리고 개구리 소리가 귀를 씻어 주기도 했다.
그 풍경들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원시적인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해하며 지내던 어느 날, 반상회에서 그곳이 곧 개발될 예정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쿵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을 어쩌지 못했다.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미구에 사라져 버릴 그 한가로운 풍경들이 아까워서 견딜 수 없었다. 차근차근 가슴에 새기듯 음미하며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베란다 창밖에 디카를 들이대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고향 같은 그곳을 가슴에 새기고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베란다 창에 바짝 붙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집 앞의 공원을 건너 4차선 도로가 동서로 시원스럽게 뻗어 있고 그 길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차들이 달려가고 달려온다. 때로는 불자동차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거나 병원 구급차가 밤중에도 다급한 소리를 내며 밤잠을 깨우기도 한다. 곡선의 느림과 대비되는 직선의 빠름과 조급함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지난가을, 구룡산을 찾아 나선 길에 보니 개발이라는 그 말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여기저기 산의 붉은 속살이 드러나 있어 웬일인가 싶었는데 조상의 분묘들을 이장해 간 자리였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 속에서도 이 등산로만은 없어지지 않기를 소망했다.
긴 겨울을 보내고 봄 햇살을 따라 산에 오르다 보니 모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산에 오를 때면 물 많은 꿀배로 목을 축이던 그 과수원 집이 마술이라도 부린 듯 사라지고 주인 잃은 배나무들만 봄바람에 잉잉 울고 있다. 그 배 밭에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하늘하늘 꽃비로 내리던 꽃잎들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새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연상하며 배 밭 주변을 서성이지 않았던가.
동네 집들은 지붕이 반쯤 날아가고 그 주변으로 버려진 가재도구들이 넝마처럼 흩어져 있다. 한때는 주인에게 사랑받았을 그 물건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도시 속에 섞였을까. 지난가을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어느 할아버지의 말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이 동네 사람들 보상금이 많이 나와서 몇 억은 돈으로도 안 알아요."
할아버지의 과장된 듯싶은 그 말속에서 황폐해가는 인간의 마음을 짐작하지 않았던가.
길가 밭둑에는 샛노란 민들레꽃이 다복다복 피어있고 언덕배기 돌 틈에는 쫄방제비꽃이 한창인데 저 꽃들도 어느 날 포클레인의 무자비한 발자국에 비명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땅속 깊이 묻혀 버리고 말게 아닌가.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7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밭고랑에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못 심게 해유. 여름이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씨를 넣어 보는 거유. 금방 어떻게 되지는 않컸지유 뭐"
이제 할아버지는 평생 지어오던 농사를 접어야 하는 아쉬움에 헛일 삼아 해 본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남편은 다급한 소리로 나를 베란다로 불러낸다. 커다란 덤프트럭 몇 대가 옥동마을 앞쪽으로 흙을 잔뜩 싣고 울퉁불퉁한 길로 뒤뚱뒤뚱 와서는 꽁무니를 낭떠러지 쪽에 대고는 조심스럽게 흙을 쏟아붓고 다시 오던 길로 빠져나가면 또 다른 트럭이 뒤를 잇는다.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평화롭게 보이던 마을의 심장부부터 곡선의 여유로움을 짓밟고 직선의 넓은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이 도시로 변화하려면 수없이 많은 물자들이 필요할 테고 그것들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 우선이니 길부터 내는 것은 당연지사요, 정한 이치인 것이다.
논둑길이 묻히고 있다. 곡선의 그 여유로움이, 농촌의 평화로움이 묻히고 있다. 곡선은 직선이 되고, 느림은 빠름이 되고, 낮은 집은 높은 집이 되고, 희미한 불빛들이 새어 나오던 고요하던 마을은 대낮처럼 환한 불을 밝힐 것이다. 여름밤에 듣던 그 청량한 개구리 소리도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짠하게 마음이 아리다.
다만 새로움을 꿈꾸는 이 동네가 직선과 곡선이 알맞게 조화된, 사람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