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의 독서칼럼] 남아 있는 나날

 댓글 2026-06-11 (목) 12:00:00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그는 이번 여행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지만, 지금은 결혼해 떠난 켄턴을 찾아가 만나 보려 한다. 스티븐스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감정을 억누른 채 떠나보냈었다. 그의 철저한 감정 절제는 사랑 앞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던 날에도 그는 주인과 손님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주인 곁에서 임무를 수행하느라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다.


전 주인이었던 달링턴은 온유하고 선의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시대의 격변 속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스티븐스는 그 곁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한 번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집사의 역할이란 주인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충실히 섬기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그는 자신이 지켜온 충성의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여정 중 시골 마을에 들어선 그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의 옷차림이나 자동차를 보고 그를 집사가 아니라 귀족이라 짐작한 사람들에게 그는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섬겼던 주인과 그 시대의 선택을 비판한다. 전 주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말을 듣고 그는 당황하지만, 곧 변명 섞인 방어를 시도한다. 주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 자신 같은 이가 짊어질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이 말하는 진정한 품위는 권위나 직책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마침내 켄턴과 마주한 순간, 그는 오래전 멈춰 버린 시간이 다시 흐르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재회한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로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시간은 돌릴 수 없기에 지금의 삶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스티븐스는 마음이 아프지만 아무 말도 못 한 채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가 놓친 것들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는 저녁,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바닷가에서 만난 어떤 노인은, 빛이 사라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은 지나온 하루와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제는 인생을 즐길 때라고 말한다. 스티븐스는 삶의 허망함을 직면하면서도 평생 몸에 밴 삶의 태도를 쉽게 바꾸지 못한다. 그는 새 주인을 더 잘 모시기 위해 유머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비록 끝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남아 있는 날들을 맞이하는 그만의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하는 집사의 품위는 외형적 태도와 절제된 자세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충성과 헌신을 삶의 미덕으로 믿었지만, 자신의 감정과 판단으로 행동하고 책임지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만의 삶의 나침반이 없었다. 타인의 선택에 기대어 살아온 스티븐스는 해질 녘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그는 끝내 황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남아 있는 빛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다.

작가는 절제된 문체로 인간의 비극을 일깨운다. 주인공의 마음이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남아 있는 나날’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묻는다. 이 작품은 1993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주연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영 재미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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