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백년초의 상처

 댓글 2026-06-23 (화) 12:00:00 홍용희 수필가
 
내 어린 시절, ‘어무이’의 하루는 늘 그림자 쪽에 기울어 있었다. 3남 1녀를 키우느라 웃음은 드물었고, 그마저 피로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대안 없는 생애, 나는 그 그림자에 또 하나의 구멍을 더했다.


대학에 들어가던 해, 엄마가 어렵사리 준비한 첫 등록금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암담했다. 다행히 두 오빠 덕분에 해결은 되었다.그날의 캄캄함이 아직도 드리워져 있다. 딸의 졸업이 엄마의 꿈이었을까. 좀처럼 가계를 쉬지 않는 엄마가 나들이를 했다. 졸업식 날, 엄마는 먼 길을 와서 나를 기다렸지만 나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 그날의 빈자리, 그 자리 위에 떨어졌다는 눈물 한 방울이 지금도 내마음의 바닥에서 마르지 않는다. 백년초의 상처는 아무는 듯하지만, 엄마의 아픔은 잔향처럼 오래 남아 있다.

빛은 이동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바라는 쪽을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엄마의 원은 자신의 고단한 삶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또 다른 구멍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핑계 삼아 엄마를 두고 멀리 타국으로 떠나온 것이다. 장차 단 한 번만이라도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생명의 지향’이라 포장해 보지만, 백년초 저 빈 구멍 사이로 부는 바람처럼 허허롭다.

다음날 다시 들여다보니 백년초 밑동의 하얀 상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돋아난다. 햇빛에 말라가는 듯하면서도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가려는 힘이 번진다. 식물은 부상을 입으면 그 자리에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 연한 연두빛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상처는 다시 살아가려는 몸의 의지다.

상처와 회복, 절망과 희망은 생명의 그림자와 빛이다. 내 가슴의 횅한 그늘도 하나의 기억으로 머물 뿐이다. 모두 삶의 한 부분이라는 듯 하얀 상처는 말없이 속삭인다.

“상처는 치유의 시작입니다. 빛이 있는 한 살아갈 수 있지요.”

<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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