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세이] 우표딱지만 한 고향에 잠든 이야기꾼
2026-06-24 (수) 12:00:00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미시시피 옥스퍼드의 성 피터 공동묘지 앞에 섰다. 인간은 결국 축축한 진흙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윌리엄 포크너는 먼지가 되어 이 땅에 잠들어 있다. 묘지 안으로 스무 걸음쯤 들어가자 회색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이 보였다. 멀리 미국 서부에서 이 우표만 한 고향 땅에 잠든 작가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장편소설 스무 편, 단편 백여 편을 남기며 남부의 작은 지역을 인류 보편의 비극과 욕망이 살아 숨 쉬는 문학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마크 트웨인이 희극에서 비극으로 향했다면, 포크너는 절망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걸어간 작가였다.
그의 곁에는 아내 에스텔 올드햄이 함께 누워 있다. 첫사랑이었지만 왜소한 체격과 가난 때문에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상처 입은 포크너는 영국 공군에 지원했으나 전쟁터에 나가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훗날 그는 그 경험을 영웅담처럼 꾸며 자존심을 세웠고, 그 상처들은 작품 속 인물들의 열등감과 고독으로 되살아났다.
에스텔은 결국 불행한 결혼을 끝내고 두 아이와 함께 돌아왔고, 두 사람은 다시 맺어졌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교와 파티를 좋아했고, 그는 고독 속에서 글을 썼다. 태어난 지 아홉 날 만에 세상을 떠난 딸 엘라베마의 죽음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포크너는 미시시피 대학 발전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집필했다. 발전기의 굉음 속에서 석탄을 나르며 써 내려간 소설에는 불행한 가족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현실의 고통을 문학 속으로 밀어 넣으며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삶에는 다른 여인들도 있었다. 할리우드의 메타 카펜터, 뉴욕의 조앤 윌리엄. 그러나 그는 끝내 누구에게도 완전히 가지 못했다. 술잔과 원고지 사이를 떠돌며 위스키에 자신을 의탁했다. 지금도 그의 비석 위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위스키 병과 시가 파이프가 놓여 있다.
‘소리와 분노’와 ‘압살롬, 압살롬!’에 담긴 몰락한 남부의 상처와 인간 욕망의 파국은 모두 이 작은 고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다. 그는 “우표만 한 고향 땅”만으로도 평생 쓸 이야기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말 타기를 사랑했던 그는 대도시 생활을 싫어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역시 낙마 사고였다. 허리 통증으로 오래 고생하던 그는 결국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곁에는 어린 딸 엘라베마의 작은 묘비도 함께 있다. 딸이 죽던 날, 작은 관을 무릎에 올려놓고 끝없이 울었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묘비에는 그의 말이 새겨져 있다.
“나의 야심은 역사 속에 사라진 한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책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차가운 비석 위의 흙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냈다. 그는 술과 좌절 속에서 자신을 망가뜨리며 살았지만, 결국 그의 문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으로 남았다.
옥스퍼드의 작은 땅은 여전히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읽고 이어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그 무거운 숙제를 가슴에 안은 채 다시 길을 나섰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