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돌담

2026-07-07 (화) 12:00:00 김영화 수필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검은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진눈깨비를 잠시 뿌리더니 후드득 비를 몰고 왔다. 적당히 젖은 흙냄새, 파릇파릇한 풀잎과 만개한 사과꽃 향기를 음미하며 돌담길을 걷는다.

갈리시아 지역을 걷는 내내 수많은 돌담길을 지난다. 성당의 담도, 카페의 담도, 일반 가정의 담도, 농장과 산등성이 길거리 사이 담도, 모두 돌담이다. 화강암 지대인 이곳에 농지를 경작하면서 파낸 많은 돌로 밭 경계도 표시하고, 가축이 넘어가지 못하게 쌓아 올린 울타리다. 제주도를 연상케 한다. 바람과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도 강한 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벽돌 대신 돌로 담을 쌓았다.

돌담은 바람을 완전히 막지 않고 돌과 돌 틈으로 바람이 지나가기 때문에 허술해 보이는 돌담이 오히려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벽돌이나 시멘트 담처럼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상처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바람을 한 치도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강한 벽돌담은 거센 폭풍 앞에서 높은 압력을 견뎌야 하기에 쉽게 무너진다. 강함은 빈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빈틈과 함께 존재하는 힘이다. 삶을 오래 지탱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유연함일 것이다. 자신의 틈을 인정하는 돌담은 완벽하지 않기에 오래 견뎌낸다. 삶의 틈은 부족함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일 수도 있다. ‘독에 든 쥐에게도 피할 길을 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어렸을 적에 증조할머니에게서 들었다. 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에도 숨 쉴 수 있는 틈새, 여유, 여백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은 바람 자체가 아니라, 바람이 지나갈 틈이 없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강한 바람이 닥쳐올 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틈을 주어 서서히 빠져나가게 하는 돌담에서 얻은 지혜다. ‘
 
산지가 많은 갈리시아 지역 사람들도 같은 원리로 돌담을 쌓았을 것이다. 돌담은 강한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아, 축대 역할을 하여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고 경작지를 유지해 주고 있다. 돌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른 돌들이 얼키설키 쌓여있다. 모난 돌을 둥근 돌이 감싸준 틈새를 작은 돌들이 메우고 있다. 깎아 다듬지 않은 돌들은 그 모습 그대로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하고 있다. 돌 틈에 손가락 길이의 연초록 이끼들이 자라고, 작은 풀꽃들이 하얗게 피어 돌 위에 정원을 꾸며 놓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돌담이 되었다. 우리도 이 돌담의 돌 중의 하나처럼 가정이나, 사회나 어떤 공동체에서나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인정하여 상대를 억지로 내 뜻에 맞추려 하지 않을 때 아름답고 견고한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수많은 순례자를 만났다. 돌담의 돌들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아픔을 갖고 걸었다. 무릎이 삐걱거리고 발가락에 물집이 터져 아프지만, 함께 돌담을 이루고 있는 다른 돌들의 아픔을 만져주고 보듬는다. 복잡했던 머리와 답답했던 가슴이 스르르 비어져 가벼워진다.

돌담으로 지어진 내 안의 돌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나 보다.

<김영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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